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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이랑 Jul 28. 2021

어른이 꿈이었던 시절

한 때는 나의 모든 것이었던 할머니를 회상하며

  어린 시절, 나의 세상은 할머니가 전부였다. 눈을 뜨면 항상 할머니가 옆에 있었고 눈을 감을 때에도 할머니가 내 머리맡을 지켰다. 그 시절 친구들은 엄마 없는 애라고 손가락질했고 할머니는 스스로 돌보기도 어려울 정도로 몸을 가누는 게 힘들었다.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단편적이었다. 쉬는 날도 없이 열심히 일했다는 것만 어렴풋이 생각난다.  할머니와 단 둘이 있는 시간이 길었다. 할머니의 손발이 되어 이런저런 일을 했지만 할머니는 기력이 없었고 나는 너무 어렸다.

 

 어느 날, 옆집에 이사를 왔다며 머리 하나는 큰 형이 떡을 가져다주었다. 검은 봉지에 담겨 있었고 따뜻했다. 떡을 먹고 싶은 마음에 열었는데 놀랍게도 똥이 있었다. 할머니께 옆 집에서 떡을 가져왔다고 했는데 차마 똥이었다고 말을 할 수 없었다. 너무 맛있어서 다 먹었다고 했다. 할머니는 그저 웃으셨다. 짓궂은 꼬마 녀석이 할머니와 둘 밖에 없는 나를 괴롭히려고 가져다준 것이겠지. 고자질할 어른도 없었기에 스스로 치웠다.

 

 6살 무렵, 친구들은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했고 내 또래의 아이 중에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건 나밖에 없었다. 혼자 노는 것도 재미가 없어 2차선 도로에서 차가 오는 걸 기다렸다가 차가 지나가기 전에 횡단하는 놀이를 했다. 지금 생각하면 위험천만한 행동이지만 당시에는 위험하다고 혼낼 어른도 없었다. 달리는 게 지칠 때쯤 할머니께 돌아갔다.

 

 할머니는 늘 나를 안쓰러워하며 챙겨주셨다. 처음부터 할머니와 둘만 있었던 건 아니다. 할머니께서는 내가 기억하지도 못하는 태어났을 적 이야기를 가끔 하셨다. 아버지와 엄마는 내 이름을 따라서 지은 구멍가게를 했었다. 하지만 근처에 슈퍼가 생기고 외상 관리도 안 되어 그만두었다. 아버지는 가장으로 일만 하셨고 엄마는 우리 곁을 떠났다. 그 이야기 후엔 항상 엄마 욕이었다. 그래도 엄마가 좋냐며 불쌍해하셨다.

 

 또 이런 이야기도 들었다. 내가 네 살 즈음, 아버지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나를 보기 위해 엄마가 왔었다. 나는 엄마를 보자마자 뭐가 좋은지 엄마 손을 붙들고 어디론가 끌고 나갔다고 한다. 할머니는 어린것이 엄마 손을 잡고 영영 돌아오지 않는 것은 아닐까 걱정하여 쫓아나갔다고 하셨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놓칠세라 엄마 손을 꼭 잡고 놀이터에 가서 "나도 엄마 있다."라고 소리를 쳤다고 한다. 물론 나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엄마는 그런 나를 놓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 이야기를 듣고  할머니가 없었다면 나는 고아원에 가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는 일하느라  눈 코 뜰 새도 없었고 나를 맡길 만한 곳도 없었다. 오직 할머니뿐이었다. 당시 할머니의 연세는 모르지만 일흔이 넘었고 허리가 많이 굽어 지팡이가 없으면 움직이질 못하셨다.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 옆에서 나는 조잘거리며 심부름도 도맡아 했다.

 할머니는 먹을 것도 항상 나를 먼저 챙기셨고 나도 먹을 것이 생기면 할머니께 먼저 드렸다. 빨리 어른이 되어서 항상 아파하는 할머니를 편하게 해드리고 싶었다. 그러나 어른이 되기 전 할머니는 나의 곁을 먼저 떠나셨다.

  

 할머니를 떠올리면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 어린 나의 모든 것이었는데 한 살, 두 살 나이를 먹으며 할머니 곁을 떠나기 시작했다. 할머니 밖에 없던 나에게 친구가 생겼고  노는 것이 좋아 밖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동네 동생 중에 형이라 부르며 따라다니던 귀여운 꼬마 녀석이 생겼다. 껌딱지 같았던 그 녀석과 형제처럼 돌아다니며 말썽을 피웠다. 늦게까지 놀다가 돌아오면 자느라 바빴다. 자는 모습도 예뻤는지 나의 머리를 쓸어 넘기며 바라보시는 모습이 아버지의 카메라에 담겼다.

 

 나의 자람과 할머니의 노화는 가속화되었다. 할머니는 점점 나를 못 알아보셨다.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게 되며 방을 따로 쓰게 되었다. 가끔씩 나를 알아보실 때 너를 두고 어떻게 가냐며 눈물지으셨고 당시 그 눈물의 의미를 알지 못했다. 철이 없던 나는 할머니의 냄새가 베여 친구들에게 지린내 난다고 놀림받던 것이 싫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의 곁을 떠나셨다. 친척들과 동네 어른들 많은 사람들이 위로의 말을 건넸지만 나는 울지 않았다. 아버지께서도 울지 않으셨다. 하지만 혼자 누운 그 자리에서 참았던 눈물을 흘렸다. 할머니를 잃은 상실감은 너무나 컸다.

 

 세월이 흘러 그토록 되고 싶었던 어른이 되었다. 몇 밤만 자면 되냐고 몇 번이나 물었던 할머니께서는 옆에 안 계신다. 아버지께서 할아버지가 되셨고 나는 이제 아버지보다 어른이 되었다. 예전에는 아버지께서 일하느라 나의 곁을 떠나 있었는데 지금은 내가 일하느라 아버지의 곁을 떠나 있다. 어른이 꿈이었던 시절, 어른이 되면 행복하기만 할 줄 알았는데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이 글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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