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심 일만 시간
연초에 새로 산 노트 첫 페이지를 이런저런 계획들로 빼곡히 채웠다. 그런데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 그중 절반 이상이 작심삼일로 끝난 걸 보고 있으니 허탈한 웃음만 나온다.
3년 전부터 글을 조금씩 쓰기 시작했다. 우리 역사 속 한 인물에 꽂혀 그와 관련된 기록과 책을 찾아 읽고 에세이에 자주 인용을 했었다. 한동안은 그 인물을 중심으로 생각이 확장되는 느낌이 좋았다. 그런데 누군가로부터 "좀 식상하다"는 이야기를 들은 뒤로, 관심이 서서히 식어갔다. 시간이 갈수록 기록을 띄엄띄엄 접하다 보니 지금은 남들이 아는 지식과 별 차이가 없다. 그때 시작한 탐구를 지금까지 계속 이어왔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축적의 시간이라는 말이 있다. 어떤 것이 결과로 모습을 드러내려면 결국 임계점을 넘어야 한다. 물이 100도를 넘어야 끓듯, 그 지점에 이르기 전까지는 아무 변화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는 아무 일도 없는 게 아니다. 온도는 계속 올라가고 눈에 보이지 않는 변화가 안쪽에서 차곡차곡 쌓이고 있는 것이다. 다만 우리가 임계점까지 인내하지 못하고 끓기 직전까지를 차갑다고 착각하는데서 포기가 발생한다.
오래전 미국에서 근무하던 시절, 한 친구가 자기 집 차고에서 목공을 시작한다고 했다. 나는 그저 취미로 하는가 보다 했다. 그는 누군가에게 선물을 하기 위해, 때로는 기술을 연마하기 위해 작품을 만들고, 그 과정과 결과물을 페이스북에 올리며 즐거워했다. 재미는 있겠지만 직장생활을 병행하며 얼마나 오래 지속하겠나 싶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목공 도구와 작품이 늘어나는 것을 보면서 이제 진심으로 임하는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한동안 소식을 모르다가 문득 궁금해서 최근 그의 페이스북을 찾아보았다. 취미로만 보였던 목공 작업들은 어느새 뉴저지의 어엿한 작업실로 옮겨가 있었고, 그는 앞치마를 두른 채 수강생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그에게도 분명 지겹고 지루한 순간들이 있었을 것이다. 잘 늘지 않고, 의미 없어 보이는 시간도 있었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그 시간을 견디고 넘어섰기에 축적의 시간이 쌓였고, 마침내 임계점을 넘은 것이다. 이제 자신과 비슷한 시간을 겪을 사람들에게 경험을 알려주고 있으니 그 보람과 뿌듯함이 얼마나 크겠는가
무엇이든 한번 시작하면 끝을 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매번 다양한 시도들을 하는데 끝까지 가지 못하고 중간에서 멈추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이런 사람들을 무작정 탓하기도 어렵다. 의지가 약해서 그만두는 경우도 있지만, 실제로는 가다 보니 처음 생각했던 것과 전혀 다른 모습을 발견하고 생각을 바꾸는 일이 더 흔하기 때문이다. 나름 시작은 했지만 계속 가는 것보다 다른 길을 찾는 것이 낫다고 판단되면, 그때 멈추고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서는 것도 한 방법이긴 하다. 그것이 기준이 있는 결정일 때는, 그동안 소모한 시간이 배움의 시간이 될 수도 있다. 중단하는 것이 모두 잘못된 것이라 할 수 없다. 하지만 인내하지 못해서 기준 없이 멈추는 것은 후회의 씨앗이 되고 만다.
시행착오를 줄이고, 오래 시간 동안 몰두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는 자신이 진정으로 좋아하고 열정이 있는 분야를 선택해야 한다. 그런 일은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여기에 어느 정도의 재능이나 잠재력까지 있다면 지속성을 가져가는 데 큰 힘이 된다. 그런 다음 끊임없는 노력으로 전문성을 갈고닦다 보면 조금씩 빠져드는 순간이 온다.
열정은 정신의 영역이다. 정신은 언제든 약해질 수 있다. 이럴 때는 의지가 아니라 시스템의 힘을 빌리는 것도 괜찮다. 예컨대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20분만 쓰는 글쓰기 루틴. 주 3회 같은 요일에 운동을 하러 가는 습관처럼, 작은 규칙이 큰 누적을 만든다.
지속을 가로막는 진짜 적은 의지가 아니라, 시작할 때마다 생기는 갈등이다. 매번 준비하고, 장소를 찾고, 마음을 끌어올리는 과정이 사람을 지치게 한다. 그러니 지속하려면 갈등을 줄이는 설계가 필요하다. 할까 말까를 고민하기 전에, 무조건 하게 되는 구조를 먼저 만들어야 한다.
거칠은 벌판으로 달~려가자. 젊음의 태양을 마~시자...
대중음악사에 굵은 자취를 남긴 음악인 김수철이 작곡한 노래 '젊은 그대'의 가사 첫 소절이다. 얼마 전 아침 신문에 김수철이 미술전시를 한다는 기사가 났다. 음악이 아닌 미술을 전시한다고 해서 무슨 소리인가 하고 기사를 끝까지 읽었다. 그림 소재는 소리라고 하는데 자신에게 들리는 소리를 상상하고, 그 감각을 그림으로 옮겼다는 것이다. 오랜 시간 영화음악, 연극음악, 각종 행사음악을 만들어 왔는데 이제는 세상의 모든 소리를 그림으로 재현했다는 것이다. 내가 놀라고 존경스럽게 여긴 것은 그가 그림을 시작한 지 30년이 되었다는 점이다. 그동안 묵묵히 갈고닦은 실력을 30년 만에 세상에 드러내는 것이다. 얼마나 숙성이 되었을지 기대가 된다.
대기업에 근무하는 후배들을 만나면 가끔 설명하기 어려운 걱정이 밀려온다. 회사의 그늘이 너무 크고, 주변의 부러움까지 더해지다 보니 안전지대에서 안주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느낌 때문이다. 언론은 여전히 대기업을 안정된 직장으로 묘사하며, 보너스와 연봉 같은 숫자에 시선을 붙들어 둔다. 하지만 앞으로의 변화는 돈의 크기만으로 버텨내지 못할 수도 있다.
경량문명의 시대가 온다고 한다. 언제 조직도 인력도 축소지향으로 달릴지 모른다. 특히 AI발 변화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빠르게 일의 현장으로 밀려 들어온다. 이럴 때 새로운 문명에서 나의 또 다른 역할을 탐색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고 손해 볼 일도 아니다. 오히려 인생의 선택지를 넓힐 기회다.
다시 축적의 시간으로 돌아온다. 무엇이든 높은 수준의 완성도를 얻으려면 공부와 연습에 시간이 필요하다. 어영부영하면서도 결과를 얻으려 하는 건, 솔직히 말해 욕심이다. 기술이 좋아지고 환경이 편해졌다고 해서, 개인이 들이는 정성과 노력의 차이까지 사라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누구나 쉽게 시작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기에, 끝까지 가는 사람은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시작은 누구나 한다. 하지만 지속은 아무나 하지 못한다. 그리고 바로 그 지속이, 결국 결과가 된다.
머지않아 구정 새해가 다가온다.
신년에 세운 구상이 작심삼일에 그쳐서 괴롭다면 노트의 첫 장을 찢고 다시 시작하기 바란다.
그리고 지속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