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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이랑 Aug 12. 2021

내 친구를 소개합니다.

보고 싶다 수현아

 내가 부르는 친구의 이름은 수현이었다. 수현이는 고등학교 같은  친구로 본명은 아니다. 친해진 다음 수현이란 이름으로 불러달라고 했다. 집에서 부르는 이름인데 친한 친구에게만 알려주는 이름이라고 했다. 반에서는 나만 수현이라고 불렀다.


 처음에는 친구들이 의아해했지만 수현이를 알고 있는 친구들은 그러려니 하고 개념치 않았다. 수현이만의 성격을 들여다볼 수 있는 몇 가지 일화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수현이와 친해진 계기는 정확히 생각이 나지 않았지만 우리는 리니지를 같이 했었다. C군은 군주 캐릭터를 만들어서 JW고 길드를 만들었고 수현이는 엘프, 나는 법사, L군은 기사를 했었다. 나는 종종 L군과 대결을 해서 졌었고 수현이는 계속 지기만 하는 나를 L군 몰래 지원을 해주었다. 당시 비싼 아이템이었던 변신 반지로 친구들 몰래 변신을 시켜주며 비밀이라고 했다.

 

 어느 수학 시간이었다. P선생님은 혈기왕성한 선생님이었다. 그는 엑스칼리버라며 커다란 나무주걱으로 엉덩이를 때리셨는데 스윙이 장난 아니었다. 다들 허튼짓 안 하고 수업에 집중을 하는데 선생님께 수현이가 불려 나왔다.

 “수업 시간에 뭐 하는 거야? 손에 들고 있는 거 당장 들고 나와.”

 선생님의 불호령에 순간 정적이 흘렀고 호명당한 이가 수현인걸 보고 걱정이 되었다. 그의 손에는 망원경이 들려있었고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그 망원경은 어제 S.E.S 콘서트를 다녀왔는데 더 잘 보고 싶어서 샀다는 망원경이었다. 선생님께서 수업시간에 망원경을 꺼낸 이유를 물으셨다.

 “칠판의 글씨가 뒤에서 보이지 않아 보고 싶은 마음에 꺼냈습니다.”

 다행히 선생님은 그의 열정을 칭찬하며 자리를 앞으로 바꿔 주셨다.

 

봄소풍을 독립기념관으로 가게 되었다. 모처럼만의 사복과 친구들과의 외출에 들떠있었다. 마침 일본 고등학교에서도 수학여행을 온 모양이었다. 일본어를 제2 외국어로 갓 배운 우리들은 그들에게 이야기를 건네 보기로 했다. 수현이가 카메라를 들고 왔기에 사진을 찍자고 말을 건네기로 했다. 사진을 찍자는 유창한 말을 할 수 없었기에 “샤신오 토루”라는 “사진을 찍다”라는 말과 제스처를 하기로 했다. 다들 일본 친구들과 말 한마디라도 해보려고 열성이었다. 우리들은 다행히 사진을 찍자는 말에 흔쾌히 찍어주어 몇 마디 말을 더 할 수 있었다. 일본 여고생 중에 정말 눈에 띄게 아름다운 친구가 있었다. 우리는 저 친구는 꼭 사진으로 남겨야 해 하고 말을 걸었다. 일본 여고생은 우리의 말에 “잇쇼니?”라고 되물었고 우리 중에 누구도 알아듣지 못했다. 긍정을 하든 부정을 했어야 했는데 우리끼리 의논하는 사이에 어떤 일본 남학생이 먼발치부터 뛰어와서 그녀의 손을 잡아채고 도망가버렸다. 마치 불량배 사이에 둘러싸인 소녀를 구해 달아나는 듯한 장면을 연출해버렸고 우리는 순간 황당하였었다. 후에 알고 보니 “잇쇼니?”는 “함께?”라고 물어본 것이었다. 미소녀의 사진을 못 찍었지만 우린 많은 사진과 추억을 남긴 것에 위안을 했다. 일과가 마칠 무렵 수현이가 겸연쩍은 듯 웃으며 말했다.

 “미안, 필름을 안 꽂았어.”

그렇게 추억만 남았다. 반이 나누어지고 대학 진학을 하며 소식이 끊겼다. 보고 싶다 수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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