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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이랑 Sep 17. 2021

진이랑

내 생애 가장 큰 선물

 처음 보았을 때부터 호감인 사람들이 있다. 첫인상의 영향은 관계 형성에 매우 중요하다. 야간 근무자를 채용해야 해서 이력서를 보았는데 눈에 들어오는 이력서가 있었다. 야간 근무는 밤을 새워서 일하는 거라 며칠 못하고 그만두는 사람이 태반이었다. 보통 구직을 위해 자신의 장점만 쓰는데 급한 성격이라 십자수를 하며 성격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문구 외에 꾸준히 일을 하고 서비스업에서도 일한 이력들을 보고 꼭 채용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규 발령 났던 점장이 직접 채용 중이어서 그 이력서를 출력해서 채용해달라고 했는데 다른 사람을 채용하기로 했다고 했다. 혹시 모르니 내가 요청한 사람에게도 연락해놓으라고 이야기했으나 면접 봤을 때 괜찮았다며 거절했다. 점장이 채용하기로 한 사람은 결국 오지 않았고 이력서를 보고 바로 연락해서 채용하기로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다른 곳에서 연락이 와서 가기로 했는데 동선이 좋아서 제안을 받았다고 했다.


 그녀는 20시에 출근을 했는데 첫 출근에 정리가 안 된 테이블을 정리하면서 들어와서 다른 직원들의 호감을 샀다. 밝은 얼굴에 명랑한 목소리로 신속하게 일을 해서 고객들도 만족했고 다른 직원들은 못 받은 팁을 받기도 했다. 보쌈집인 데다 서빙만 할 뿐이라 팁 받는 경우가 적었기 때문에 직원들이 부러워했다. 일도 잘하고 혼자서도 자신의 일처럼 도맡아 했기 때문에 종종 사무를 보기 위해 맡겨놓고 사무실에 올라가기도 했다.


 매장이 2층으로 되어 있지만 야간에는 1층으로만 운영하고 2층을 오픈하지 않았다. 홀 인원이 2명이지만 1명이 고객 관리를 하는 사이 1명은 내일 사용할 배달 준비 및 재료도 채우고 마감 업무도 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녀는 종종 물어보지도 않고 2층을 오픈하고 1,2층을 오가며 일을 했다. 우리 장사가 아니라 매출이 더 높다고 해서 인센티브가 나오는 것도 아니라 적정선에서 일을 하는데 오버페이스로 하는 것이었다. 사장님이 아신다면 상을 줄만한 일이었지만 나는 맡은 시간 내에 일을 끝내야 했고 변수를 좋아하진 않았다. 그래서 종종 마찰이 있었지만 그녀는 신경 쓰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며 동갑내기에 일도 잘해서 편한 친구가 되었다. 처음에는 이성으로 생각을 하진 않았다. 당시엔 여자 친구랑 만났다가 헤어진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였다. 그런데 주위에서 잘 어울린다는 이야기와 그녀가 나를 좋아한다며 부추기는 직원들이 있었다. 사실 여자 친구랑 연애 이야기부터 미주알고주알 할 정도로 친했고 그녀도 썸 타는 사람 이야기를 해서 이루어질 일이 없다고 생각했었다.


 생일에 특별한 일은 없었지만 군대에서 데모를 막으며 생일을 보내며 다음 생일에는 일은 안 하겠다며 제대 이후 생일만큼은 연차나 휴무로 일을 하지 않았다. 그녀가 생일에 쉬는데 뭐할 거냐고 물었고 특별한 일정은 없다고 말했다. 그럼 영화나 보자고 그녀가 제안했다. 나는 소위 말하는 그린라이트인가 했다. 그래서 영화를 예매하고 맛집을 찾아서 함께 식사를 했다. 식사를 하며 이야기하다가 소재가 떨어졌다. 함께 일하며 만난 사이라 평소에 일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그 자리에서도 일 이야기를 할 순 없었다. 과거 이야기를 하다가 과거 연애사를 이야기했는데 흥미를 보이는 것 같아 이야기하다 보니 고해성사가 되었다.


 영화는 “그것”이었는데 공포 영화를 보면서 심장이 빨리 뛰고 이성에 대한 호감으로 생각하게 되어 시작하는 연인을 위해 공포영화가 좋다고 해서 예매했는데 완전히 망했다. 야간에 일을 하고 주간에 자는 패턴이다 보니 주간에 잠을 안 자고 나와 영화를 보니 그녀는 안방보다 편하게 숙면을 취했다. 당황스러웠고 영화는 재미없었지만 혼자 할 것도 없어 끝까지 보았다.


 영화가 끝나고 그대로 헤어지는 것도 아쉬워 주꾸미 집에서 한 잔 하기로 했다. 그녀가 술을 좋아해서 함께 마시다 보니 둘 다 취기가 올랐다. 고백 타임을 놓치고 있었는데 취중진담으로 고백을 하고 그녀는 쿨하게 받았다. 의도하진 않았지만 9월 17일에 고백하면 크리스마스가 100일이라 고백데이라고 한다. 투머치로 말하면 우리 결혼기념일은 7월 7일이다.


 그녀는 나중에 술이 원수라고 했다. 나는 남녀의 큐피드는 술이라고 이야기하곤 한다. 술로 시작한 나의 연애가 어느덧 결혼까지 골인했다. 그녀와 평생을 함께 하기로 했고 작가명의 “진”은 그녀의 이름의 끝 글자이다. “진이랑” 진이와 함께라는 뜻으로 지은 작가명이고 그녀는 나의 1호 팬이다. 오늘 아침에 자기도 기념일인데 남편 생일 밥상을 차린다며 투정을 부리고 갔지만 애정 어린 투정이라는 걸 안다. 내 생애 가장 큰 선물은 나의 아내이다. 평생 아끼고 사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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