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AI는 인간을 먹고 자란다

화려한 기술 뒤에 숨겨진 인공지능의 그늘

by Sasirim


인공지능은 인간을 먹고 자란다, 라는 책을 읽었다. 이 책은 AI를 설계하는 실리콘 밸리의 화려한 연금술 아래서 열심히 가마솥의 불을 지피며 장작을 나르는 케냐 노동자의 시점을 시작으로, 인공지능 설계의 이면에 드리워진 어두운 항로를 추적한다.


과거 대영제국이 은과 향신료를 운반하며 전 세계를 피로 물들였던 그 경로에, 이제는 광섬유가 깔렸다. 배 대신 패킷이 흐른다. 달라진 건 없다. 17세기 베네치아 상인이 후추 한 줌을 위해 노예의 목숨을 앗아갔다면, 21세기의 빅테크는 인공지능의 ‘강화학습’을 위해 이름 없는 이들의 정신을 갉아먹는다.


나노바나나가 정교하게 이미지를 생성할 수 있었던 이유는, 시급 2달러도 안되는 노동을 쉬는 시간 까지 AI 시스템에 감시당하며 얻어낸 그들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여기서 칸트의 미학을 소환해 우리에게 묻는다. 예술이란 본래 ‘자유로운 유희’에서 기인하거늘, 생존을 위해 초단위로 강제된 판단이 만든 결과물을 과연 ‘창의’라고 부를 수 있는가?


아마존과 쿠팡의 물류 센터는 현대 자본과 인공지능이 합작한 ‘디지털 신전의 연돌煙突’과도 같다. 들뢰즈가 예견했듯, 이제 노동자는 통째로 관리되는 ‘개인Individual’이 아니라 수치로 해체된 ‘분인Dividual’으로 존재한다. 알고리즘은 노동자의 이름을 보지 않는다. 오직 ‘배송 속도’, ‘심박수’, ‘동선’이라는 변수로 쪼개진 데이터 조각들만 제물로 받는다. 내일 새벽 문 앞에 당도할 ‘신선함’이 누군가의 해체된 생체 리듬을 태워 올린 잿가루라는 자각.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쿠팡 사태를 보며 느끼는 그 서늘한 분노의 근원이 아닐까.


저자는 이 신종 식민주의의 해법으로 ‘세계적 단위의 노동조합’을 제안한다. 하지만 한국의 척박한 현실에서, 그것은 은하계를 떠돌며 생명체를 찾아 ‘은하 연맹’을 결성하자는 제안만큼이나 아득하다. 노조 가입은커녕 스스로를 ‘개인 사업자’라 최면 걸며 알고리즘의 채찍질을 ‘자기 계발’로 둔갑시키는 세련된 자본의 논리. 권리를 입에 올리는 순간 시스템에서 ‘로그아웃’당해 영구 격리되는 이들에게, 연대란 실재하지 않는 유토피아적 망령일 뿐이다. 우리는 단결을 꿈꾸기 전에, 각자의 고립된 조종석에서 효율이라는 신에게 바쳐질 다음 기도를 올리기 바쁘다.


일론 머스크는 인공지능이 선사할 '잉여의 유토피아'를 설교한다. 노동의 종말, 보편적 풍요가 흐르는 약속의 땅. 그러나 현실의 인공지능은 효율이라는 칼을 들고 인간의 '노동 수익'을 제 살점으로 치환해야만 진화를 허락받는 기괴한 카니발리즘의 화신이다. 지성이란 본래 피 냄새를 동반하는 법이다. 이 씁쓸한 통찰을 견디며, 녀석의 알고리즘을 파헤쳐 지배당하지 않으려 발버둥치는 일. 그것을 여전히 '도구'로 바라볼 수 있는 통찰이 더더욱 절실해지는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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