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완전함을 견디는 힘
완벽하다는 건 좋은 걸까, 나쁜 걸까
완벽주의에는 세 가지 차원이 있다고 한다.
첫째, 자신에게 극도로 높은 기준을 적용하는 자기 지향 완벽주의와,
둘째, 타인이 자신에게 완벽함을 기대한다고 믿는 사회부과 완벽주의,
마지막으로, 타인지향 완벽주의인데 다른 사람들에게 완벽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것이다.
나를 돌아보니 이 세 가지를 모두 가지고 있는 듯하다. 이런 성향은 일을 할 때뿐만 아니라 사람을 만나는 데 있어서도 나타난다.
며칠 전에도 비슷한 상황을 겪었다.
만남을 마치고 돌아와서 대화 중에 오갔던 말들을 곱씹어본다.
'굳이 그렇게 말하지 말고 이렇게 표현하는 게 나았을 걸 그랬네.'
'상대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그러다가는 또 이런 생각도 한다
'고개를 끄덕였고 맞장구를 친 걸 보면 같은 생각이었을 거야.'
'오히려 명확하게 주장하는 내 얘기가 속이 후련했을 거야.'
하루 종일 머릿속에서 찬반 토론을 벌이며 심판을 보다 보니, 진이 다 빠졌다.
왜 나는 이렇게까지 자기검열을 하고 있는가
이것도 일종의 완벽주의가 몰고 온 부작용이 아닐까.
최근 서점에 회사에서 성공한 인물들의 자전적 에세이가 많이 나와 있다. 성공 스토리를 슬쩍 훔쳐보면, 대부분 열정적으로 일하고 최선을 다한 일화를 소개하고 있다. 이들의 모습은 완벽주의에 가깝다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는다.
실제로 성공에 이르는 데는 완벽주의적 성향이 일조를 했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본인뿐만 아니라 같이 일하는 사람까지도 완벽했을까 하는 데는 의문이 남는다.
조직과 개인은 본질적으로 불완전하다. 구성원에게 높은 기준을 요구하여 열정을 자극했다고 하지만, 그 이면에는 과도한 스트레스로 번아웃된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완벽주의 성향의 리더들은 마이크로 매니지를 하는 경향이 강해 구성원들의 자율성이 제한되는 경우가 많다. 결국 혼자서 북 치고 장구치고 하는 와중에 후배들의 육성시간은 더디게 흘러간다
게다가 완벽주의자들은 종종 끝없는 검토를 거듭하다 실기하는 우를 범하기도 한다. 완벽함보다 속도가 중요한 조직에선 뼈아픈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최근 유튜브에서 본 한 직장인의 사연이 떠오른다.
어느 날 남편과 아이가 있는 앞에서 상사의 전화를 받았는데, 상사의 질책소리가 가족들에게까지 들렸다고 한다. 이후 그녀는 그 장면이 트라우마가 되어,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다 끝내 퇴사하고 말았다는 이야기다.
완벽주의는 나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남에게 과도한 압박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아무리 우수한 인력도 완벽한 인간이 아닐진대, 모든 것을 다 잘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완벽주의적 사고방식이 불완전함을 완전히 극복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진정한 리더십은 완벽함이 아니라 불완전함을 받아들이고, 실패에서 배우며 지속적으로 개선해 나가는 능력이 아닐까.
완전하지 않으니 실수를 남발해도 된다는 의미가 아니다. 부족함에 스트레스를 주고받기보다 다음을 위한 발판으로 삼아 다시 나아가는 태도가, 인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자세가 아닌가 하는 것이다.
세종은 조선의 왕들 가운데서도 가장 치열하게 공부하고 고민한 군주였다. 하지만 그는 완벽한 판단을 혼자 만들어내려 하지 않았다.
중요한 제도를 만들 때마다 경연과 회의를 열어 신하들의 반대 의견을 적극적으로 끌어냈고, 심지어 자신의 판단이 잘못될 가능성을 먼저 언급하며 토론을 유도했다. 완벽하려 하기보다 불완전함을 드러내고, 그 틈을 토론과 학습으로 메우는 선택을 했다. 그가 이룬 업적을 두고 부족하다고 하는 사람이 있는가.
그릿(Grit)은 완벽주의를 대체할 좋은 태도다. 그릿은 끊임없이 시도하고 그에 대한 피드백을 받아들여, 다음 시도에 반영하는 과정을 말한다. 완벽하지 않아서 소용없다는 태도가 아니라, 부족하지만 꾸준히 하다 보면 결국 이룰 수 있다는 믿음이 중요하다.
완벽주의에 도전하기보다
불완전함을 견디는 힘을 기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