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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이랑 Sep 13. 2021

엄마를 찾아서(2)

엄마를 찾지 않기로 했다.

 군 복무 중에 안부 연락을 할 겸 아버지께 연락을 드렸는데 어머니와 이혼을 하겠다며 제대하고 중국에서 같이 살자고 하셨다. 마른하늘에 날벼락같은 소리였다. 당시 아버지께서 다니시던 회사의 대표가 중국으로 진출하기 위해 중국에 공장을 설립하고 한국의 공장을 부도를 내버렸다. 졸지에 실업자가 되었던 아버지는 친구였던 대표가 중국에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일하러 호출한 것에 응하셨다. 거리가 멀어지자 어머니는 아버지 소식만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아버지께서 중국에서 딴살림을 차렸다는 소문을 듣고 혼자 중국으로 찾아가셨다.

 

 어머니는 이미 상상의 나래를 편 상태이고 아버지는 타국에서 혼자 힘들게 일하는데 그런 의심을 받으니 어머니를 박대하셨다. 결국 크게 싸우고 이혼하겠다며 연락이 온 것이었다. 나에게 중국에 오면 산동대 쪽으로 유학을 할 수 있게 지원해준다고 하셨다. 어머니 살림만 한 주부였고 남동생은 갓 스물이 되었고 여동생은 중2였다. 유학은 좋은 기회였지만 생활력 없는 가족들을 저버릴 순 없었다. 복무 중인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지만 의견을 완강히 밝혔다. 이혼하려면 해라. 나는 내 동생들 보살펴야 하니 어머니랑 살겠다고 말했다. 그 이후 부모님 사이에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모르지만 이혼을 하진 않았다.


 아버지는 중국에서 생활비를 꾸준히 보내셨다. 제대하고 대학생이었던 나는 복학을 했고 여동생은 중 3이 되었고 남동생은 입대를 했다. 기러기 가족이지만 가족의 평화는 지킨 줄 알았으나 어머니께서는 우울증이 심해져서 약 처방을 받고는 있었지만 술에 의존하셨었다. 날마다 술을 드시고 오셔서 주정하다시피 했고 여동생과는 나이 차이가 있어서 서먹서먹했었는데 친해지는 계기가 되었다. 어머니와는 벽이 생기게 되었는데 취중진담을 들어서였다. 어머니께서 술에 취해 여동생과 배웅을 나갔다. 나를 보자마자 “너는 내 아들 아니야. 내 아들 데려와.” 하고 울부짖으셨다.


 아버지에 대한 배신감과 남동생의 빈자리가 커서 그랬겠지만  모습과  말은 나에게도 상처였다. 깜짝 놀란 여동생은  순간에도 먼저 나를 위로했다. “오빠, 엄마가 많이 힘들어서 그래. 진심으로 하는 이야기 아닌  알지?” “엄마, 정신 차려. 나중에 후회할 말을  함부로 .” 어린줄 알았던 여동생이 오빠인 나보다 어른스러웠다. 어머니를 혼내기도 하고 달래기도 하며 집으로 향했다. 어머니는 술에 자꾸 의존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아버지께서 어머니 몰래 엄마를 찾았다고 하는 소문을 들었다고 한다. 어머니와 살겠다고 안심시켜놓고 배신하고 엄마와 살려고 했다는 오해를 하신 모양이었다.


 대체 당사자도 모르는 소문은 어디에서 생기는지 모르겠다. 아버지의 이혼하겠다는 이야기를 들은 후 아버지와 연락조차 하지 않았다. 배신감을 잔뜩 느끼고 있는 어머니가 있어 엄마를 찾을 수 없었다. 제대를 하고 찾아보아야겠다고 생각했던 계획도 접었다. 시간이 흘러 아버지께서 결국 귀국하셨다. 중국에서 오래 있었는데 중국어는 전혀 늘지 않으셨고 “콰이 라이”만 외치셨다. 아버지는 한동안 백수로 지내셨다. 어머니께서는 그래도 같이 있는 게 좋으셨던 것 같다. 술을 많이 줄이셨다. 아버지는 가끔 중국에서 일하던 그때를 그리워하며 어머니 때문에 돌아왔다며 원망하신다. 그래도 가족은 함께 살아야 한다.


 엄마를 찾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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