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만식 소설로 그 시대 엿보기
8.15 광복절!!
역사적으로 뭉클한 날이지만, 개인적으로 일상을 하루하루 살다 보면 스쳐 지나가는 날 중 하루입니다. 직접 겪은 세대가 아니고, 할아버지, 할머니 시대의 이야기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어렸을 때는 막연히 일본은 우리나라를 약탈한 나쁜 나라라는 생각이었습니다. 명성왕후를 시해하고, 을사늑약을 통해 외교권을 빼앗고, 경술국치로 국권마저 빼앗은 나라, 여러 자원을 수탈하고, 그럼에도 적절한 사과 없는 나라, 가깝지만 먼 나라라는 수식어 그 자체였습니다.
지금은 책이나 매체를 통해 접할 때, 우리나라와 일본이라는 이분법적인 사고로 대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 친일을 한 사람과(을사오적 외 친일파) 나라를 위해 목숨을 건 사람, 운명에 순응할 수밖에 없던 소시민, 크게 드러내진 않지만, 은밀히 독립군에게 자원을 지원했던 간도에 살던 사람의 이야기를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역사에 주목할 만한 이야기는 아니라 잘은 모르지만, 일본에서도 제국주의 모두 찬성하진 않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 시대를 살아가던 저마다의 입장과 사정들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을 합니다.
채만식의 [논 이야기]를 보면, 당시의 삶을 약간이나마 엿볼 수 있었습니다.
부지런한 농사꾼이었던 한생원의 아버지는 동학 농민에 가담했다는 누명으로 조선의 관리에게 열세 마지기의 논을 빼앗깁니다. 한생원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남은 일곱 마지기의 땅으로 각종 세금을 내며, 힘에 겨운 빚을 지게 됩니다.
일본인 요시카와가 땅을 비싸게 산다는 소식을 듣고, 삶의 터전인 일곱 마지기의 땅을 팝니다. 그리고 한생원은 광복이 되면 일본이 쫓겨날 테고, 그 땅은 원래 주인이었던 자신에게 돌아올 것이라는 기대를 가집니다. 그렇게 누구보다 광복을 기다립니다. 꿈에 그리던 광복이 되지만, 일인의 재산은 처분되어 이미 다른 사람의 소유가 됩니다. 한생원은 광복이 되었지만, 삶이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한생원 입장에서는 동학의 누명을 씌워 수탈한 조선이나 각종 세금을 징수한 일본이나 삶을 힘들게 하는 건 매한가지였을 것입니다. 광복이 되면 달라질 것이라는 희망이 있었지만, 입에 풀칠하기도 힘든 농민 입장에서는 광복이 되었다고, 삶이 갑자기 좋아지진 않았을 것입니다.
만약, 저는 그 시대를 살았다면 어떤 사람이었을까 라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저는 한생원 보다는 P에 가까웠을 것입니다. P는 채만식의 [레디 메이드 인생]의 등장인물입니다.
P는 고등교육을 받았지만, 취업을 못하고, 술로 자신의 인생을 달랩니다. 아들도 있지만 홀아비에 백수인 자신의 형편에 아들을 키우기 어려워 농촌에 있는 형에게 맡겼습니다. 형도 형편이 어려웠고, P가 약속한 돈을 보내지 않아 조카를 소학교 마저 중퇴시킵니다. 기약 없는 동생의 약속을 기다릴 수 없어 P에게 돌려보냅니다. P는 어린 아들을 인쇄소의 심부름 꾼으로 맡기고, 레디 메이드 인생이 끝났다고 하며 후련해합니다. 아들의 삶도 바뀌겠지만 아들과 함께 살기 위해 자신도 어떤 일이든 하겠다는 삶의 태도가 바뀐 걸 의미하는 중의적인 표현이라고 생각됩니다.
P는 고등교육을 받았지만 구직을 못하는 현실을 한탄하며, 오히려 고등교육을 안 받았더라면 몸을 쓰는 일이라도 했을 텐데 하고 생각을 합니다.
저는 예전에 여동생의 직장에 가족추천으로 지원한 적이 있습니다. 여동생이 말하길 가족적인 회사라 가족 추천으로 지원하면 대부분 붙는다고 했습니다. 불합격 소식에 동생이 의아해했습니다.
”오빠, 생산직으로 지원한 거 아니야? 혹시 대학교 졸업이라고 기재했어?”
“응, 관리직으로 지원했어. 대졸이라고 적었지. 지금까지 놀았다고 적을 순 없으니까.”
“생산직으로 우선 입사를 하고, 나중에 사내 교육 과정 진행해서 관리직으로 전환도 되는데. 그리고 생산직에서는 대졸자들은 퇴사율이 높아서 채용을 잘 안 한단 말이야.”
여동생의 말대로 했더라면 지금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을지 모릅니다. 지방대에 좋은 성적도 아닌 대졸이란 학력이지만, 굳이 숨기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P가 더 이해되었는지 모릅니다.
과거 못 배운 한을 자식들에게 풀며, 자식들은 열심히 공부를 해서 자신보다 나은 삶을 살길 바라던 할아버지, 아버지 세대.
아직도 높은 교육열로 사교육비가 높은 나라로 손꼽히지만, 지금의 세대는 윗 세대보다 풍족한 자원으로 공부보다는 자녀의 꿈을 찾아주기 위해 노력을 합니다. 어린 나이에 모델이나 유튜버, 가수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스타들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습니다.
P는 할아버지 세대입니다. 일제 강점기의 무능한 인텔리. 시대를 한탄하며, 술로 허송세월을 보내던 P에게 아들과의 조우는 인생 전환의 계기입니다. 고등교육이 인생을 책임져주진 않는다고 생각하여 아들을 인쇄소의 심부름꾼으로 넣습니다. 인쇄소에서도 P의 아들이 맞는지 되묻는 장면을 넣을 정도로 당시의 정서로도 이해하기 어려운 모양입니다. 어린이는 일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학교에 가야 하니까요. P의 아들은 장래에 그의 아들에게 자신이 못다 한 교육에 대한 지원을 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결핍은 욕망으로 바뀌고, 욕망은 삶의 원동력이 되고, 그 과정에서 알게 된 노하우를 자식에게 전하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대물림으로 이어지는 현재, 채만식 소설을 통해 그 시대를 그려보며, 일상 속에서 글을 남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