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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이랑 Apr 03. 2022

[북리뷰]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재미에 빠진 인간이 되고 싶어요.

 매주 한 권의 책을 읽겠다는 목표는 이번 책을 읽으며

잠시 미루어 두었습니다. 분량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지만 빠르게 읽기보다는 천천히 음미하며 읽고 싶었습니다. 지성으로 살다 간 한 사람의 생각과 사상에 깊게 빠졌습니다.


지인들은 다정하게 환호했다. “그 대화는 마치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같은 책이 되겠군요. 죽어가는 노교수가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가치를 들려주는 마지막 수업…


 책을 열었을 때 책에서도 언급한 듯[모리와 함께한 화요일]과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하지만 한 장, 한 장 넘기며 접근방식은 유사할지라도 전혀 다른 장르라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은 제자의 입장에서 모리와의 추억을 떠올리며 죽음을 기다리는 루게릭 환자의 병약한 모습을 다루고 있다면 이어령은 죽음마저 담담히 받아들이며 자신의 모든 것을 후세에 남기고자 한다고 느껴졌습니다.


 내년 삼월이면 나는 없을 거야. 그때 이 책을 내게


이어령은 56년에 우상의 파괴라는 글로 데뷔하여 기존 문단을 비판하며 주목받았습니다. 그 이후 꾸준히 글을 써왔고 초대 문화부 장관으로 88 올림픽 개최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88세라는 고령임에도 계속 문예활동을 했습니다.


  “한 사람이 우주선을 타고 여행을 떠나기 전에 친구와 작별인사를 했어. 우주의 시간은 달라서 돌아오면 2백 년이 훌쩍 지나버려. 지구 시간으로는 마지막 만남이니, 그게 결국 죽음인 거라. 그런데 이를 어째. 그 우주선이 출발하다가 중간에 폭발을 해버린 거야. TV 중계로 그걸 지켜보던 친구가 깜짝 놀랐겠지. ‘아이고, 내 친구가 죽어버렸네.’ 그제야 울고불고 난리가 났어. 아이러니하지 않나? 그럼 아까 죽음은 뭐고, 지금 죽음은 또 뭔가?”


 죽음은 결국 이별입니다. 이별을 한다는 것은 그 또는 그녀를 만날 수 없기에 슬픔을 가져옵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이별을 겪지만 그 많은 이별에도 무뎌지지 않습니다. 죽음은 여러 이별 중에 가장 큰 슬픔을 수반합니다. 위 사례는 이별을 하지만 친구가 어디선가 잘 지낼 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가 그의 죽음을 인지하고 정말 이별하게 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슬픔이 극대화되는 것입니다.


  “아니야. 나는 매번 패했어. 글 쓰는 사람은 매번 패배한다네... 중략.. 내가 계속 쓰는 건 계속 실패했기 때문이야. 정말 마음에 드는 기막힌 작품을 썼다면, 머리 싸매고 다시 책상 앞에 앉았을까 싶어.”


 대부분의 사람들이 성공한 삶을 살았다고 생각하는 그도 스스로 만족하는 글을 쓰진 못한 모양입니다. 아마 글을 쓰면서도 한 단계 더 성장하여 이전 글에 대해 만족하지 못하고 다른 글을 쓰나 봅니다. 마지막 수업이란 글은 비록 김지수 기자를 통해 전해지지만 그의 마음에 드는 작품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글 쓰는 자는 모두 자기 얘기를 하고 싶어 쓰는 거야. 자기 생각에 열을 내는 거지.  


 글을 쓰다 보면 너무 사소한 이야기를 적는 것은 아닌다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또한 일상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적어서 일기를 쓰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 때도 있습니다. 결국 제 이야기를 하다 보니 현재 제가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을 글로 옮겨서 그런 것이었습니다. 특별한 의미가 있는 사람은 아니지만 여기 살아있다고 나의 의미를 알아달라고 호소하는 글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당신은 임종하는 사람을 지켜보며 그렇게 많은 희망을 줬는데 왜 정작 당신의 죽음 앞에서 화를 내고 있느냐?’. 로스가 이렇게 답했다네.

  ‘지금까지 내가 말한 것은 타인의 죽음이었어. 동물원 철창 속에 있는 호랑이였지. 지금은 아니야. 철창을 나온 호랑이가 나한테 덤벼들어. 바깥에 있던 죽음이 내 살갗을 뚫고 오지. 전혀 다른 거야.’


 살면서 죽음에 대한 생각은 가끔씩 합니다. 죽음은 예고 없이 다가오기 때문에 사고 없이 무탈하게 지냈으면 하는 바람으로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습니다. 소중한 사람과 함께 하며 내일의 행복을 바라며 오늘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죽음이 내일 다가온다면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저는 아직 못다 한 것이 많고 소중한 가족들을 남기고 먼저 가고 싶지 않습니다. 삶에 대한 미련이 많습니다. 지금은 행복하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예전에 삶이 힘들도 지칠 때 다음날 눈을 뜨지 않고 자는 듯 세상을 떠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의 힘들었던 감정은 모두 잊혀고 그 또한 지나왔습니다.


그런데 책을 무조건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는다? 그 책이 법전인가? 원자 주기율 외울 일 있나? 재미없으면 던져버려. 반대로 재미있는 책은 닳도록 읽고 또 읽어.  


 전 책을 보면 정독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저자 소개부터 말머리, 목록, 다 읽고도 감사글이나 다른 책 추천까지 보는 편이라 저의 독서 습관과는 많이 다른 양상이었습니다. 책을 재미있어서 읽지만 글쓴이와 소통을 한다고 생각하여 처음부터 끝까지 읽었지만 재미를 추구하는 독서도 해보아야겠습니다. 대신 저는 같은 책이나 영화 등을 두, 세 번 보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이미 알고 있거나 뻔한 내용보다는 생각하지 못한 것에 대해 흥미를 느끼고 인위적인 감동을 이끌어내는 것보다 자연스럽거나 예기치 않게 감동을 주는 것을 좋아합니다.


코로나가 처음 들어왔을 때를 생각해보게. 언제 우리가 마스크 한 장 사려고 그렇게 길게 줄을 서본 적이 있나? 마스크 한 장. 그게 생명이었어. 전 인류가 죽음을 잊고 돈, 놀이, 관능적인 감각에만 빠져 있다가, 퍼뜩 정신이 든 거야


 마스크를 쓰면 연예인이나 범죄자인가 생각했던 시절에서 누구나 마스트를 써야 하는 시절이 되었습니다. 삶을 인지하면서 마스크를 바로  아이들은 마스크를 벗으면   나는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건강한 사람에겐 생명을 위협할 정도는 아니지만 전파력 때문에 마스크를 안 쓴 사람을 보면 피하게 됩니다.


 일이 나한테는 노는 거였어. 나는 워커홀릭이 아니라 재미에 빠진 인간이었다니까. 허허.”

 

 좋은 글귀들이 많았지만 위 대목이 가장 마음에 드는 글귀입니다. 좋아하는 것도 일이 되면 힘든 건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일이 아니라 노는 것, 저 또한 재미에 빠진 인간이 되고 싶습니다.  


 대화하듯 편하게 적은 글 사이에 사소함 속에서도 의미를 찾을 수 있고 생각하지 못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책이었습니다. 그는 떠났지만 그는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의 언어와 이야기를 만날 수 있습니다. 시간을 두고 되새기며 보아도 좋을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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