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이랑 Apr 08. 2022

집사 일지(37)

두 집 살림

 시엘이도 어느덧 10개월이 되었습니다. 몸무게도 3.9kg이라 아가 냥이의 면모는 사라지고 제법 어른스러워졌습니다. 다만 몸무게가 늘어나다 보니 어렸을 때 가슴 위에서 애교를 부리면 귀여웠는데 이제는 육중함이 느껴집니다.


 몸무게 자체로는 가볍지만 덩치도 제법 커져서 몸 위에 있기엔 공간이 여유롭진 않습니다. 그렇다 보니 미끄러지지 않기 위해 다리에 힘을 실어서 갈비뼈에 통증이 옵니다. 그래도 어렸을 때의 습관으로 매일 같이 새벽이면 가슴 위에 올라와서 고롱송으로 모닝콜을 합니다.

아침마다 깨워주는 시엘이를 보면 아내는 츄르를 건네줍니다. 사료나 간식 중에 먹다가 질리는지 손도 안대기도 하는데 츄르는 항상 입 맛에 맞나 봅니다.


 어제 길에서 만난 냥이들을 챙기러 공원으로 산책을 나갑니다. 시엘이가 관심 주지 않는 간식과 사료와 물을 준비했습니다. 어제는 밤 22시에 우연히 만났는데 일찍 준비해서 나와서인지 보이질 않았습니다.


 음식을 챙겨준 곳에 물과 사료를 준비해준 다음 공원 산책을 하고 돌아왔습니다. 시간이 일렀는지 만나지 못했고 물과 사료도 그대로였습니다. 다른 곳을 가서 만나지 못하는 모양이었습니다. 약속을 하고 온 것이 아니니 만나지 못해도 어쩔 수 없었습니다. 사료와 물을 어떻게 할지 고민했습니다.


 공원이지만 고양이 음식 챙겨주는 걸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고 혹시 나쁜 마음먹고 음식에 약을 타는 것은 아닐까 해서 먹는 모습을 보고 치운 다음 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올해 초 이 공원에서 비엔나소시지에 낚시 바늘을 꽂아서 낙엽에 숨겨두었다는 뉴스를 본 기억이 있어 걱정이 되었습니다. 치우고 가기로 결심하고 일어서려던 찰나 회색 고양이가 다가왔습니다.


 강아지에게 쫓겨 나무에 매달려 있던 냥인데 어제는 많이 놀랐는지 사라져서 못 보았는데 오늘은 음식 냄새를 맡고 다가왔나 봅니다. 오자 마자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습니다. 물도 준비해주었는데 물은 평소 마시던 곳에서 마시는 게 편하지 옆의 연못의 수로 올라섰습니다.

 아내는 회색 냥이에게 말했습니다.

“얼른 친구에게 가서 맛있는 음식이 여기에 있다고 말해줘.”

혹시 다른 냥이들이 오지 않을까 해서 20분 정도 기다렸으나 오지 않았습니다.


 물은 비워두고 사료만 사람들 눈에 안 보이게 수풀 사이로 숨긴 뒤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가는 길에 고양이 두 마리가 웅크리고 있었습니다. 한 마리는 방금 본 회색 냥이었고 한 마리는 어제 본 깜냥이었습니다. 깜냥이는 우리를 알아보았는지 우리에게 다가왔습니다. 산책로였기 때문에 인적이 드문 곳으로 자리를 옮겨서 접시에 사료를 챙겨주었습니다.


 깜냥이가 먹는 모습을 보고 삼색 냥이도 다가왔습니다. 가지고 온 것은 다 준 상태라 부족할 것 같아 아내를 남기고 아까 놓고 온 사료를 챙기러 다녀왔습니다.

그 사이 여성 두 분이 아내에게 다가와서 말을 건넸습니다.

 

 “고양이 밥 챙기시는 거예요?”

 “네.”

 “아까 챙겨주었는데 양이 적었나 잘 먹네요.”

  “다음에는 더 챙겨서 와야겠다. 아까는 두 마리였는데 한 마리가 더 왔네.”

 깜냥이는 사람이 적극적인 성격인지 사람을 보고 다가오는데 삼색 냥이는 경계하며 거리 유지를 했습니다. 깜냥이가 먹는 걸 보고 다가왔고 회색 냥이는 이미 배를 채운 터라 주위에서 경계라도 하듯 돌아다녔습니다.


 어린 냥이들이 어떻게 공원에서 터를 잡았나 했는데 챙겨주는 사람들이 있던 모양입니다. 우리 집 앞에는 재개발 구역으로 빈집들이 많습니다. 강아지는 데리고 간 모양인데 고양이들은 이사하면서 버려진 모양인지

품종묘로 보이는 냥이들도 있었습니다.


 누군가의 집 앞에서 고양이 음식을 챙기면 누군가는 싫어할 수 있어 챙기질 못했습니다. 큰 공원 한편에 자리를 잡은 냥이들을 보니 챙겨줄 수 있어 다행입니다. 아내는 깜냥이가 사람을 잘 따르니 집에 데리고 오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지만 시엘이도 있고 삼색 냥이가 깜냥이에게 의지를 하는데 한 마리만 데리고 갈 순 없습니다. 비록 길냥이들이지만 잘 자라서 그 녀석들의 새끼들까지 돌볼 수 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작가의 이전글 벚꽃 그리고 고양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