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품격이 입혀지나
얼마 전 있었던 일이다. 식당 홀에서 식사를 하는데 옆 테이블의 젊은 사람들 목소리가 유난히 크다. 대화 내용이 홀 안의 모든 사람에게 다 들릴 정도다. 원래 목청이 큰 사람들 같기도 한데 술까지 더해지니 조절이 안된다. 바로 옆자리에 있던 손님들이 슬그머니 자리를 옮기기까지 하는데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시간이 흐를수록 사람들이 그쪽을 보며 수군거리기 시작한다. 좋은 이야기가 오갈 리 없다. 귀가 방해를 받으니 우리의 대화도 집중이 안된다. 한참이 지나 그들이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갑자기 홀 안이 적막강산이 된 느낌이다. 남아 있는 사람들의 안도하는 듯한 표정이 재미있다. 그 정도로 남들에게 불편을 주고 있었던 셈이다. 그런데 그들은 나가는 순간까지 그런 낌새를 전혀 알아 차리지 못한다.
말은 단순한 소리가 아니다. 말의 방식 하나로 공간의 공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사람을 만날 때마다 부럽고 흉내 내고 싶은 것이 하나 있다. 품격 있는 말과 말투다.
상대가 어떤 단어를 선택하고, 어떤 속도와 톤으로 대화를 하느냐에 따라서 나의 감정이 덩달아 반응한다.
그것이 얼마나 강력한 힘을 가진 것인지 매번 느낀다. 나도 상대에게 그런 사람이고 싶은데, 스스로에게 주는 점수는 별로다.
그래서 닮고 싶은 사람들을 유심히 관찰해 본다.
첫째, 목소리다.
타고난 저마다의 목청과 목소리가 있으니 이 부분을 어찌하겠나 싶다. 하지만 품격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에는 공통점이 있다. 크지도 작지도 않으면서 유독 다정하고 넓게 감싸는 느낌을 준다.
말의 내용이 아무리 좋아도 목소리가 너무 크면 격이 떨어지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주변의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없어 보여서다. 혼자가 아닌 공간에서는 울림을 조금씩 나눠써야 한다. 큰 목소리는 남의 공간을 침범하고, 결국 일행조차 눈총의 대상이 된다. 간혹 나이나 타고난 목청 탓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알고 있을수록 더 조심해야 한다.
둘째, 말의 속도다.
어쩌면 그렇게 말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으면서 상대를 배려할까. 상대의 말을 자르는 일이 없고, 조급하거나 길지가 않다. 장황하지 않으니 조금 천천히 말해도 적당한 길이가 된다.
반대로 빠른 말은 의미를 따라가기도 어렵지만 왠지 경박함이 느껴져 신뢰가 안 간다. 말이 빠르면 말의 양도 많다. 모두가 그런 건 아니지만 조리가 없이 많은 것이 오가다 보니 길을 잃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길게 얘기를 했는데 곰곰이 짚어보면 짧아도 다 이해했을 내용이다. 생각이 정돈되기도 전에 말이 먼저 밖으로 나오니, 뒤따라가며 수습하느라 앞뒤가 꼬인다. 두서가 없으면 상대를 더 혼란에 빠트린다.
셋째, 구사하는 단어다.
닮고 싶은 사람들은 일부러 현학적인 단어를 끌어오지 않는다. 그럼에도 상황에 맞는 표현으로 상대를 쉽게 이해시킨다. 애써 멋진 말을 구사하려 드는 사람이 오히려 초라해 보인다.
넷째, 말의 내용이 따뜻하다.
말 자체에 선한 기운이 감돈다. 긍정의 언어요, 포용의 마음이다. 말로써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다. 오히려 용기와 격려를 그리고 안정감을 선사한다.
말은 그 사람의 성품, 인격, 가치관 그리고 본성이 집약되어 나온다. 그 사람 자신을 나타내는 것이다. 겉으로만 따라 하려 한다고 쉽게 같아질 수 있는 경지의 것이 아니다. 내면을 충실하게 다지고 인격이 받쳐지지 않으면 사상누각처럼 하루아침에 바닥이 드러난다. 더욱이 진실이 아닌 말은 아무리 던져봐야 나도 상대도 불편할 뿐이다. 입밖에 내기 전에 숨을 들이마시며 경계해야 한다.
나태주 시인이 책을 내고 유튜브에서 인터뷰하는 모습을 봤다. 이 분 앞에는 원고가 없다. 1년에 200회 정도 강연을 하지만 따로 자료가 없단다. 그저 사람들과 그날 하고 싶은 얘기를 던지고 묻는 말에 답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전달한다. 상대가 어떤 질문을 던지든 대답이 명쾌하고 지혜롭다. 상대의 말을 경청하며 상대의 생각을 먼저 안아주는 것은 기본이다. 선인의 지혜에서 배워 실천하고 있는 자신의 생각을 전한다. 과거에 매여있지 않고 현재를 체험하며 다듬어진 생각이다. 옛 것이 고루한 소리가 아니라 살아있는 가르침이 된다. 가만히 듣고만 있어도 마음이 편안해진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당장 따라 해 볼 수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있다.
위의 네 가지 중 그나마 '목소리'와 말의 '속도'는 잘 만하면 따라 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나 입에서 나오는 '단어'와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의 '따뜻함'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문제가 아니다. 인격이 다져져야 자연스러워진다.
언제 그렇게 될지 모르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일도 아니다.
그게 곧 자신이라고 하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