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깝고도 먼 사이를 추구하기
"연말에 어디 좀 다녀오셨어요?"
신년회 모임에 나가서 가장 많이 듣는 안부 인사 중 하나다. 보통 연말에 휴가 겸 한 해를 정리하는 여행을 많이 가다 보니 당연히 다녀왔을 걸로 생각하고 묻는다. 그런데 대답을 하는 중에 '회사일 때문에 바빠서 아무것도 못했다.'는 사람이 한 둘은 꼭 있다.
그 말을 들을 때 전해지는 뉘앙스는 두 가지다. '나는 회사에서 자리를 비울 수 없을 만큼 중요한 존재야.'라고 강조하는 느낌이 드는 경우와 연말 휴가도 갈 수 없는 처지가 불만스럽다는 경우로 나눠진다. 이때 드는 생각이 있다. 과연 회사 일과 개인 생활은 어느 정도의 거리가 적당할까? 이 질문은 시대를 거치며 달라지기도 했으나 또 시대와 상관없이 계속되고 있기도 하다.
과거 노동시간이 엄격하지 않던 시절이 있었다. 무조건 많이 일하는 게 선이었고 성공과 성취가 보상으로 따라붙곤 했다. 요즘 세대들에게 일을 죽도록 하고 돈과 성공을 받을래? 아니면 적당히 일하고 적정한 급여를 받을래? 하고 물어보면 후자를 택할 가능성이 높다. 실제 일과 삶의 균형을 중요시하는 세대들의 흐름은 여러 곳에서 포착된다.
글로벌 인력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일과 삶의 균형’은 급여를 제치고 직장 선택의 1순위 요인으로 나타났다. 2024~2025년 Deloitte의 글로벌 밀레니얼·Z세대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0% 이상이 '워라밸이 보장되지 않는 조직이라면 고연봉도 선택하지 않겠다.'라고 응답했다. 국내 조사 역시 유사한데, 청년층 대상 설문에서 60% 이상이 ‘임금보다 워라밸이 더 중요하다’라고 응답했다. 이중 절반 이상은 '승진이 늦어지더라도 개인 시간이 보장되는 직장을 선호한다.'라고 답했다. 이 수치가 말하는 것은 단순한 세대 취향이 아니다. 성과를 대하는 인식 구조 자체가 변하고 있다는 신호다.
A는 회사에서 넘버 3 정도의 고위직 임원이다. 위치가 그래서인지 그는 약속을 잡았다가도 급한 일이 생겼다고 약속을 변경하거나 약속장소에 늦게 나타나는 것이 공식이 되었다. 사람들은 그에게 나와 준 것만도 대단하다고 한다. 위로 올라갈수록 시간 여유가 많은 것이 내 경험인데, 그는 다른 것 같아서 가끔 의아할 때가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최고의 자리를 원하는 사람이니 그럴 수도 있겠다고 마음을 먹는다. 그런데 그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은 어떨까? 하는 궁금증이 드는 순간, 뭐가 옳은 건지 복잡해지기 시작한다. 그 조직의 젊은 세대들도 과연 A처럼 일하며 보람을 느낄지 모르겠다.
요즘 세대들은 개인의 시간과 조직의 시간을 분리하기를 원한다. 회사에서는 주어지는 월급에 상응하는 일을 주어진 시간 안에 해결하기를 원한다. 대신 퇴근 이후의 삶은 회사나 상사의 터치가 이루어지는 것을 되도록 피하고 싶어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다수의 젊은이들이 일과 후에는 자기만의 자아 찾기에 돌입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독서모임에 참가하거나 자기 계발을 위한 공부를 하거나 회사 밖 사람들을 만나는 소셜라이징을 즐긴다. 이 정도를 넘어 유투버나 작가로 활동하거나 아르바이트, 배달을 하는 사람에 이르면 부업이 침해를 받게 되는 꼴이다. 예전처럼 평생직장이라는 충성심으로 올인하던 시대는 서서히 저물고 있다고 봐야 한다. 물론 회사를 내 몸처럼 여기며 성공의 사다리를 오르기 위해 개인희생을 마다하지 않는 직장인이 많다는 것도 부인하지는 않겠다. 다만 그 흐름이 예전 같지 않음을 말할 뿐이다.
B는 직장생활을 열심히 했다. 나름 인정도 받았고 직장 내에서 포부도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회사에서 하는 일은 반복적이고 성장의 한계가 눈에 들어왔다. 시간여유가 생길 때마다 자기가 몰입하던 취미 모임을 만들더니 급기야 그 취미를 살려 사업의 길에 들어선다. 회사 떠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지금 도전하지 않으면 기회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C는 아직 직장생활을 하고 있지만 근무시간 이후에는 시간을 가만히 놔두지 않는다. 몇 개의 모임에 나가 관심분야를 심화시키는 것은 물론, 프랑스 대학의 ㅇㅇㅇ코스에 등록하기 위해 두 번째 시도를 하고 있는 중이다. 안되면 세 번도 도전할 생각이라며 웃는다. 나름의 계획이 있는 거다.
만일 이런 사람들에게 업무시간을 넘어서까지 대기시키고 주어지는 일이, 윗사람의 회의 자료를 고치는 일이라면 어떻게 될까? 아마도 유능한 인재들을 밖으로 내모는 결과가 되지 않을까 싶다. 회의자료도 중요한 일의 일부임에 틀림없고, 그것으로 밤을 새울 가치가 있는 경우도 물론 있다. 그러나 변화의 흐름을 읽지 못하고 과거의 습관을 답습하고 있다면, 정말 곤란한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반대 논리를 전개하는 측도 분명히 있다. 불필요한 일을 없애기로 유명한 일론 머스크는 자기 자신이 일에 빠지면 쉬지 않고 일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테슬라가 위기에 빠졌을 때는 공장에서 숙식을 하며 주 80~100시간을 일하기도 했다. 스티브 잡스 또한 제품 개발 막바지에는 극단적인 몰입과 완벽주의를 팀에 요구했다. 이들은 천재였음에도 자기가 이루고자 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 일하는 시간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
하지만 이들과 직장인 사이에는 주인(principal)과 대리인(agent)이라는 차이가 있다. 경제학의 대리인 이론에 따르면 주인은 대리인을 믿지 못하고, 대리인 또한 언제 주인이 변심할지 모르니 자기 살길을 도모하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가장 바람직한 것은 서로가 믿고 윈-윈의 관계로 나아가는 것인데 이게 만만치가 않다. 그래서 노동의 역사는 자본가가 노동자를 더 많이 일하게 하기 위한 궁리를 해 온 발전사이고, 노동자의 입장에선 이것에 저항하기 위한 역사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역사 속으로 들어가 보면 일을 많이 한 것으로 손에 꼽히는 사람이 세종대왕이다. 세종실록에 따르면 왕은 새벽부터 경연을 열고 국정을 논했으며, 늦은 밤까지 학문과 독서를 멈추지 않았다. 그 결과 그의 대에 조선은 문화·과학·제도 전반에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룬다. 하지만 세종은 재위 중반 이후 심각한 안질과 만성 질환에 시달린다. 신하들이 건강을 생각하여 휴식을 취하기를 권고하지만 그의 생각은 요지부동이었다. 결국 그는 54세라는 이른 나이에 생을 마감한다. What if 세종이 적절히 휴식을 취하며 일했다면 그가 이룬 성과가 적었을까? 오히려 오랜 기간 더 큰 업적을 남길 수도 있지 않았을까? 궁금할 따름이다.
국립중앙박물관장으로 있는 유홍준 선생은 오전에만 글을 쓰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무슨 일이 있어도 아침 6시에 일어나 자기 사무실로 향해 글을 쓰고 점심을 먹으러 집으로 올 때까지가 생산을 하는 시간이라고 한다. 이 시간을 지키기 위해 그는 오전에는 어떤 일정도 잡지 않는다. 대신 오후에는 온전히 자기만의 시간을 가진다. 이 리듬이 그가 오래도록 글을 쓰고 지식을 전하며 살 수 있는 비결이라고 털어놓는다.
조직이 성장하고 발전하려면 그 안에 유능한 인재를 담는 것이 최우선이다. 그 인재들이 가장 중요시하는 가치가 어디로 옮겨가고 있는 지를 간과하는 순간 공동화 현상을 경험하게 될 것이 자명하다. 내 생각이 주인(principal)과 가깝다고 나와 일하는 구성원들도 그럴 것이라고 상상하는 순간 환상이 깨지는 걸 조만간 보게 될 수도 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다.
누가 묻거든.
"올여름에는 반드시 좀 쉴 시간을 가져보려 합니다."라고 답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