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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에 스며들다 교토 4

City &Love

by Dear Lesileyuki

내 인생의 해안가에는 낭만적인 파도가 밀려올 기미조차 없다. 그러나 일을 제외하면 조용하고 지루하기까지 한 나의 일상에 재미있는 일이 발생한 것은 아주 우연한 일을 계기로 시작되었다.

그날도 퇴근 후 곧바로 오피스텔로 돌아오자마자 이민족에게 넘어간 배달의 민족에서 닭발을 주문한 후 노트북을 켰다. 기다리는 동안 밥친구로 유튜브 영상을 보기 위해서다. 주로 보는 것은 여행 유튜브 채널이다. 구독은 하지 않고 그냥 본다. 스치듯 보는 것에 의미 두기 때문이다. 그런데 알고리즘이 새로운 채널을 띄웠다. 화면 가득 그린파파야향기, 아니 영화 속의 한 장면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실내가 내 눈을 사로잡았다. 동경에서 식물을 키우는 남자의 브이로그였다. 아무리 초록에 환장했다고 해도 ‘프로작’이란 이름이 아니었다면 어쩌면 그냥 스쳤을지도 모른다. 얼마 전 다큐멘타리레서 ‘프로작’이란 약에 관해 다룬 덕을 본 적이 있다. ‘행복해지는 약’이라고 불리면서 캐나다를 비롯한 서구의 예술가나 젊은 층이 습관적으로 복용한다는 그 약은 부작용이 별로 없어서 단속하기에도 애매한 약이라고 했다. 행복감을 느낄 수 없어서 약을 복용하는, 물리적인 방법을 통해 행복 해지려는 사람들. 약국에서 돈을 주고 행복을 사려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머릿속에 박혀있지 않았다면 그의 브이로그를 보지 않았을 것이다.

그가 보여주는 집안이 온통 초록이었다. 제법 큰 미모사를 실내에서 키우고 있었다. 심지어 노란 꽃이 활짝 피어 햇살 아래서 황금빛으로 빛났다. 그 미모사와 프로작 때문에 나는 구독 신청을 하고 ‘좋아요’를 눌렀다. 처음이었다. 누군가에 하트를 날린 것은.

프로작을 찾습니다.

잉베이 맘스틴과 스팅을 좋아합니다. 다시 연락 주시면 마카로니웨스턴이란 특제 스파게티 비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이메일을 보내주셔도 좋습니다.

다나카 야스무사

교토에 사는 야스무사와의 인연을 그렇게 시작되었다.

행복해지는 약을 찾는다는 그에게 나는 본능적으로 호기심을 느꼈다.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기에 기분이 묘했다. 항상 인간관계의 확장은 원하지 않는다고 공공연하게 말했고, 코로나 때처럼 회식도 각자 집에서 줌으로 하자고 우겨서 상사를 열받게 하던 나였다.

그는 행복해지기 위해서 ‘프로작’을 찾고 있는 것은 아닐까? 며칠을 고심한 끝에 나는 그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식물집사처럼 보이는 그는 어쩌면 단순히 육체적으로 행복해지는 약을 찾는 게 아니라 정신을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사람을 찾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그의 초록의 매혹이 가득한 거실에 홀려서, 누구에게도 느껴본 적 없는 ‘염려’가 여러 날 동안 충돌한 끝의 결과였다. 그리고 웅크리고 있던 초록빛 눈을 한 검은 고양이 때문이기도 했다.

오래전 나도 그런 눈빛을 한 고양이를 키운 적이 있다. 정확히 말하면 아버지가 키우던 길고양이였다.

‘프로작을 남용하지 마세요. 행복해지려면 발리로 여행을 떠나볼 것을 권합니다. 행복해지기 위한 치료법 중의 하나를 발견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치료사 홍지수’

나는 그에게 그렇게 행복해지고 싶으면 발리로 여행을 가라고 권했고, 내가 가봤던 발리에 관한 짧은 감상문을 보냈다. 분명 우울증 말기의 환자일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하면서.

아버지가 깊은 우울증으로 생을 마감했기에 나는 그 마음을 어느 정도는 짐작할 수 있었다. 어린 내 기억 속의 아버지는 늘 말이 없으셨고 세상에 저항하기를 포기한 사람처럼 무기력했다. 늘 고양이만이 아버지의 곁에 머물렀다. 그리고 아버지가 생을 마감하던 날에도 고양이만 곁을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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