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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이랑 Sep 12. 2021

엄마를 찾아서(1)

애증의 존재

 중학생이 되며 이성에 눈을 뜨고 야한  어른들 몰래 보기 시작했다. 어느 날, 아버지의 서랍에서 야한 책을 발견한 나는 부모님께서 자리를 비운 틈을 타서 몰래 서랍을 열었다. 야한 책을 꺼내 들었는데  밑에 가족관계 증명서가 있었다.


 가족관계 증명서에는 아버지와 엄마의 이름  생년월일 주소지가 있었다. 야한 책을 몰래 보려던 나의 관심은 이미 꺼진 지 오래였다. 엄마의 이름과 생년월일은 처음 보았다. 7 이후 어머니와 함께 살며 금기시되었다. 누군가 이야기하지 못하게  것은 아니지만 얘기를  사람이 없었다. 이제 주소는 알았지만 혼자 찾아갈 용기는 없었다. 엄마에 대한 기억은 사진뿐이었다. 아버지와 함께 전통복장을 입고 결혼을 한 사진을 보았는데 어머니와 살림을 합치며 사진들이 사라졌다.


 아버지 책꽂이에서 사전을 보다가 우연히 엄마의 사진을 찾았다. 한 장 밖에 안 남은 사진이었다. 가족들 몰래 혼자 보았는데 동생이  모습을 보았는지 어머니께 말씀드렸고 어머니는 내가 보는 앞에서  사진을 태웠다. 태우는 모습을 보았음에도 어떤 말도   없었다. 어머니께서도 아무 말씀 없으셨다. 동생을 원망했지만 표현을  수는 없었다. 남동생과는 비밀이 없었지만  하나 이야기할  없었던 것이 엄마에 대한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혼자 비운의 주인공인 줄 알았는데 중학생이 되고 나서 다른 친구들 중에도 이혼 가정들이 꽤 있다는 것을 알았다. 초등학생 때는 어리기도 어렸지만 친구들과 속 깊은 이야기를 하진 않았다. 중학생이 되며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그렇다고 굳이 재혼 가정이라는 이야기를 하진 않았다.

 

 특히 남동생은 나와 외형이나 성격이 많이 달랐기 때문에 주위에서 형이랑 안 닮았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동생과 나는 누가 가르쳐주지 않았어도 형은 아빠 닮고 동생은 엄마 닮았다는 이야기를 종종 했다. 여동생이 나와 남동생을 각각 닮았기 때문에 셋이 함께 있으면 그런 이야기는 쏙 들어갔다.  

 

 유년 시절에는 어머니와의 다툼도 많이 있었지만 초등학교 2학년 이후에는 많이 개선되어서 엄마의 빈자리를 느끼진 못했다. 다만 애교 많은 남동생이 어머니께  안겨 애교를 부릴 때면 엄마의 따뜻한 품과 사랑이 고팠다. 아버지는 애정표현에 서툴렀고 나 또한 점점 익숙해졌다. 하지만 어머니의 눈에는 아버지께서 나만 편애한다고 생각을 했는지 두 분이 서로 편애한다고 다투는 모습을 자주 보았다.


 성장하면서 점차 엄마에 대한 생각이 옅어졌다. 그런데 엄마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계기가 생겼다. 입대를 하면서 서러운 일이 생기거나 외로움을 느낄 때면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증폭되었다. 엄마에 대한 생각도 많이 났다. 2 무렵 할머니께 나만 남겨놓고 돈을 벌어 오겠다며 집을 나갔다는 엄마는 미안한 마음에 나를  찾는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미안하다 사랑한다라는 드라마에서 소지섭이 해외 입양되어 가난해서 자신을 버렸을 거라고 생각했던 엄마를 찾아서 한국에 돌아왔는데 부자인 엄마를 보고 복수하고자 하는 모습에 감정이입이 되어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제대를 하고 취업을 하면 엄마를 찾아봐야지 하는 생각을 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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