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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이랑 Sep 16. 2023

미식냥이

집사일지(60)

 이제는 두 살이 되어버린 시엘이는 아침에 수다쟁이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다 컸다고 의사표현이 확실합니다. 새벽에는 아내를 깨워서 츄르를 먹고, 새벽 6시가 되면 저를 깨워서 두 번째 츄르를 받아냅니다.


 자는 아내를 툭툭 손으로 건드려 깨웁니다. 아내는 주로 파란색 계열의 츄르를 줍니다. 제가 빨간색을 주겠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미식냥이가 되어버린 시엘이는 두 번째 츄르를 줄 때 같은 맛을 주면, 냄새만 맡고 휙돌아가버립니다.


 츄르를 주기 위해 이미 뜯었는데 그냥 가버리면 어떡하란 말이냐? 처음에는 황망해진 두 손을 어찌할 바 몰랐는데, 이제는 비닐랩으로 포장한 다음 냉장고에 두었다가 유산균 줄 때 섞어서 주고 있습니다.

외동묘인 시엘이는 어렸을 때부터 각양각색의 츄르를 조공받았습니다. 다양한 맛의 간식이 있지만, 치킨맛은 먹지 않습니다. 같은 제품으로 계속 주면 먹지 않기 때문에 한 두 달에 한 번씩 츄르 브랜드를 바꿔가며 주고 있습니다.


 사실 츄르도 끊어야 하는 건 아닌가 고민했습니다. 지난 건강 검진에 신장 수치가 안 좋았기 때문입니다. 수의사 선생님의 권고로 사료는 로얄캐닌에서 신장 케어사료로 바꿔서 조공하고 있습니다. 건강을 위해서 간식은 지양해야 하지만, 행복해하는 시엘이의 모습을 보면서 츄르를 끊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츄르는 주로 오전에 두 번, 저녁에 퇴근해서 한 번 조공합니다.

 팔다리가 길어서 날씬한 시엘이라 방심했더니 어느새 5.1kg가 되었습니다. 심장 사상충 약 기준이 4kg이라 제가 생각한 시엘이 적정 몸무게는 4킬로였는데 집사를 닮았는지 과체중입니다.


 츄르를 반으로 나눠서 주거나 용량이 적은 것을 사야 하나 고민이 됩니다. 그런 고민은 아침마다 츄르 달라고 이야기하는 시엘이를 보면 마음이 약해져서 잊어버리게 됩니다. 달력이라도 보는지 출근하는 아침이면 유난히 냐옹거리고 누워서 배를 보이며 애교를 부립니다:

 주말이면 계속 집에 있는 걸 아는지 출근하는 날과는 다릅니다. 그래서 시엘이를 속이기 위해 주말에도 출근준비를 해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다음 달에는 저도 건강검진을 할 예정이고, 시엘이도 건강검진 예정입니다. 건강검진을 하면 다시 시엘이의

행복을 줄여야 할지 고민을 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츄르 먹는 모습이 너무나 예쁘기에 집사의 행복과 시엘이의 행복을 추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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