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함

있으면 더 좋다

by 구쓰범프

아, 죄송합니다. 제가 명함이 없어서....

아, 네... 괜찮습니다.

회사를 퇴직하고 나서 가장 어색하고 당황스러웠던 순간이, 명함을 주고받는 자리였던 게 문득 떠오른다.


지금은 어찌어찌하다 보니 명함이 세 개나 된다.

집 사람이 하는 말 "명함만 부자네."


그런데 사실 그 명함을 잘 안 들고 다닌다. 왜냐하면 다들 딱히 나를 대변하는 명함이 아니라서다. 나를 아는 사람들이 '명함 없으면 어색하다.'며 자기 회사 명함에 내 이름을 넣고 그럴듯한 직함을 붙여 만들어 준 것이기 때문이다. 완전히 관계가 없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내가 그 회사에서 무언가를 해야 하는 것도 아니어서, 말하자면 '허빵 명함'인 셈이다. 그러니 명함을 건넸다가 "여기서 뭐 하세요?"라고 물어오기라도 하면, 거기에 답변하는 게 더 당혹스럽다. 아니면 어쩔 수 없이 사실과 조금 다른 얘기를 해야 하니 아예 안 가지고 다닌다. 호의를 무시할 수 없어서 받긴 했지만 딱히 쓸모는 없는 거다.


지금은 오히려 웬만한 자리에서는 "죄송합니다. 제가 명함이 없는 사람이라서요" 하고 뻔뻔하게 잘 넘어간다. 그게 가장 솔직하기도 하고, 죄지은 일도 아니어서 오히려 홀가분하다. 처음에 명함이 없어 당황해하던 때와 비교하면 천양지차의 변화다.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명함 위의 회사 이름과 직위는 개인을 대변해 주는 도구가 된다. 그 사람의 내면과는 무관하게 명함에 적인 내용들이 그를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조금 더 나아가면 좋은 직업이나 누구나 알만한 회사, 높은 직책이 적혀 있는 명함은 그 자체로 그 사람의 사회적 신분을 증명하는 면허증처럼 쓰이기도 한다.


그러다가 명함이 쳐 주던 보호막이 사라지는 순간 양상은 달라진다. 만나는 사람들 입장에서도 '이 사람이 뭐 하는 사람인지'를 알아야 궁금증이 덜 할 텐데, 그걸 알 수 없으니 상대를 대하는데 조심을 하게 된다. 어쩔 수 없이 과거 이력이라도 얘기를 해주면 그제야 "아, 그러시군요." 하며 경계심이 풀리는 걸 느낀다. 이런 과정을 조금 단축시켜 준다는 측면에서, 명함은 쓸모가 있어 보이기도 한다.


특히 소속이 없이 개인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들에게 명함은 더욱 중요하다. 프리랜서, 디자이너, 크리에이터, 작가처럼 '자기 이름'으로 일하는 사람들에게 명함은 곧 자신의 브랜드를 알리는 귀중한 수단이 된다. 명함을 통해 자신에 대한 이미지를 각인시키는 것이 비즈니스의 시작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명함은 15~17세기 무렵 유럽에서부터 사용되기 시작했다. 귀족이나 상류층이 자신의 이름과 가문, 사회적 지위, 방문 목적을 알리는 용도의 방문 카드로 상대에게 건네던 데서 유래한다. 당시에는 실용성보다 체면과 격식을 나타내기 위한 도구에 가까웠다. 이후 산업혁명으로 상업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명함은 소유자가 어디에 소속된 누구인가를 나타내는 수단이 되었다. 명함에는 회사명, 직위, 직책, 연락처 등 핵심 정보가 적히고, 갈수록 디자인, 재질, 인쇄방식 등이 차별화되고 개성이 담기게 된다.


디지털화 시대가 되면서 명함도 모바일 명함, QR코드 명함, NFC명함 같은 첨단(?)의 옷을 입고 있다. 하지만 비즈니스 현장에선 아직도 상대와 눈빛을 맞추며 종이명함을 나누는 아날로그 방식이 쉽게 자리를 내주지 않고 있다.


은퇴를 하자마자 바로 학교에 진학을 한 덕에, 지금까지 사회생활을 하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지냈던 공백은 없었다. 하지만 학위과정이 마무리되고 난 12월 이후부터 온전한 백수가 되었다. 무슨 일을 해도 되고, 하지 않아도 되고, 그저 마음 가는 대로 하면 되는 상태가 된 것이다. 바쁠 때는 누리고 싶어서 안달하던 '자유'를 현실로 마주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질문에 휩싸이기 시작한다.

"이런 무중력 같은 상태가 계속된다면, 과연 행복할까?"


간혹 어떤 사람은 명함이 없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한다. 이름 앞에 붙은 타이틀은 일정 기간 동안 쓰이다 사라져 버릴 것들이니, 집착하지 말고 삶의 소중한 가치를 찾으라고 한다. 명함에 적힌 것들이 가치관이나 인성, 혹은 자기를 나타내는 가치 기준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가치 있는 인생은 '무엇을 하고 사는지'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구구절절 맞는 말이고 공감도 간다. 나도 그 말을 믿고 싶었다.


그런데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으레 자신이 과거에 얼마큼 성공한 사람이었는지, 명함에 어떤 것이 주르르 나열돼 있었는지를 먼저 드러내곤 한다. '그 과정을 거쳐서 와 보니 부질없더라'거나 '그땐 몰랐지만 이제는 인생의 깊은 맛을 알겠다'는 의미에서 하는 충언이니 새겨 들어야겠지만, 뒷 맛이 개운치 않을 때도 있다.


그래서 문득 되묻게 된다. 혹시 '무엇을 하고 사는지'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깨달음을 주지는 않을까? 청개구리 같은 심보인지 몰라도, 자신이 지향하는 무언가를 하고 있을 때 자부심이 생기고, 그 자부심이 삶의 의미를 더 깊이 깨닫게 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럴 때 명함은 그 자부심을 남 앞에서 매번 확인시키는 각성제 역할을 한다. 서로가 어떤 일을 하며 살아가는지에 귀 기울이고, 서로를 존중을 하도록 돕는 메신저가 되는 것이다.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거창한 가치를 내세우지 않아도 좋다. 스스로를 편하게 알릴 수 있는 명함이 있다면, 자신 있게 내밀면 된다. 어딘가에 쓸모가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은 가슴이 뛰는 일이고, 또 다른 인생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 다시 드는 생각이다.

'명함을 우습게 보지 마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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