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친구로부터 시작된 나의 글쓰기 여정과, 그 의미
[생각이 많아지면, 글을 씁니다] 나에게 있어 '글쓰기'란?
돌이켜보면 '글쓰기'란 말 보다는, '글짓기'라는 단어를 먼저 알았던 것 같다. 유년 시절의 글쓰기란 대개 'OO글짓기 대회'와 같은 공식적인 행사에서, 주어진 시간 내에 특정 주제에 대한 글을 쓰는 특별한 경험이었기에, 평소엔 접할 일 없는 낯선 행위로 다가왔던 것이 사실이다. 처음 글짓기 대회에 참여했을 때의 글감은 전혀 기억나지 않고, 그 때 만개했던 벚꽃들, 먹었던 김밥, 그리고 소풍나온 것 마냥 돗자리에 엎드려 글을 쓰고 있던 또래들의 모습만 아직도 생각나는 것을 보면, 글쓰기를 어지간히도 특별한 경험이라 생각했었나보다. 그렇기에 당시의 내게 글쓰기란 익숙하지 않은 것이었고, 나의 생활과는 큰 관계가 없는 것이라 여기곤 했다.
어렸던 내게, 글쓰기가 다른 의미로 다가왔던 것은 정말 별 것 아닌 이유에서 비롯됐다. 치기 어린 호승심에서 시작된 것이라 할 수 있으려나. 당시 나름 책을 많이 읽고, 익숙하진 않더라도 글 좀 쓴다 스스로 생각하고 있었지만, 중학교에 입학하고서 나보다 훨씬 대단한 녀석과 같은 반에서 마주해버렸다. 입학하고서 처음 열린 교내 글짓기 대회에서 그 친구가 쓴 글을 처음 봤을 때는 '이게 중학생의 글이라고?'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던 것 같다. 당시 느끼기에, 그 글은 신문 사설과도 거의 다를 바가 없어 보였으니 받은 지적 충격이 꽤나 컸던 듯하다. 독서나 글쓰기에서 나름 자부했던 바가 정말 별 것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후, '그 친구처럼 잘 쓰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고, 이는 그 친구에 대한 일종의 동경으로 발전했다. 나중에 그 친구의 집에 놀러 가 보니, 그 친구의 방은 방 3면이 모두 책장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이는 그 친구가 대단한 독서가임을 나에게 말해주고 있었다. 글을 많이 읽는 것이 결국 좋은 글쓰기로 이어진다는 것을 그의 방을 보자마자 알 수 있었다.
그 후 나의 목표는 무조건 많이 읽는 것이었다. 틈날 때마다 책과 신문을 읽었고, 무슨 말인지도 모르는 책들도 무작정 사서 읽고 봤던 시기였던 듯 하다. 부모님도 '얘가 이런책을 이해하면서 읽고 있긴 한가'하고 한번쯤은 생각하셨을 법도 한데, 묵묵히 도서 구입을 지원해 주셨고, 이는 지금 돌이켜 생각하면 감사할 따름이다.
(암만 생각해도 그 때 톨스토이의 '인생이란 무엇인가'를 사서 읽은 것은 중2병 지적 허영의 극치였지 싶다.)
아울러 글쓰기에 열정이 많으시던 국어 선생님의 지도하에 '문예부' 활동을 그 친구와 함께 하며 많이 읽었고, 많은 글을 쓰고 서로의 글에 대한 감상을 부원들과 나누며, 문학 답사까지 다녀보며 책과 글에 온전히 집중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어린 나이에 무슨 대단한 얘기들이 오고 갔겠느냐마는, 아무것도 모르고 책과 글에 파고들었던 경험들이 현재 나의 자산으로 오롯이 축적된 것 같아, 그 시기를 지금도 값지게 생각한다.
그 친구와는 고등학교도 함께 진학했다. 고향을 떠나 다른 먼 지역에 있는 고등학교로 진학하는 것이어서, 그만큼 더 특별하게 여겨졌던 듯 하다. 고등학교에서는 입시에 치이는만큼 이전만큼 책을 읽고 글을 쓸 시간이 없었지만(아니, 거의 못 읽고 거의 못 썼다고 하는 것이 정확할 것 같다), 많이 읽고 쓴 자산이 결국 학습능력에 있어 어떻게 발현되는지를 그 친구를 통해 알 수 있었다. 그 친구가 언어(국어)영역에서 문제를 틀리는 일은 거의 본 적 없었고, 대학도 논술전형으로 한 번에 합격하는 것을 보며, '역시 명불허전이다'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대학을 한 방에 붙지 못했던 내가 당시 그 친구를 얼마나 부러워했던지...! 그래도 학창 시절 내내 그 친구로부터 긍정적인 영향을 받으며, 글쓰기와 독서에 대한 인식을 새로이 정립할 수 있었으니, 그 친구에게는 항상 감사할 따름이다.
대학에서는 '숫자'와 관련된 경영학을 전공했지만, 주된 관심사는 역시나 주로 '글자'와 관련된 것들이었다. 교양 과목에서 대개 많은 학생들이 귀찮아하는 '에세이' 형식으로 과제가 나오고 시험을 치르는, 사회/예술/철학/역사와 같은 인문사회 과목들을 주로 찾아다녔고, 이를 통해 또 다시 많은 글을 쓸 기회를 스스로 만들어 볼 수 있었다. 유년기의 글짓기 대회에서의 수상마냥, 제출된 에세이가 성적으로 치환되는 형식이 다소 어색하긴 했지만, 그럼에도 글을 쓰는 과정 자체를 나름 즐겼던 듯 하다. 다른 제약 없이 많은 책과 자료들을 찾아 읽고, 충분히 숙고한 뒤 글을 쓸 수 있다는 자체가 좋았고, 그러다 보면 숫자만 나오는 회계/재무와 관련된 전공과목에서는 그저 답이 정해진 따분한 숙제와도 같은 느낌을 받곤 했다. 하지만 그 전공으로 지금 직장을 다니며 밥을 벌어먹고 있으니, 역시 좋아하는 일과 해야만 하는 일은 별개라는 말이 새삼 무겁게 다가오는 지금이다. 하지만 현실에 치이며 책을 읽는 횟수가 줄어들고, 글을 쓰는 일도 거의 없어졌더라도, 돌고 돌아 다시 여기서 글을 쓰고 있는 것도 바로 지금이다. 내 글쓰기 여정은 끝난 것이 아닌, 잠시 중단되었었던 것 뿐이다.
글쓰기와 관련된 지금까지의 경험과 생각들이, 내가 살아가는 데 있어 단지 취미나 지적유희에 그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오히려 글쓰기와 전혀 관련 없어 보이는 회사 업무를 하며, 글쓰기의 의미를 역설적으로 깨닫게 된 측면이 크다. 모든 업무에 있어 중심이 되는 '내용'이 가장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내용을 전달하는 것은 결국 수 없이 오고가는 메일, 공문, 보고서와 같은 글쓰기를 통해 구현되는 '형식'이다. 글쓰기와 관련된 지금까지의 경험과 생각들이, 중요한 알맹이를 담아내는, 글을 통한 형식을 좀 더 신중하게 만들어 내는 데 기여한다 생각한다. 글을 쓸 때 단어 하나 하나의 의미, 상대방이 내용을 받아들일 때 문장과 문맥에서 느낄 바를 한번 더 점검하고 생각하게 만들기에, 글쓰기가 어쩌면 업무에서 더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음을 일을 하며 체감하고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글을 쓰는 것이란 '나를 드러내는 동시에, 타인을 배려하는 행위'의 다른 말이 아닐까. 글의 목적에 따라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많겠지만, 적어도 지금의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한 친구에 대한 동경으로부터 우연히 시작된 나의 글쓰기 여정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중단되었던 여정을 이제 다시 시작하는만큼, 현재 글쓰기에 대한 의미를 온전히 찾았다고는 말하지 못하겠지만, 아직도 잘 모르겠으면 계속 찾아나가면 되는 것이 아닐까. 예전과 같이 많은 책을 읽고, 많은 글을 쓸 일이다. 여러가지 현실적인 핑계들로 중단되었던 글쓰기에 대한 여정을 다시 시작하며, 그 의미를 다시금 탐색해 봐야겠다. 내가 궁극적으로 글쓰기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바는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다시 한 번 던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