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업을 그리며
"연애는 사치""강아지랑 놀죠"...요즘 밸런타인
며칠 전 본 신문기사의 제목이다.
취업난 속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20대 청년층 사이에서 이성교제보다 자신의 삶을 더 중요시하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보니, 밸런타인데이가 예전 같지 않다는 내용이다.
자신의 삶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마땅하고도 좋은 일이다. 하지만 직장을 가지기가 어려운 상황이어서 이성교제를 할 여유가 없는 젊은이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게 기사가 전하는 골자다.
이성을 만나면 시간과 감정뿐 아니라 경제적 부담까지 감당해야 하니 연애가 부담스럽다는 것이다. 대신 개인적 취미나 자기 계발을 위한 모임, 반려견에 정성을 들이는 경향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이런 추세는 비단 우리나라에 국한되지 않고, 미국, 중국을 비롯한 세계 곳곳에서 비슷하게 나타나는 현상이라 한다.
약 25년 전, 미국 주재 시절의 에피소드가 떠오른다.
당시 한국에서는 밸런타인데이가 남녀 간 사랑을 고백하는 기념일이기도 했지만, 직장에서도 여사원들이 남사원들의 책상에 올려놓은 초콜릿을 나눠 먹으며 담소를 나누는 즐거운 날이기도 했다.
그런 관습(?)에 익숙했던 나는 주재 첫 해 밸런타인데이에 부서원들에게 조금 더 다가가고 싶은 마음에 초콜릿을 준비했다. 집 사람의 도움까지 받아 정성스럽게 포장한 초콜릿을 아침 일찍 직원들 책상 위에 가지런히 올려 두었다.
하나 둘 출근하는 직원들 얼굴에 미소가 퍼지고, 몇몇은 직접 찾아와 고맙다는 말을 전하기도 했다. 그렇게 나의 '다가가기'는 성공적인 대미를 장식하는가 싶었다.
그때 내게 조용히 다가온 한 사람이 있었다. 한국계 교포 청년이었다.
"저... 과장님. 미국에서는 밸런타인데이에 연인사이에만 초콜릿을 주고받아요. 그래서 일부 직원들이 조금 당황스러워하고 있어요. 굳이 안 하셔도 돼요."
순간 얼굴이 화끈 달아오름을 느꼈다. 하지만 어쩌겠나 이미 엎질러진 물을.
"아. 알아요. 하지만 제가 주고 싶어서 그런 거예요." 하고 억지로 넘어가긴 했지만 문화가 이렇게 다르구나 하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다.
그 이후 내게 밸런타인데이는 굳이 신경 쓰지 않는 기념일로 멀어져 갔다.
밸런타인(Valentine) 데이는 3세기 로마시대, 황제의 허락 없이 젊은 연인들을 결혼시켜 주다 순교한 성 밸런타인의 이야기에서 비롯되었다. 그가 순교한 날을 축일로 정하여 해마다 연인들이 사랑을 고백하는 날로 이어져 오고 있다.
그랬던 밸런타인데이에 요즘 청년들이 겪는 소식을 접하니 다양한 생각이 교차한다.
세대가 변했다기보다 상황이 여의치 않다는 게 마음에 걸린다. 그나마 다행인 건 그들이 자기 삶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인다는 데 있다.
관계보다 생존이 먼저가 되는 건 반복되는 역사에서 늘 보여주던 모습이다. 산업혁명 시기에도 도시로 몰려든 젊은이들이 생존을 위해 일에 매달리느라 연애가 사치처럼 여겨졌다는 기록이 있다.
그렇게 달려서 여기까지 왔고 이 구간을 넘어서면 또 다른 시대가 열리지 않겠는가
상혼이어도 좋다.
내년 밸런타인데이에는 초콜릿 Sold out의 대반전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