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 전, 처음으로 학회 수퍼비전을 받을 때의 일이다.
의뢰서를 확인하니 내담자는 과잉행동이 매우 두드러져 학교 안팎으로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학생이었다. 상담센터의 문이 열리고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도 없이 '우다다' 소리와 함께 접수 면접이 시작되었다. 나는 냉정을 잃지 않기 위해 짐짓 태연한 척하며 아이를 관찰하였다. 이윽고 보호자의 서류 작성이 끝나자 나와 내담자는 단 둘이 상담실에 남겨지게 되었다.
혼비백산이었다. 1분, 아니 30초 간격으로 자리에 일어나 날뛰는 내담자를 부드럽게 달래도 보고 시곗바늘을 기준 삼아 회기를 짧은 시간으로 나누어도 보았지만 타는 내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의 행동은 멎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내 머릿속에 이런 생각들이 스치기 시작했다.
'얘는 상담으로 될 애가 아니잖아', '이런 애는 약을 먹여야지 상담자가 할 수 있는 게 없어', '얘는 안 되는 애잖아.'
내 생각을 증명이라도 하듯 갖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이의 행동은 점점 더 심해졌고,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로 50분은 흘러가 버렸다. 버럭 화를 내지 않았다는 것에 위안을 삼으며 애써 미소를 띤 채 내담자를 돌려보냈지만 마음이 편할리 없었다. 첫 상담부터 이런 케이스를 배정한 수퍼바이저에게 원망하듯 하소연하자 그가 대뜸 이렇게 말을 했다.
'선생님, 다음 주에는 제가 직접 상담을 진행할 테니 들어와서 참관을 하도록 하세요.'
농담이겠지. 쟤를 수련생이 보는 앞에서 상담하겠다니.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에서 다음 주 진땀을 빼며 곤혹스러워하는 수퍼바이저의 모습이 그려졌다. 괜히 내 앞에서 망신살을 뻗치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가도 그만한 재밌는 광경도 없겠다는 반사회적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고 나면 민망해서 어떻게 하지 센터를 옮겨야 하나?'
기우도 그런 기우가 없었다. 일주일이 지나고 거짓말처럼 아이는 평온히 수퍼바이저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냥 대화를 나누는 정도가 아니라 50분 동안 한 번도 자리를 이탈하지 않는 것이었다. 저번 주 내가 본 애가 맞나 싶어 어안이 벙벙할 정도였다. 그 와중에 수퍼바이저의 손은 빠르게 아이의 언어를 받아 적고, 입은 적시에 필요한 반응을 내뱉고 있었다. 상담이 끝나고 꾸벅 인사까지 하고 가는 그 아이를 보니 겸연쩍어 넋이 나간 마냥 서있는데 수퍼바이저가 다가와 조용히 말을 전했다.
'저 아이는 분명 눈에 띄게 좋아질 거예요.'
그렇다. 사실 그냥 내가 못하는 거였다. 그도 그럴 것이 단독으로 정식 상담을 맡아본 적도 없는 초보자가 잘해봤자 얼마나 잘할 수 있었겠는가. 하지만 그건 중요한 사실이 아니었다. 내가 놀랐던 건 나의 무능을 아이에게 전가하여 스스로 자존심을 지키려 한 치졸한 나를 마주했기 때문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주제에 무슨 자신감으로 내담자의 가능성을 상담자가 차단해버린 걸까. 생각이 거기서 나아가자 탄식이 터졌다.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나같이 오만한 선생님, 부모님, 기타 어른들 때문에 '안 되는 애' 취급을 받고 있을까. 사실 '더 나은' 혹은 '성향이 다른' 누군가를 만나면 훨씬 좋아질 수 있는 사람도 누군가의 오만이 그 앞을 가로막고 있지는 않을까. 사실 '안 되는 애'는 나를 비롯한 그들이 아닐까.
시간이 흐른 지금도 상담 장면에서 고비를 맞을 때면 그때의 경험을 떠올리곤 한다. 물론 나와 상담하는 모든 아이들이 드라마틱한 변화를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미안하면 미안했지 그때처럼 낙담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그건 그냥 내가 못하는 거니까. 내담자를 위한 다른 최선의 방법을 찾되, 내가 더 나아지면 되니까. 설사 진짜 '안 되는 애'라고 해도 그걸 내가 판단하기에 백 년은 이르니까. 내 깜냥에 뭘 재고 있나.
수퍼바이저의 말처럼 그 아이는 몇 주 안가 놀라울 정도로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고는 상담이 종결되었다. 지금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지 궁금하기도 하다. '안 되는 애' 취급하던 그때의 나 같은 어른들만 아니라면 아마 잘 지내고 있지 않을까? 나는 그렇게 믿는다. 이러한 믿음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만나는 내담자들에게 전해지는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이 종종 '안 되는 애'를 '되게' 만들기도 한다. 내게 다가와 속삭이던 수퍼바이저가 그렇게 했던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