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글의 기준에 대해 고민하다, 뜬금없이 대학 회계원리 과목 첫 시간에 배웠던 내용이 떠올랐다. 당시 '회계의 목적'에 대해 배우며, 그 목적에 달려 있던 단서 하나가 유달리 기억에 남은 까닭일 것이다. 교재는 "회계는 현재 및 잠재적 투자자, 그리고 채권자와 같은 '회계정보 이용자'들의 의사결정에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회계의 목적을 정의하고 있었다. 하지만 여기서 정의하는 회계정보 이용자들이란 기본적으로 회계에 대한 지식과 관심을 갖고 있는 이들을 의미하는 것이기에, 모든 사람들을 유용한 회계정보를 제공해야 할 대상으로 보진 않는다. 이는 곧 회계 담당자가, 회계에 대해 무지한 사람들까지 굳이 이해시키려 애쓸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어쩌면 '좋은 글의 기준이란 없다'는 쉬운 말을 하기 위해 회계원리 첫 수업을 떠올리며, 답하기 어려운 문제로부터 스스로 도망친 것인지도 모른다. 아무리 잘 쓴 글이라 하여도, 그 글이 모두에게 좋은 글일 수는 없지 않은가. 회사의 전망과 재무상태를 아무리 정확히 담고 있는 공시용 재무제표라 한들, 회계에 대해 무지한 이들에게 이 재무제표는 좋은 글이 아닌, 그저 의미 없는 글자 낭비에 불과한 것일 뿐처럼.
그럼 달리 생각해서, 사람들은 왜 글을 읽는 것일까? 흥미로운 영상이나 즐거운 음악과 같이 우리의 오감을 자극하는 매체들이 많음에도 사람들이 굳이 다소 딱딱한 '글'을 읽는 이유는, 분명 글을 통해 얻고자 하는 저마다의 '목적'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가령 어떠한 지식이나 정보 등을 얻기 위해 전공 서적과 같이 어려운 글을 읽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사회적 평가가 갈리는 사안에 대해 사람들의 의견을 알고자 신문 사설을 읽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또한 힘든 현실 속에서 '너만 힘든 것이 아니야'라는 위로와 공감을 얻고자 에세이를 읽거나, 풀기 힘든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문학 책을 통해 간접적으로 삶의 지혜를 구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이처럼 사람들이 글을 읽는 이유가 제각각의 목적을 이루기 위함이라면, 여기에서 좋은 글에 대한 최소한의 원칙은 도출된다. 그는 바로 '잘 읽히는 글'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잘 읽히는 글이어야, 글을 통해 얻고자 하는 독자들의 목적을, 보다 효율적으로 달성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까닭이다.
좋은 글은 '잘 읽히는 글'이라는 최소한의 원칙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문제는 남아있다. 바로 글이 잘 읽힌다는 기준이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 글을 읽는 사람들이 모두 다른데, '누구에게나 잘 읽히는 좋은 글'이라는 것이 과연 존재할 수 있을까? 태생이 평범한 문돌이인 나는, 많은 사람들이 훌륭하다 평가하는 과학 서적 등을 가벼운 에세이 읽듯 쉽게 읽어내지 못한다. ('이기적유전자', '코스모스' 등의 책도 읽겠다 마음먹고 책장에 보이게 꽂아 놓은 뒤, 얼마나 방치해 둔 것인지 기억이 나지도 않는다.) 쉬이 읽지 못할 뿐이랴, 당연히 잘 이해하지도 못할 것이다. 회계가 경영상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는 대상인 '회계정보 이용자'들을 회계에 대한 지식과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 한정하는 것처럼, 내가 과학에 대한 지식과 관심이 적기에, 해당 과학 서적이 상정하는 독자층에 나는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다.
어디 과학 서적 뿐일까. 유시민 작가처럼 어려운 내용을 쉽게 풀어내는 데 탁월한 재능이 있는 작가의 글이 아닌 이상에야, 교양서를 표방한 많은 책들도 그것이 철학이나 금융, IT등의 어려운 지식들을 담아내고 있다면 읽기 힘든 것은 매한가지다. 글을 읽는 사람마다 해당 분야에 대한 소양 차이가 있을 것이니, 이는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모든 글이 잘 읽힐 수는 없는 일이기에, 모두가 인정하는 '좋은 글'은 쉽게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좋은 글의 기준으로 고전과 같은 문학작품이나 유명 작가들의 에세이처럼, '지식'에 기반하지 않고서도 잘 읽을 수 있는, '사람 내음' 물씬 나는 글들이 회자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사실 어떠한 글이 내게 어렵건 쉽건, 그 글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잘 읽힌다면 그 사람에게는 좋은 글일 터이다. 그러니 글이 '잘 읽히는 정도의 차이'는 차치하고 생각하련다.
다시 정리하자면 잘 읽히고, 독자가 목적한 바를 제공해 주는 글이라면 당연히 좋은 글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정도면 누가 봐도 좋은 글의 기준이 아닐까? 문득 궁금해진다. 그렇다면 잘 읽히지 않는 글은 과연 좋은 글이 아닌 것일까. 가끔 잘 이해되지도 않는 글을 의지 하나로 끝까지 미련하게 읽고 있는 경우가 있다. 예전 한병철 작가의 '피로사회'가 그러했다. 당시 '지성인이라면 이 책을 읽어야 한다'는, 친구 녀석의 이상한 꼬임에 빠져 120페이지 남짓의 얇은 책을 읽으면서 '이게 대체 뭔 소리야...?'를 속으로 몇 번이나 되뇌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말미로 갈수록 대략적인 의미를 알게 되었고, 끝에 이르러 '음... 그런 것이었군!' 하며 책을 덮었다.알지도 못하면서 무작정 읽은 것이지만, 결국에는 나에게 의미를 주는 글들도 분명 존재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글도 결국 좋은 글이 아닐까.
이와 같은 스스로의 장고 끝에, 좋은 글에 대한 정말 최소한의 기준은 찾게 된 것 같다. 그는 바로 글을 읽고,나에게 어떠한 방식으로건 '의미'있게 다가온 글들이다. 잘 읽히는 글이라면 더 좋겠지만, 비록 잘 읽히지는 않더라도, 독자들의 지적 소양 차이를 넘어 그 글을 찾아온 독자들에게 어떠한 '울림'을 줄 수 있다면 그 글의 의미는 그것으로 족한 것이 아닐까. 잘 읽히기까지 하는 글이라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의미만 담겨 있는 글이라면 가독성은 나중에 글을 다듬으며 높여나가도 될 일이니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글을 쓰면서도 나는 과연 '좋은 글'을 쓰고 있는 것인지,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된다.
좋은 글의 기준에 대한 고민은 길었지만, 어째 당연한 소리를 정말이지 길게도 늘어놓아 민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