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ty &Love
아마 그날 아니 그날 이전과 이후에도 한사랑 산부인과에서 내가 가장 어린 손님이었을 것이다. 의사는 이준의 머리부터 한번 쥐어박은 후 ‘앞으로 평생 책임질 거냐’냐며 물었다. 그러자 이준은 눈물 콧물 범벅인 된 얼굴로 끄덕이며 울었다. 선생님은 심각한 얼굴로 이준을 바라보다가 연락을 받고 달려온 엄마의 기세에 눌려 어쩔 줄 몰라했다.
의사는 엄마와 선생님에게 어쩌면 커서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고, 그 가능성은 반반이라고 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극성스러움에 있어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엄마가 노발대발한 것은 너무나 당연지사였다. 엄마는 연락을 받고 달려온 이준의 부모님에게 각서까지 쓰게 했다.
내용인즉 ‘만약 의사의 소견처럼 일이 발생할 시에는 당연히 책임진다. 그리고 ‘을’ 이준은 ‘갑’ 홍지수가 결혼하기 전까지는 절대 결혼하지 않는다. 뭐 그런 각서였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엄마는 이준의 손도장까지 찍어가면서 진지하게 작성하고 공증까지 받아두었다. 살벌한 분위기에 나는 어리둥절했고, 엄마 손에 잡혀 강제적으로 손도장까지 찍힌 이준은 또다시 울음을 터트렸다.
아무튼 결과적으로는 별일 없이 끝난 그 일 덕분에 나는 극성스러운 엄마의 시선에서 다소나마 취할 수 있었다. 위로 두 언니는 엄마가 지인을 통해 최상의 인연을 찾아주는 결혼 매칭 서비스라는 이름으로 근사하게 해치워졌고, 지금은 본인들이 이루지 못한 꿈을 아이들에게 투영시키며 대치동으로 ‘미래의 꿈나무’를 실어 나른다. 그러나 나는 집안의 막내기도 하지만 이준의 각서 건도 있고 해서 어느 정도는 엄마의 시선에서 자유로운 편이다. 얼마 전 오빠가 나이 마흔에 결혼하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독립을 했다. 사실 모두가 시집살이를 거부하는 21세기에 자청에서 집에 들어와 산다고 했을 때 나는 귀를 의심했다. 언니들은 분명 꿍꿍이가 있을 거라는 색안경을 장착하기 시작했지만 우리 집이 재벌도 아니고 그런 권모술수형 인간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가진 것이라고는 달랑 엄마가 살고 있는 3층 상가주택뿐인데 고작 그거 하나 챙기자고 엄마처럼 까다로운 사람과 살겠다는 것은 그저 성격이 보살이라서 그런 거라고 언니들에게 말했지만 두 여인은 아직도 색안경을 쓰고 경계를 늦추지 않는다.
이준이 아니었다면 나는 엄마의 야심 찬 결혼 프로젝트에서 도저히 벗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 분명 엄마의 등쌀을 견디다 못해 벌써 외국으로 튀었을 테니 그 점은 이준에게 고맙게 생각한다. 그래도 그날의 아픔은 가끔 생각난다. 이준의 눈물과 콧물이 범벅된 얼굴도.
IT회사 커뮤니케이션 디자인 팀에서 웹디자이너로 일하는 덕분에 엄마에게 오피스텔 월세를 내고 당당히 큰소리치고 살 정도는 된다. 주식이나 코인 같은 것은 근처도 얼씬거리지도 않고 카카오뱅크의 6주 적금이나 드는 정도에 만족한다. 휴일에는 소파와 일체가 되어 네플릭스, 왓챠 같은 OTT를 하루종일 본다.
가끔 이런 나의 일상이 후추와 소금을 뺀 크림수프를 먹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 그러면 잉위맘스틴의 기타 연주를 크게 틀어 놓고 스파게티를 만들어 먹거나 영화 <그린파파야향기>를 연속해 본다. 화면을 가득 채운 초록빛이 전해주는 청량함과 싱그러움이 소녀에서 여인으로 성장하는 주인공에게 투영된 것 같은 영화는 내 생활의 인센스라고 할 수 있는 셈이다.
영화 속의 10살 소녀 무이의 은근하고 신뢰에서부터 시작된 잔잔한 사랑이 아름다워 종종 향을 피우듯 플레이 버튼을 눌러 영화를 집안의 배경처럼 깔아놓는다. 영화 속 잔잔한 음악과 여름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종일 어슬렁거리는 나의 삶에 만족한다.
한 달에 한 번이나 두 달에 한 번쯤 나의 친구 이준이 안부 전화 겸 소식을 전한다. 아니면 메일로 장문의 편지를 보내거나 최근에 쓴 시를 보낸다. 구태의연하다고 면박을 주면서도 나 역시 그런 그의 유희를 즐긴다. 그는 아직도 시인의 꿈을 버리지 못했다. 가끔 나는 이준과 내가 이인삼각으로 묶여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옆을 보면 언제든 이준이 있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