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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이랑 Apr 20. 2022

집사 일지(39)

아프다고 말하지 않아요.

 아침에 시엘이의 양치를 하던 아내가 입에서 송곳니 아래의 잇몸 부분에 혹을 발견했습니다. 수시로 츄르를 달라고 하는 시엘이의 양치를 게을리해서 염증이 생긴 건 아닌지 걱정이 되었습니다. 하얗게 부풀어 올라서 빨갛게 올라오거나 노란 염증이 있는 것은 아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주말이나 되어야 병원에 데려갈 수 있으니 염려되었습니다.


 이제 10개월 차라 이빨에 대한 걱정은 덜했었는데 정신이 번쩍 들며 경각심이 들었습니다. 아내가 시엘이의 생일이 되는 1년마다 정기 검진을 하자고 할 때만 해도 아직 어리고 건강한데 오버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제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동물은 말을 못 하기 때문에 어디가 아픈지 알아차리기 어렵습니다. 이번에도 양치를 하다가 보지 않았다면 입 안에 이상이 생긴지도 모를 뻔했습니다. 시엘이는 여전히 식탐이 많고 애교도 많습니다. 배변도 정상이고 털 상태도 양호합니다.


 사람이었다면 입 안에 염증이 생기면 피곤했나 보다 하고 넘어갈 정도로 작은 일입니다만 부족한 영양소가 있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었습니다. 혹시 모를 구내염, 치주염, 치은염 증상을 검색해보고 그에 해당되는 부분이 있는 건 아닌지 확인했습니다.


 다행히 해당되는 증상은 없었습니다. 혹시 침을 질질 흘리거나 건식 사료를 안 먹으면 걱정이 되었겠지만 여느 때와 같았습니다. 오전부터 아내는 시엘이가 다니는 동물 병원에 연락해서 토요일에 예약을 했습니다.

 퇴근을 하고 시엘이를 데리고 나오면 저녁 8시는 되어서 근처에 가까운 동물 병원은 없었습니다. 그리고 낯을 많이 가리는 편이라 익숙한 동물 병원으로 데리고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19시까지 하기 때문에 토요일을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별생각 없이 시엘이의 동물병원을 지나가다 아직 열려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미 폐점 시간이 넘었지만 의사 선생님이 계신 것을 보고 혹시나 약 처방이라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들어섰습니다.


마음이 급했던 아내는 들어서자 말했습니다.

 “시엘이 송곳니 아래쪽에 수포 같은 게 생겼는데 혹시 약 처방이라도 받을 수 있을까요? 토요일에 진료

 예약은 했거든요.”

선생님이 당황한 모습이 역력해 보여서 부연 설명을 드렸습니다.

 “10개월 정도 되는 고양인데요. 송곳니 아래쪽에 하얗게 수포로 보이는 것이 올라왔어요. 빨갛게 붓거나 노란 염증이 있거나 한 건 아닌데 평일에 데려오기에는 시간이 늦어서 혹시 약이라도 발라줘야 하지 않을까 해서요.”


 시엘이 말고도 많은 동물을 보시기 때문에 시엘이 이름만 듣고 기억하긴 어려운데 아내가 많이 급했던 모양입니다. 평소에는 저희가 방문할 때는 미리 예약을 하고 방문했기에 이름을 확인한 간호사 분은 센스 있게 시엘이의 이름으로 불러주긴 합니다. 하지만 간호사 분도 없고 예약도 없이 지나다가 아직 불이 켜진 것만을 보고 급한 마음에 들어서서 본론부터 말하니 의사 선생님도 순간 당황하신 모양이었습니다.


 그래도 여느 때처럼 친절하게 설명해 주셨습니다. 정확한 진단 없이 처방을 하면 오히려 몸에 해로울 수 있기 때문에 평소처럼 관리를 하되 부은 부분만 양치를 조심해 달라고 했습니다. 결국 토요일을 기약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시엘이는 평소처럼 집사를 반기며 고롱송을 부릅니다. 건식 사료도 다 먹었고 츄르도 게 눈 감추듯 먹습니다. 시엘이는 아프다고 말하지 않으니 평소에 잘 살피고 아내의 말대로 생일마다 건강검진을 해야겠습니다.  


  체중감소도 없고 식습관, 배변  평소와 다를  없어서 조금은 마음이 놓였습니다. 왼쪽이 오른쪽보다 부푼 정도라서 혹시 이갈이하느라 아래에서 이빨이 자라는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저희가 의사는 아니니 지레짐판단하지 않고 진료를 받을 것입니다.


 “아프다고 말하지 않아도 괜찮아. 우리가 더 잘 살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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