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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이랑 Sep 11. 2021

슈퍼맨이었던 아버지

무뚝뚝한 장남의 속내

 어렸을 때부터 우리 집은 가난하다는 걸 인지했다. 아버지께서는 누구보다 성실히 일하셨지만 외벌이로 다섯 식구가 먹고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버지께서는 물려받은 재산도 없었고 중학교도 그만두고 사회생활을 시작해야 했다. 어머니께서도 없는 살림에 우리를 알뜰살뜰 키우셨다. 아버지는 당시 100만 원 초반의 월급을 받았던 걸로 기억을 한다. 우연히 월급봉투에 적혀있는 금액을 보았었다. 그 당시 평균 임금은 모르지만 월세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큰 금액은 아니었을 거라는 건 짐작했다.


 가난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학교에서 부모님 직업란을 적을 때에는 “이사”라고 적었다. 아버지 친구가 대표로 있고 아버지는 “이사”라는 직함뿐이었지만 그래도 나의 자부심이었다. 아버지는 가장 힘이 세고 똑똑한 사람이었다.  

아침에 나가서 저녁 늦게 들어오셨고 일요일에도 회사에 일이 생기면 출근을 해야 했다. 


 아버지와 가장 많이 보낸 시간은 6시에 일어나서 7시까지는 안마를 해드렸는데 남동생과 한쪽 다리씩 맡아서 해드렸고 어깨와 등허리까지 안마를 했다. 밤에 잠을 못 이루고 뒤척이기 일쑤였던 나는 아침잠이 많았다. 아침에 안마를 하다 보면 조는 일이 태반이었고 그대로 반대쪽 다리로 차이며 잠을 깨곤 했다. 잘못을 하거나 마음에 들지 않을 때면 그대로 맞았기 때문에 대화하는 것조차 두려웠다.

 

 어렸을 때 학교에서는 공부를 잘하는 편에 속해서 항상 아버지께서는 지인들에게 팔불출처럼 나를 자랑했었다. 실제 성적보다 부풀려져서 자랑할 때면 민망할 때도 많았다. 레퍼토리는 나의 공부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해서 아버지의 어린 시절 공부 잘했던 이야기로 끝이 났다. 직접적인 애정 표현이나 대화를  안 하던 분이었고 나 역시 아버지를 닮아 무뚝뚝한 편이었다.


 중학생이 된 후부터는 아침 일찍 등교하게 되어 아버지를 안마하던 시간도 사라졌다. 저녁 늦게 퇴근하시는 아버지와 함께 하는 시간이 점점 줄었다. 어렸을 때 엄하고 무서웠던 아버지는 쉽게 다가가기 힘든 어색한 사이가 되었다.

고등학생이 되고 기숙사에 들어가면서 2주에 한 번 정도 집에 들렀다. 오랜만에 보게 되니 집에 갈 때마다 매우 반기셨다.


 고등학교 졸업식에 부모님과 외삼촌 내외가 함께 오셨다.

졸업식이 끝나고 아버지는 용기를 내셔서 “아들아, 사랑한다.”라고 말씀하셨다. 살면서 아버지께 처음 듣는 말이었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도 모르겠어서 대답을 하지 않았다. 어머니도 민망하셨는지 가만히 계셨고 외숙모가 “ 뭘 쑥스러워 하노. 저도 사랑합니다. 하면 되지.”하고 말씀하셨다. 머뭇거리는 걸 보고 어머니께서 화제를 전환하셨다.

 

 어렸을 때부터 애정표현을 잘 안 하는 아버지 밑에 무뚝뚝하게 자란 천성이 쉽게 바뀌지 않는다. 지금도 가족들한테 사랑한다는 표현을 하지 않는다. 아내도 가끔 표현에 인색하다며 이야기를 한다.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면 좋겠지만 표현하지 않으면 전해지지 않는다. 이성적으로는 알지만 쉽게 표현으로 옮기진 못한다. 아버지께서는 연세가 드시면서 자신의 일상 이야기부터 많은 이야기를 하신다.


 함께 하지 못하다 보니 보고 싶어서 더 그런 거겠지 하는 생각이 들지만 뵙고 싶어도 생업과 코로나를 핑계로 차일피일 미루어지고 있다. 무뚝뚝한 장남도 아버지뿐만 아니라 가족들이 많이 보고 싶다. 어린 시절 함께 있었던 시절이 떠오른다. 돌아보면 잡힐 것 같은 그 시절들 세월은 빠르게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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