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를 시작하려면 기존의 것을 그쳐야 한다
연초에 후배들을 만나면 가장 먼저 듣는 게 보직 이동 소식이다. 연말 인사로 새로운 임원이 생기면, 그 영향을 받은 인사이동이 연쇄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이다. 예컨대 동기가 승진을 하면 같은 부서에서 일하기가 서로 껄끄러우니, 승진하지 못한 사람을 다른 부서로 옮겨 주는 식이다. 일종의 배려이지만 보기에 따라서는 자리에서 밀려나는 약육강식의 동물 세계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짐을 싸는 사람 입장에선 겉으로야 웃지만 속까지 웃을 수는 없는 씁쓸한 장면이다.
아끼는 후배 몇이 자리를 옮겼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아예 임원 승진의 가능성이 없는 사람들이라면 포기해도 될 터이다. 하지만 항상 가능성이 열려 있는 사람들이라서 그 마음이 어땠을까 하는 짠한 감정이 밀려왔다. 그렇게 한 두 달 지나다 보면 다시 희망을 품고 일하게 되겠지만, 가끔씩 밀려오는 불안감과 자존감 저하는 피하려야 피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대기업에서 임원이 될 확률은 점점 더 낮아지고 있다. 최근 분석에 따르면 상장사 매출 상위 100대 기업에서 임원 승진 확률이 0.82%라고 한다. 운도 실력도 모두 따라줘야 가능한 수치다. 연차가 높아질수록 도달할 확률이 높아지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해가 지날수록 가능성은 현저히 줄어든다.
얼마 전 종영된 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을 떠올리게 된다. 임원이 되지 못하면 어느 순간부터 자리를 비켜줘야 한다는 모종의 압박을 느낄 수밖에 없다. 강제로 퇴직을 시킬 수는 없다 해도, 무언의 압력은 회사가 주든 스스로 느끼든 주변을 맴돈다. 이런 압박에서 벗어나기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은 임원이 되는 것이지만 앞서 언급한 것처럼 모두가 그 goal을 달성하기가 어려운 게 현실이다.
최근 만난 한 후배는 이미 임원이 되는 길을 포기하고 지내는 듯한 말을 했다. "그냥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서 지내려고요." 한다. 성실하게 맡은 바 역할을 다하겠다는 뜻이겠지만, 왠지 그 말에 일과 직장에 대한 열정이 차오르는 느낌이 들지는 않았다. 대기업의 경우 적지 않은 월급이 꼬박꼬박 통장에 꽂히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버텨볼 만하다고 여길 수 있다. 그러나 연차가 높아질수록 임원에게, 후배에게 자리를 넘겨주고 이리저리 옮겨 다니다 보면 그저 월급만 받으러 다니는 사람으로 스스로를 규정하게 된다. 이때 자아와 자존감은 심각한 손상을 입을 가능성이 높다. 결국 많은 사람들이 그만두어야 하나, 더 기다려야 하나를 심각하게 고민하게 되는 순간을 맞이한다.
지금까지 내가 본 많은 이들은 현재에 머물기를 택했다. '대기업의 그늘을 벗어나는 순간 그 그늘이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를 느끼게 된다.'는 선배들의 조언을 떠올리며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는다. 과거 55세~60세가 되면 회사를 나와 더 이상 일할 생각을 안 하던 시절에는 분명 맞는 말이었을 수 있다. 하지만 최근에 회사를 나온 사람들을 보면, 60세에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이 오히려 드문 시대가 되어 가는 추세다. 기록을 봐도 한국에서 60세 이상 고용률은 2010년 36.2%에서 2024년 45.9%로 높아졌다. OECD 자료에서도 한국은 65~69세 고용률이 57%로 매우 높고, 실제 노동시장 이탈 연령도 높은 편으로 나타난다. 경제적인 목적 여하와 상관없이 정신과 신체 나이가 젊다 보니 무위도식한다는 것 자체를 스스로가 견딜 수 없게 만들기 때문이다. 게다가 과거처럼 일의 귀천을 따지는 시대가 저물고, 마음만 먹으면 다양한 일거리를 찾을 수 있다는 환경도 한몫을 한다.
A는 연차가 높아질수록 후배들도 성장하는 것을 보면서 퇴사 결단을 내린다. '조금 더 기회를 보면 어떻겠냐.'는 주변의 만류도 있었지만, 더 늦기 전에 새로운 길로 들어서 보겠다는 마음을 굳히고 회사 문을 나선다. 그 길로 앞을 알 수 없는 중소기업으로 자리를 옮겼다. 가족들의 반대가 적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만날 때마다 회사도 성장하고 A도 성장하는 게 눈에 띄게 다르다. 최근에는 회사에서 중요한 자리까지 올라서 한동안 안정적인 생활을 할 것으로 보인다.
반면 B는 같은 시기 회사에 남기로 하고 한 두 해를 더 다녔다. 하지만 그 몇 년 사이에 기회가 현저히 줄어들어 아직 마땅한 자리를 잡지 못한 채 서성이고 있다. 더 머무는 한 두해 동안 다음 커리어를 명확히 설정하고 준비하지 못한 탓도 컸다. 어쩌면 안주하고 있었던 것이다. 시간의 도래를 간과한 셈이다.
요즘 무섭게 체감하는 것이 있다. 과거의 삶의 방식이 급속히 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예전에는 한 직장에서 끝까지 마무리를 하면 더 이상 회사생활은 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수명이 길어지고 건강상태도 좋아지며, 제2의 인생을 다시 시작하는 것이 상식이 되어 가는 시대에 들어섰다. 따라서 스스로에게 하는 질문도 '남을 것인가 떠날 것인가'가 아니라, '언제, 어떤 준비를 하고 이동할 것인가'로 바뀌어야 한다.
보통 그만둔다고 하면 중도에 포기하는 것으로 인식되어 부정적인 의미로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많다. 중요한 것은 그 시간에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는가가 아닐까. 만약 내가 하는 일이 그다지 가치를 창출하는 일이 아니라면 계속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생각이다. 이미 투입한 시간이 아까워 버티는 것도 한 방법이지만, 때로는 과감히 그만두고 새길을 모색하는 선택도 고려해 봄이 어떨까 싶기도 하다. 버티다 시간을 놓쳐 다시 시작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상황으로 내몰리는 경우도 있다. 사면초가에 처하기 전에 '언제 그만둘지'를 계획하는 것도 새로운 시대를 대비하는 자세이다.
많은 사람이 착각하는 것이 있다. 여기서 시간을 최대한 보내고 나가도 늦지 않다는 기대다. 하지만 현실은 조금 다르다. 퇴직 후 재취업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한국노동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퇴직자 중 61.5%가 퇴직 후 구직활동을 경험했고, 재취업까지 평균 15.6개월이 걸렸다고 한다. 나가서 1년 넘게 ‘탐색의 시간’을 버텨야 할 수도 있다. 그 시점이 한 두해 늦어지는 것이 대수가 아닐 수도 있지만 때론 결정적인 차이가 된다. 연령이 높아질수록 체력도, 네트워크도, 선택지의 폭도 달라진다. 늦을수록 새로운 시작에는 불리하다.
그래서 나는 좀 더 빠른 시기에 자신의 미래를 판단하고,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쪽에 마음이 기운다. 여기서 ‘그만둔다’는 말이 곧 ‘포기’는 아니다. 오히려 매몰비용에 붙잡히지 않고, 남은 시간을 더 가치 있게 쓰기 위한 의사결정이 될 수 있다. 중요한 건 ‘버티느냐’가 아니라 ‘버티는 시간이 나를 더 가치 있게 만드는가'이다. 물론 이 말이 무조건 '나가면 다 잘 된다'는 뜻은 아니다. 준비 없이 나가면 더 어려워질 수도 있다. 그러니 다가 올 시간을 무시하지 말고 계획된 이동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은 것이다.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것을 그만두어야 한다. 만약 그만두지 못하면 새로운 것을 시작할 도리가 없다. 너무 이른 것인지 늦은 것인지는 본인이 판단해야 하지만 과거의 잣대로만 현재를 재단하다가는 낭패를 볼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설 연휴가 지나면 새로운 자리로 옮긴 후배들을 만날 예정이다.
과연 그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궁금해진다.
(나는 그들에게 과감한 결정을 하라고 말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