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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이랑 Jul 31. 2021

꿈을 찾아서

할 수 있는 일과 하고 싶은 일

 어렸을 때 꿈을 물으면 남자는 대통령이 다수였던 때가 있었다. 꿈은 크게 꾸는 거라고 했다. 나의 어릴 적 꿈은 몇 번 바뀌긴 했지만 선생님이었다.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해 "책벌레"라는 별명을 갖고 있던 나에게 적합한 직업이라고 생각을 했고 누군가를 알려주며 보람을 느꼈던 좋은 경험이 있었다.

 

 중학생이 되었을 때 어머니와 미래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가정형편이 어렵고 동생이 둘이나 있었고 실업계를 가서 취업을 하는 것을 권유하셨다. 현실을 직시한 나는 그 이야기 이후 공부에서 손을 놓았다. 물론 노는 것이 좋아했던 나에게 좋은 핑계이며 탈출구였다. 어차피 취업할 거라며 노는 것에 집중했다. 공부를 하지 않으니 성적도 많이 떨어졌다.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부모님 면담을 했는데, 아버지께서 대학 진학을 시킬 거라며 인문계를 고집하셨다. 아버지는 가정형편 때문에 공부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자신의 어린 시절을 종종 말씀하셨는데 내가 그 길을 따라가는 것이 싫으셨던 건 같다.

 

 인문계를 진학했지만 공부에 정진하던 친구들과 경쟁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중학시절을 노느라 허비해버린 나에게는 기초가 없었다. 국어와 암기 과목은 그런대로 성적이 나왔지만 가장 중요한 영어와 수학이 시험 난이도에 따라 들쑥 날쑥이었다.


 교대를 목표로 했지만 수능은 어려웠고 영어와 수학이 발목을 잡았다. 성적에 맞춰서 선생님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SH대 특수교육과와 CN대 인문학과 및 KUT 산업경영학부를 지원했고 다행히 3곳 모두 합격을 했다. 여러 가지로 고민하다가 KUT에 입학을 했다. 산업기사 자격증을 취득하면 직업훈련학교 교사를 할 수 있다고 알아보고 입학했다. 하지만 이공계열만 해당하고 산업경영학부는 신설학부로 해당되지 않는다.

 

 결국 선생님이란 꿈은 포기하고 서비스업으로 취업을 했다. 서비스업에서도 일정 직위 이상하면 서비스 강사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일정 직위를 도달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한국 교원 자격증을 준비하여 2급을 취득했다. 하지만 취업연계가 쉽진 않았다.

 

 이직을 준비하던 중 코로나를 맞이하게 되고 공백기가 주어졌다. 40대를 앞두고 있어 취업이 쉽지 않았다. 2곳의 직장에서 각각 5년 가까이 일해서 10년을 일했음에도 나에겐 기술도 화려한 이력도 없었다. 많이 먹은 나이와 차별화되지 않은 이력은 나락에 빠뜨리기에 적당했다.

 

 놀고 있을 수는 없어 상담 업무를 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누군가를 알려줄 수 있어 보람을 느꼈고 이곳에서 성장을 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급여를 받을 때면 가장으로서의 중압감과 미안함을 느꼈고 고객의 부정적인 감정을 표출하는 것은 견디기 어려웠다.

 

 공부도 때가 있다는 것은 정말 맞는 말이다.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면 정말 열심히 할 텐데 하고 생각을 해보지만 뒤늦은 후회일 뿐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경제적인 여유를 누리는 것은 정말 복 받은 사람이라고 생각을 한다. 20대에는 취업으로 고민하고 30대에는 이직으로 고민을 하다가 나이가 들면 일을 하고 싶어도 못할까 봐 고민을 하는 것은 아닌가 하고 생각을 한다.

 

 오늘도 할 수 있는 일과 하고 싶은 일 사이에서 고민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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