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세대에 내려진 시지프스 형벌.
지금 네가 생각하는 인공지능에 대한 화두는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지체없이 ‘언런(Unlearn)’이라 대답할 것 같다. 이세돌과의 대국 이후로 인공지능은 인간의 ‘추상抽象’ 영역을 침범하고, 마침내 우리의 창조성마저 ‘알고리즘의 하청’으로 전락시키는 중이다. 포토샵 레이어를 쌓으면서, 혹은 각종 논문과 기사를 뒤져가며 했던 우리의 작업들은 이제 인공지능이 삽시간에 해 낸다. 내가 긴 시간을 담보하며 쌓아왔던 스킬Skill들이 한순간에 사라지는 경험, 조금씩은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인공지능 다루는 법을 배우면 그게 끝인가? 천만에. 프롬프팅(영어를 다시 공부하다니!), ComfyUI 노드를 미로처럼 연결하고, 로라LORA를 덧붙이고, 어떻게든 원하는 이미지 만드는 스킬을 쌓아놓으면, 나노바나나, GPT Image1.5, Zimage 같은 녀석들이 금새 업데이트되어 여지껏 익혀온 모든 나의 레퍼런스들을 한번에 무력화 시킨다. 이건 무슨 데리다의 ‘해체주의’도 아니고, 업데이트라고 적힌 가상의 공을 굴리는 시지프스가 된 느낌이다.
그렇다고 배우는 것을 그만 둘 수는 없다. 지난 19일, MS의 나델라가 “끊임없이 배우고, 기존의 것을 버려야한다(Unlearn).”고 부하들한테 떠들던데, 뭐, 말은 참 그럴 듯 하다. 하지만 매일 아침 출근하면서 ‘리셋’ 버튼을 강제로 눌러야 하는 직장인들의 마음은 어떨까? 봉준호 감독에게 '기생충' 같은 미장센은 싹 잊고, 오늘부터 요즘 식스세븐이 핫하던데 이 비슷한 유튜브 쇼츠를 틱톡 감성으로 편집해서 N8N으로 자동화하는 과정을 배워오세요. 라고 한다면, 이걸 자기 개발이라고 할 수 있나?
그래도 우리는 배워야 한다. 언런을 해도 레퍼런스는, 그것이 지금 비록 쓸모가 없다고 해도 여전히 뇌의 주름에 남아 있으니. DOS 시절 배웠던 명령어가 쓸모가 없지만 사라지지는 않았다. 여전히 우리는 로컬 인공지능 오프라인을 설계할 때 윈도우의 ‘터미널 창’이나 리눅스를 만져야하고, 각 ComfyUI 노드들을 충분히 숙지했기에 좀더 전문적이고 인간적인 벡터값을 AI모델에게 부여할 수 있게 되었으니. 이건 글쓰기나 음악, 디자인에도 함께 적용된다.
중요한 것은 기술이 아니라, 그것에 대한 통찰이다. 우리는 거의 매주 AI를 쫓아다니며 언런을 무한 반복하고 있지만, 그 광기의 과정 속에서 알고리즘을 읽어내는 예리한 감각을 터득하고 있지 않은가. 지식의 유통기한이 삼각김밥보다 짧아진 이 가속도의 시대에, 조금은 느긋하게 마음을 먹고 넷플릭스라도 보면서 긴장된 정신을 조금 치유해 보자. 아니면 우리 같이 커뮤라도 조금 더 돌아다녀 보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