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ty &Love
‘그날’ 제일 먼저 아버지를 발견한 사람은, 방과 후 활동을 빼먹고 학교에서 일찍 돌아온 나였다. 무겁게 커튼이 쳐진 거실에서 아버지는 잠자듯이 누워 계셨고, 아버지 곁에서 웅크린 채 나를 바라보던 초록의 눈 고양이가 나를 보며 ‘야옹’하고 울었다. 나는 그런 고양이게 사료를 준 후 친구들과 놀러 나갔다. 아직도 나를 향해 울던 고양이의 목소리와 초록색 눈빛을 기억한다.
사실 그가 답장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나는 그저 일말의 측은지심에 ‘위로자’가 되고 싶었을 뿐이다. 누군가에게 내 말 한마디가 전해져 위로될 수 있다면 그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이 들었던 이유는 그때가 모두 잠든 새벽 3시였고, 가끔 나는 대책 없는 감상에 빠질 때가 있는데 바로 그때였던 것 같다.
그가 이메일을 보내온 것은 그로부터 일주일쯤 지난 후였다. 그의 희한한 이름의 ‘마카로니웨스턴 스파게티’ 조리법도 함께 적어 보냈다. 마카로니와 스파게티를 함께 사용해 조리한다는 점이 특징이었다.
'재미있는 사람이군'
나는 그의 이메일을 보는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주의 먼지가 눈 속으로 날아든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나의 프로작에게,
당신이 알려준 발리로의 여행은 한 번 생각해 볼 만한 것 같습니다. 언젠가 우리가 만나게 된다면 함께 발리로 여행을 떠나고 싶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지금 이곳은 온통 하늘이 벚꽃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갑자기 벚꽃 나무 밑에는 시체가 있다는 말이 생각납니다. 아름다운 꽃잎들의 시체일까요? 저는 개인적으로 벚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시한부 소녀의 미소처럼 슬프도록 아름답지만 허무하죠. 아, 스미마셍. 잠깐 감상적으로 됐습니다. 바람에 날리던 벚꽃이 유리창에 부딪히더니 나풀나풀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을 보고 있자니. 당신은 감상적인 사람이 아닌 것 같습니다.
약속대로 마카로니웨스턴 조리법을 알려드립니다. 숟가락으로 떠먹을 수 있는 스파게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의 이메일에 답을 주신다면 다음엔 블루베리 머핀을 맛있게 구울 수 있는 레시피를 알려드리겠습니다.
당신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난 어제 당신 때문에 행복해지는 약, 프로작을 복용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하루종일 발리에 관한 책과 유튜브만을 봤기 때문이지요.
어느새 나는 그에게 ‘나의 프로작’이 되어 있었다.
그의 메일을 읽는 순간 낯선 소년에게서 편지를 받은 소녀처럼 설레는 감정을 느꼈다. 이전에는 결코 느껴보지 못한 생소한 감정이라 적잖이 당황스럽기도 했다. 늘 가성비와 시성비를 입에 달고 사는 내가 이래도 되는 걸까? 나의 마음을 그랬다. 그는 내게 잉베이 맘스틴의 기타 연주를 가장 멋지게 들을 수 있는 때는 자정이 넘어서라든지, 나팔꽃을 아름답게 키울 수 있는 법 등 여러 가지 시시콜콜한 일상들을 메일로 보냈다. 새벽에 메일이 도착할 때도 있고, 어느 일요일 아침엔 일어났느냐며 모닝커피를 맛있게 내리는 법을 알려줄 테니 바로 시작해 보라고 재촉하기도 했다.
일요일에는 늦게까지 침대에서 빈둥거리며 숏츠나 보는 것이 일상이었던 내가 야스무사라는 남자 덕분에 일요일 아침부터 스타벅스로 원두를 사러 갔고 결국엔 그가 알려준 대로 커피를 내리고 딸기잼과 클로티드크림을 잔뜩 얹은 프렌치토스트를 만들었다. 창가에 앉아서 커피와 프렌치토스트를 먹으며 생각했다. 결핍인가? 나도 결국 금사빠였나? 얼굴도 본 적 없는 남자 때문에 아침부터 부지런 떨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묘했다. 작은 오피스텔 안에 가득한 커피 향과 달콤한 딸기잼 냄새 때문에 건조한 크래커 같던 나의 일상이 어느 정도는 로맨틱 지수가 올라간 것 같은 묘한 기분이 든다. 초록에 홀린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