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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이랑 Sep 15. 2021

 오랜만에 뵙는 이모

세월은 빠르게 흐른다

 이모에게 전화가 왔다.

“이모야, 이쪽으로 이사 왔다며? 어디야?”

“이모, 안녕하세요. 미리 연락드렸어야 했는데, 이사하느라 정신이 없었어요.”

“그럴 수 있지. 조카가 인근으로 이사 왔다는데 어떻게 사는지 볼까 하는데 어디로 가면 되니?”

“이사하고 정리가 안돼서 제가 뵈러 갈게요.”


 집에 방문하시겠다는 이모를 만류하고 일요일에 찾아뵙기로 했다. 인천에 살고 계셔서 인천 이모로 불렀었다. 이모의 딸 중에 막내 누나는 한 살 위라 종종 어울렸다. 같은 인천이어도 검색을 해보니 40~50분 정도 걸렸다. 아내는 같이 가긴 했지만 이모 댁은 안 따라가기로 하고 카페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처음 가는 곳이라 길을 찾아 헤맸다. 1~2호, 3~4호 이런 식으로 호수별 계단이었는데 17호였는데 7호 라인으로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왔다. 마중 나오겠다는 이모께 알아서 찾아간다고 큰소리쳤는데 살짝 후회스러웠다. 17호 라인 앞에 이모가 보였다. 오랜만에 뵈었는데 여전하셨다. 이모를 따라 집으로 들어갔고 점심을 차려주겠다고 하셨다. 식사 시간을 피해서 방문드렸는데 챙겨준다고 하셔서 사양하진 않았다.


 아침을 늦게 먹은 탓에 배가 고프진 않았지만 하나라도 챙겨주려는 이모의 마음을 모르진 않았다. 들어오는 길에 빈손으로 갈 수는 없어 음료수 1박스를 사들고 갔는데 혼이 났다.

 “아껴야 하는데 뭘 이런 걸 사 왔어? 젊을 때 돈을 모아놓아야 해. 돈만 있으면 연락 안 하던 친구들도 연락 온다. 돈이 없으면 연락하던 친구들도 괄시해.”

 

 이모는 생각났다는 옛이야기를 하셨다. 예전에 이모가 어머니 친구와 가게를 하기 위해 우리 집 옆에 터를 잡고 내려오신 적이 있었다. 벌써 10년도 더 지난 일이었다. 개업식에도 어머니와 찾아갔었고 이모는 열심히 하셨다. 동네 가게라 매출이 좋진 않았고 어머니 친구가 돈을 대고 이모는 함께 일하고 월급을 받기로 했었다. 어머니 친구가 기대 수익이 나오지 않자 가게를 정리했다. 그 과정에서 이모와도 다투셨고 급기야 돈문제로 의가 상해서 연을 끊었다.


 잘 될 것만 생각하고 터전을 잡았던 이모는 우리 동네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간이역 하나 있는 시골 마을에 부동산조차 없었기 때문에 프린트도 직접 하고 문어발 식으로 연락처를 가져갈 수 있도록 잘라서 전봇대 등에 붙여야 했다. 이모는 집이 정리될 수 있도록 도와준 것에 고맙다며 눈물을 훔치셨다.


 사실 시기상 남동생이 군대를 가고 내가 대학생일 때라 내가 한 것이 맞는 것 같은데 기억이 나진 않았다. 기억에 남지도 않는 일로 고마워하셔서 몸 둘 바를 몰랐다. 심지어 “이모, 제가 사람들이 볼만 한 곳에 다 붙여놓았으니 곧 인천으로 올라갈 수 있을 거예요. 걱정하지 마세요.”하고 말했다고 하셔서 혹시 남동생이랑 착각한 것은 아닐까 싶었다. 그 정도로 살가운 성격은 아닌데 상황이 상황이었나 보다.

 

 이모는 요즘 손자 보느라 정신이 없다고 말씀하시며 막내 누나의 큰 딸 자랑을 하셨다. 이제 중 1인데 공부도 잘하고 그림도 잘 그린다고 하셨다. 왼손잡이인데 공부까지 잘해서 내 어렸을 때 생각이 났다고 하셨다. 그리고 막내 누나가 “나 닮았으면 공부를 못할 텐데 누굴 닮았지?” 하고 말했다며 웃음을 띄었다.


 남동생 결혼식에 이모의 식구들을 보고 오랫동안 못 보았다. 이모는 노후를 준비하며 다시 어머니 옆 집으로 이사를 갈까 한다고 했다. 아직 결정된 건 아니지만 이번에는 좋은 일만 있었으면 좋겠다. 옛날이야기도 하고 손자, 손녀 이야기도 듣고 시간이 빨리 지나갔다. 이모가 차려준

점심상을 받았는데 어머니께서 겨울마다 해주던 사골국을 끓여주셔서 옛 생각이 났다. 양념 게장이라 가지볶음 등 다른 반찬을 꺼내려는 이모에게 다른 반찬은 없어도 괜찮다고 했는데 반찬을 가리는 줄 오해하신 것 같았다. 하지만 이미 밥과 국 만으로도 배를 다 채울 것 같아 반찬이 필요하지 않았다.


 이모는 아내와 함께 오지 않아서 아쉽다고 재차 말씀하셔서 함께 왔는데 들어오는 것은 부담스럽다고 해서 카페에 있다고 이실직고했다. 이모는 아내를 혼자 카페에 두면 서로 불편하다며 카페에서 함께 보길 원하 섰다. 아내는 화장도 안 하고 왔다며 다음에 준비해서 제대로 뵙겠다고 사양했다. 이모는 아쉽다며 직접 하신 김치와 반찬을 챙겨주시고 집 앞까지 배웅 나오셨다.


이모의 주름과 손자, 손녀 이야기에서 세월이 정말 빠르게 흐르는 것을 느낀다. 이제 전보다 가까이 사는 만큼 종종 찾아뵈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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