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스웰몰츠식 성공체험; 자아를 깨워라
열심히만 했다고 결과가 항상 좋친 않다
나는 이런 프로젝트를 그전에 필리핀에서도 했다. 이렇게 켄터키 땅을 모두 파헤쳐 놓은 혼돈 그 자체인 이런 프로젝트에 들어서기만 하면 매일 죽으라고 일해도 뭐가 달라지는 게 보이질 않는 게 정말 문제였다. 말 못 할 힘든 시기를 겪게 된다. 한마디로 닥치는 대로 일을 해야 했다. 물론 안전사고도 많이 발생하기 때문에 앰뷸런스가 아주 주차장에 대기하고 있었다. 나는 아침 일찍 출근해서 밤늦게까지 일을 했다. 그것도 오버타임도 없이 일했다. 미친 짓을 하고 있었지만 그 미국 노동법이 그렇게 관리자를 위해 주지 못했다. 나만 그런 게 아니고 같이 일했던 미국인도 그랬다. 미국엔 이런 말이 있다. 미국에서 공짜 점심이 없다고( There's no free lunch)....... 미국은 공짜 없이 일만 정말 엄청 시키는 나라였다. 한국 사람은 다른 그 누구보다 더 열심히 일했다. 우리 회사에서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나중에 협업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지켜본 다른 회사에 소속된 한국 사람도 나처럼 소같이 일했다. 같은 일 하던 미국인들보다 더 일했다. 뭔가 한국 사람은 DNA가 특출났다. 그들도 어찌 그리도 똑같이 말할 시간조차 아껴가면서 일만 해대는 걸 보곤 참 괴상한 인종이라고 생각될 정도였고 한국인인 내가 봐도 그들은 유별나게 튀었다. 이게 나중에 알았다. 이게 국제 감각이 없어서 그런 줄……
이렇게 일하면 잘 못되고 있는 것인 줄 몰랐다. 이렇게 일만 죽어라 하면 결실은 말만 하던 미국인들이 채갔다. 나도 영어가 짧았던 시절이어서 보여주는 결과로 승부하자는 주의였는데 결국 일만 죽어라 하고 열매는 다른 사람이 따먹게 하는 결과를 치르는 경험을 켄터키에서 톡톡히 했다. 국제무대에서 뛸 젊은이들은 미국의 직장은 일만 열심히 하면 절대 안 된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그 당시엔 난 일에 미친 미치광이였다. 그땐 성과가 긴급했기에 그 성과란 골에 올인하고 있을 때에 갑자기 집에서 긴급전화가 왔다. 기저귀 찬 우리 애의 탈옥 사건이었다. 그 당시 나는 애가 죽게 될 뻔했다는 전화가 걸려 올 때도 일에 미쳐있어서 전화길 집어 패대기 칠 정도였다.
그 당시엔 당장 일을 나 두고 나오는 그 시간조차도 아까워해야 할 정도로 집도 가족도 없이 일만 했다. 완전히 미쳐 있었고 아내나 애들은 둘째였다. 가슴을 쓸어내려야 하는 일이었는데도 그땐 일에 미쳐 있어서 전혀 감지를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큰일이 발생한 후에 이 큰 사건이 내가 뭔가 잘 못하고 있다는 걸 서서히 깨닫게 해주는 계기가 되었다. 내가 왜 이러고 있는지?를 들이마신 숨을 길게 뱉으며 고민해 봤다. 이곳에 온 것이 이렇게 미치광이가 되려는 것이 아니고 가족을 위해서 이 불모지, 켄터키를 오는 걸마다 하지 않았데, 애 사건으로 제 모습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다. 제 호흡을 찾게 된 나는 사실 그때 비친 내 꼴을 볼 수 없을 정도였다. 생존만을 위해서 설쳐대는 야생동물 같았다. 너무 창피했다. 내가 사는 본질을 잃고 있었다.
정신을 다시 차린 후엔 애가 학교 버스를 세웠다는 그곳을 다시 나가 보았다. 그곳은 커브길에 우리 집에서 앞뜰에서 키 큰 버드나무 때문에 그 가난 아이가 길거리 한복판에 있더라도 눈에 띄기가 쉽지도 않고, 또 버스가 내는 속도와 하굣길에 학생을 가득 태운 버스 중량이 갑자기 선다는 그곳이 계산상으로 나오지 않는 답이었다. 이건 아이가 세상에 할 일이 있어 하늘이 살려 둔 것 아니면 답이 없었다. 그날 이후로 아들 녀석을 잘 키워야 했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 혼자 애한테 미안하기 하고, 스스로 놀라기도 해서, 회사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휴가부터 냈다. 그리고 며칠 동안 튼튼하고 견고한 목재를 고르고 골라서 울타리를 직접 세웠다. 울타리가 설치된 날 이후부턴 집안 밖으로 아무도 나오지도, 들어오지도 못하게 만들었다. 진작 이걸 만들어야 했었지만 늦은 감은 있었으나 이제야 드디어 아무도 침범할 없는 튼튼한 성곽을 완성했다. 열쇤 내가 항상 가지고 다녔다. 그저 나는 큰소리만 치는 실패자였다. 그다음부터 열심히가 아니고 버티기를 해야 했다. 시간을 유지하는 것이 나에겐 중요했다.
나는 이렇게 저렇게 그저 버티기 만 했는데 시간이 지나니 공장장이 된 셈이었다. 그라운드 브레이킹(Groundbreaking)부터 시작하던 화학공장에 있으면서 회사에 나가면 책상 위 항상 있던 책이 짐 콜니스의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 Good to Great)”이었다. 그 책이 300여 쪽이 되는데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그렇게 어려운 프로젝트를 작은 성공에 초점을 맞추라는 내용이었고, 몰츠 박사의 사이보그넥틱스 책도 “작은 성공은 다음의 성공을 약속한다”라고 서술되어 있다. 이제야 그라운드 브레이킹 (Groundbreaking)부터 시작하던 미치광이 일을 종료하게 되었다. 콜리스나 몰츠 박사 이렇게 말하고 있으니, 그럼 하여야 할 것이 있었다. 그것이 바로 “몰츠식 버티기”였다.
버티고 있어야 마지막 축배의 컵을 드는 그 자리에 있을 것 같았다. 해서 이런 진부한 싸움을 하기 위해서 작은 성공이라도 성취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실망되었던 나를 용서하고 다음 일을 할 의욕이 조금씩 생겼다. 그런 식으로 순간순간 버티 겨야 마지막 주자가 되는 작전으로 바꿨다. 그래서 못 감당할 것 같은 일 잘게 잘랐고. 그리고 섹션을 나누어 분리한 후에 한 개씩 빈칸에 해답 채워가듯이 채워가면 일을 진행했다. 어느 날 나도 몰랐던 답을 채우는 날이 오곤 했다. 그날은 모든 결과치가 서로 협업하기에 예상했던 목표치를 도달하고 그러면 작은 섹션의 프로젝트가 하나씩 성취되어 가곤 했다. 그러니 그렇게 닥치는 대로 시간이 없이 일했을 내가 이젠 잘게 프로젝트를 나누고 또 나누는 일을 했다. 그리고 하루하루를 작은 일을 성공하고 또 성공하고 내일도 그렇게 성공하면서 계속 보냈다. 그렇게 하니까 일단 보이는 것 같고 만져지는 것도 같았으며 일을 진행하고 있는 동안 결과가 있어 만족스러웠는데 우선 상부에 보고하기가 아주 쉬웠다. 왜냐하면 일 진행을 볼 수 있었으니까. 차트로 그려지고 데이터로 환산에서 나오니까 사람들이 좋아하게 되었고 정신이 해이하던 친구들이 하나둘씩 나의 편에 서서 돕기 시작했다. 이때 배운 작은 성공 법칙을 몸으로 체험케 되었다. 이렇게 피상적으로 해결이 되고 있었지만 그래도 본질적인 문제는 아직 해결되지 않고 있었다. 그 본질이면서 고질적인 문제가 "나는 아니 나만 늘 바빴다"라는 것이었다. 보고는 쉬어졌고 나의 원 밖으로 나갔던 몇몇을 다시 내 영향권 안으로 추가시킬 수는 있어지만 이렇게 몇 달을 하고 있었던 이 작은 성공들이 옛날보단 나아졌다 하여 문제 해결의 완결판이라고 하기엔 아직 뭔가? 남이 있었다. 나는 스스로 이 방법은 완결판이 아닌 것을 알고 있었다. 여전히 가족한테 소올 한, 그러면서도 그저 일밖에 모르는 그런 사람, 나가서만 잘난, 그러나 집에선 못난 아빠였고 여유 자체가 없었다. 나는 이걸 인생을 걸고 완벽하게 개선해야 했다.
맥스웰 몰츠의 상상팁 2; 몰츠의 버티기
뇌의 시냅스(synaps)는 느낌의 핵심 저장소 역할을 담당하는 곳이다. 현재 좋지 않은 감정은 다른 시간 때 저장된 스냅스로 대체될 수 있다. 즉 뇌의 시냅스는 다른 뇌의 시냅스에 의해서 교체가 가능하므로 괴로운 감정은 과거의 행복했던 감정으로 대치한다. 예로 결혼 후 아내의 잔소리는 연인 시절 첫 키스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상상만으로 발생한 정신적 고난을 대치시킴으로써 이겨내는 몰츠의 버티기이다. "이 아이디어는 [Maxwell Maltz]의 [Psycho Cybernetics]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