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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이랑 Apr 28. 2024

당신 AI에요?

상담사도 감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외식업 10년, 상담업 5년...


 솔직히 말하면, 상담사를 하기 전에는 자리에 앉아서 전화만 받으면 되는데 뭐가 어려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원ooo 보쌈에서 근무할 때, 직원 채용을 하면 고객센터 경력이 있던 사람들은 오래 버티지 못하고 쉽게 그만두었기 때문에 약간의 편견이 있었습니다. 앉아서 전화만 받던 사람들이라, 힘든 일은 할 생각도 안 하고, 그만둔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몇 번의 경험을 통해 한 곳에 오래 근무했다고 해도, 고객센터 경력이 있으면 채용을 하지 않았습니다.


 사람 일은 한 치 앞으로 모른다고, 그러던 제가 상담사로 이직을 하게 되었습니다. 요즘 심정 같아선 돌아갈 수만 있다면, 다시 외식업에서 일하고 싶습니다. 몸이 힘든 것은 적응해서 할 수 있는데, 마음이 힘든 것은 적응이 되지 않습니다. 원ooo 보쌈에서 근무할 때는 주 6일에 10시간씩 근무를 했는데, 앉을 시간 없이 움직이는 업무를 했었습니다. 게다가 매장을 오픈했을 때는 그나마 있던 휴일을 반납하고 일해서 한 달에 3일 쉬고, 일만 한 적도 있습니다. 그때 힘들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때가 행복했다고 생각이 드는 것은 과거가 미화가 된 것일까요? 


 기본적인 상담업무는 어렵지 않습니다. 회사에서 제공하는 스크립트가(고객 문의 사항에 맞는 예상 시나리오) 있고, 시간이 지나며 업무 지식이 쌓이기 때문입니다. 단순 안내와 고객이 요청하는 정보에 대해서는 쉽게 안내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는 보통 2~3분이면 상담을 종료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상담을 잘하는 상담사들은 하루에 200건 가까이 받는 분들도 있습니다. 이런 류의 상담만 있다면, Ai에게 일자리를 다 빼앗겼을 것입니다. 


  Ai에게서 우리 일자리를 지켜주시는 "문제 해결"이 필요한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문제 해결 관련 건들은 단순 해결이 아닌 고객들의 이야기를 경청해야 하고, 마음을 어루만져야 합니다. 문제 해결이 되지 않아 민원을 제기하는 고객들로 인해 힘들어하는 팀원들에게 우리는 문제 해결을 하는 사람이 아닌 메신저라고, 생각을 하라고 조언합니다. 회사의 서비스 중에 불만이 생긴 고객들 중, 자신의 불쾌해진 감정을 상담사에게 쏟아내기도 하고, 욕을 하거나, 큰 소리를 치거나 협박을 하는 일도 종종 있습니다. 그로 인해 상담사는 눈물을 보이거나, 스트레스가 쌓이다가 퇴사를 하기도 합니다. 고객의 감정에 동화되거나, 마음에 담아둔다면 오래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래도 요즘은 상담사도 누군가의 가족이라는 캠페인들로 인식이 많이 개선된 편입니다. 하지만 일부는 아직도 여전합니다. 욕을 하게 만들면서, 피해자 코스프레를 한다고 비아냥대는 분들도 있습니다. 


  아래는 상담사의 민원 상담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상담 내용을 각색했습니다. (민원 상담 내용 중 일부를 각색한 건으로 특정 고객과의 상담 내용이 아닌 점 명시합니다.)

 "아저씨, 계약이 시작되고, 전혀 사용을 하지 못했으니, 위약금 없이 해지해주세요."

 "고객님, 계약하시고 사용을 못하셨다니 불편을 드려서 죄송합니다. 하지만 말씀 주신 위약금 없이 해지를 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왜, 안 된다는 거예요? 계약만 하고 이용을 못하는데.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관리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정상적인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고, 돈만 꼬박꼬박 출금해 가고, 이런 불합리한 계약을 제가 이행할 필요가 있나요?"

 "고객님, 불합리한 계약이라면 당연히 고객님 요청대로 해지해드립니다. 그런데 해당 건은 당사에서는 정상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나, 고객님 사유로 이용을 안 하고 계신 거라 위약금 없이 해지는 어렵습니다."

 "이봐요. 제가 사용을 안 하고 싶어서 안 해요? 계약하고 3일 이후부터 사용이 안 되잖아요. 당신들이 제공하는 서비스를 이용하려고 알려준 대로 진행했는데 안되잖아요. 그래서 AS 요청했는데, 이용할 수 있게 못했잖아요. 이건 당신들 사유 아니에요? 제가 손해 보면서 사용을 해야 하는 이유가 있나요?"

 "손해를 보면서 사용을 해달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고객님께서 말씀하신 내용에 대해 확인했는데,  AS 방문을 거부하시고, 원격 처리를 요청하셨습니다. 원격 처리가 불가한 부분으로 방문 안내를 드렸으나, 방문에 대해서 거부하신 걸로 확인됩니다. 그래서 고객님께서 직접 조치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안내드렸으나, 조작 미숙으로 되지 않는다고 하셔서 당사에서도 AS를 진행드리지 못한 것으로 확인됩니다."

 "어렵게 만들어서 사용을 못하게 한 건 당신들이잖아요. 게다가 모르는 사람이 제 집에 오는 것은 싫어요. 제 정보가 노출이 되는 거잖아요. 나쁜 맘먹고, 근무 끝나고 찾아오기라도 하면 어떡해요? 그리고 요즘이 어떤 시대인데, 원격으로도 처리를 못한다는 거예요?"

 "고객님, 처음 사용하시다 보니 어려우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당사를 이용하시는 고객 중 다수가 정상적으로 사용하고 있고, 조작이 어려우신 분들은 방문을 통해서 진행드리고 있습니다. 모르는 사람이 방문하는 것은 불편하실 수 있지만, AS를 위해 당사에 등록된 기사가 연락을 드리고 방문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업무 상 알게 된 고객님의 정보를 임의로 사용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임의 사용 시 사규뿐만 아니라 법적으로도 처벌이 가능합니다. 또한 원격 처리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프로그램을 설치하고, 진행해야 합니다. 그런데 해킹이 걱정이 되신다며 동의하지 않으셔서 원격 처리 불가로 방문 안내를 드렸습니다."

"당신 Ai에요? 왜 자꾸 앵무새처럼 똑같은 이야기만 하는 거예요? 당신이 잘못을 인정하면, 당신이 피해 보는 것이 무서운 거예요?"

 "고객님, 상담이 불편하셨다면 죄송합니다. 정해진 매뉴얼 내에서 안내드리다 보니, 동일한 내용을 말씀드렸습니다. 당사의 잘못이 있으면 당연히 인정했을 것입니다. 잘못을 인정한다고, 제가 피해를 보진 않습니다. 하지만 회사 사유로 인한 해지 요청이 아니기 때문에 위약금 없이 해지는 어렵습니다. 다시 한번 AS를 받아보시는 것을 제안드립니다."

 "당신이 피해 보는 것 없으면 해지해줘요. 저는 피해를 보고 있잖아요. AS는 안 받는다고요. 정말 말이 안 통하네. 제가 해지해달라고 했잖아요." 


                                                                  -후략-


 고객의 요청하는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순 없습니다. 최대한 요청 사항에 맞게 처리하고자 하지만, 고객의 이익과 회사의 이익이 상충되면, 회사와 고객이 계약한 내용에 근거한 기준에 의해 진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상담사 또한 타사의 고객이기 때문에 고객이 요청하는 내용에 대해서 개인적인 생각은 있을 수 있지만, 회사의 지침대로 진행을 합니다. 고객 입장에서는 말이 안 통한다고 느끼고, Ai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아무리 친절한 말투와 내용으로 상담을 해도, 고객이 원하는 바를 하지 못한다면 불친절하다는 이야기를 듣는 것이 다반사이니까요. 


 고객과의 "문제 해결" 상담은 Ai로부터 일자리를 지켜주지만, 사직서를 쓰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합니다. 하루는 20분 동안 상담을 했는데, 10분 동안 육두문자와 숫자가 섞인 욕을 먹었습니다. 평생 먹을 욕을 다 먹은 것 같습니다. 상담사는 3회 이상 욕설을 하면, 욕을 하시면 상담이 제한된다는 안내 멘트를 하고 선 종료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민원 상담이라 제가 종료하면, 그다음은 수습할 수 없이 일이 커집니다. 계속 사과하고 고객을 달래며, 상담을 종료할 수 있었습니다. 자존심도 상하고, 치욕감에 몸이 떨리고, 차라리 몸이 힘든 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 6일씩 10시간 동안 음식을 만들고, 서빙을 하던 그 시절을 떠올리곤 합니다. 마음이 토라진 여자 친구를 풀어주는 것 같은 곤란한 상황을 수시로 겪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미안해"

 "뭐가 미안한데?" 


그래도 마음이 토라진 여자 친구는 10분 동안 욕을 하진 않는데 말이죠. 자존감과 스트레스로 인해 상담사들의 근속 기간은 길지 않습니다. 상담사들은 대부분 일을 좋아해서 다니는 것이 아니라, 돈을 벌기 위해서 다닙니다. 대부분의 직장인도 일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돈을 벌기 위해 다니겠지만요. 


저는 힘든 민원 상담을 하고 나면, 액땜 부적 겸, 희망을 담아서 로또를 사곤 합니다. 상사 중에 명이 입버릇처럼 말했습니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세요."

 상사의 입버릇처럼 직장의 환경을 바꿀 순 없으니, 직장을 바꿔야겠지요. 마음에 사직서를 품고, 내일도 출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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