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스물다섯살이 되던 해, 부모님의 결혼기념일에 맞춰 편지를 여러 편 써드렸던 적이 있다.
그 때 나는 뭐가 그렇게 미안한 게 많았는지, 편지에는 죄송하다는 표현이 참 많았다.
우리 집은 아빠가 외벌이를 하셨는데, 동생이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부터는 엄마도 일을 하기 시작하셨다.
그리고 나와 동생이 한 살, 두 살 먹어감에 따라 지출해야하는 비용이 커질수록, 두 분의 퇴근시간은 점점 늦어졌다.
엄마 아빠는 식료품 값, 옷 값으로는 만원도 허투루 쓰지 않으시면서도, 달에 몇 십만원 때론 몇 백만원 하는 우리의 교육비는 주저없이 지출하셨다.
그리고 그 성과가 늘 바로 나타나진 않았음에도 타박 한 번 하지 않으셨다.
그렇게 내가 두 분의 희생을 양분 삼아 무럭무럭 성장해나갈 때, 되려 당신께선 당신을 조금씩 잃어가고 있었다.
엄마는 이름을 잃었다.
늘 당신의 이름으로 불리시던 분이 나를 낳고 나서는 OO 엄마가 되었다.
아빠는 친구를 잃었다.
야근은 기본이었고, 이따금씩은 주말도 반납하고 일을 하셨다.
그러니 사적으로 찾는 사람이 줄어들었고, 한 때 가까웠던 이들과도 점차 소원해졌다.
동시에 두 분은 매년 젊음도 조금씩 잃어갔다.
잃어버린 그 자리만큼을 흰머리와 주름이 대체하고 있었다.
당신의 소중한 자원을 소모해가면서까지 나에게 투자한 그 모든 것들이 감사하면서도 때론 부담이 됐다.
어느 날엔 내가 그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사람인 것도 같았다.
두 분이 많은 것을 잃어가며 보듬어온 나라는 사람이 참 초라한 것 같아서, 그게 그렇게 죄송했나보다.
편지를 읽고나서 엄마 아빠는 전화를 걸어오셨는데, 전화 너머로 애써 울음을 참고계셨다.
2.
그런데 내가 두 분의 희생이라 생각했던 건 희생이 아니라 사랑이었을 뿐이었고,
편지에 꾹 눌러담은 죄스러움의 고백은 사실 마땅히 죄송해 해야할 일들이 아니었다.
당신께서 당신을 조금씩 잃어가시던 것도 아니었다.
그저 당신만이 점유하던 마음의 곳간을 조금씩 비우고, 그 빈 자리만큼을 나로 채우던 것이었다.
이름을 잃었던 엄마에게도, 친구를 잃었던 아빠에게도 나라는 사람이 기꺼이 그래주고 싶었던 존재였을 뿐이었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으면서 내가 가진 것들을 기꺼이 내려놓을 수 있는 마음', 그게 사랑이란 걸 그 땐 몰랐다.
그러니 사랑에는 늘 대가가 따라야한다 생각했고, 지불할 능력이 부족했던 나에겐 대신 미안함이라는 부채가 쌓여갔다.
그렇게 늘 미안함이 사랑을 뒤쫓았다.
3.
그랬던 내가 스물여덟살에 암에 걸리고 나서는, 두 분이 제발 나에게 미안해하지 않기를 바랐다.
특히 가장 듣고싶지 않았던 말은, "건강하게 낳아주지 못해서 미안해."
잘못한 사람은 없는데 미안해하는 사람이 있다는 게 참 속상할 것 같았다.
이런 나의 마음이 닿았는지, 두 분이 실제로 어떻게 생각하셨는지는 모르겠으나 당신께선 입 밖으로 미안하다는 말씀을 꺼내진 않으셨다.
나 역시 "아파서 미안해." 따위의 말은 일절 꺼내지도, 생각하지도 않았다.
잘못한 게 없으니까, 그러니 죄송할 것도 없으니까.
암을 겪으며 더 유연해지고 단단해진 나는 이제 사랑 속에서 미안함을 찾지 않는다.
미안함과 사랑의 교집합은 공집합임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저 받게되는 배려와 호의에 마음 다해 감사해하며, 더 큰 배려와 호의로 돌려주고 싶다는 생각을 할 뿐이다.
그러면서도 돌려받을 거란 기대는 하지 않는다.
서로가 서로에게 더 주지 못하는 걸 미안해하지 않고 더 받지 못하는 걸 서운해 하지 않는, 그러면서도 사랑을 잃지 않는 그런 건강한 관계가 되고싶다.
4.
부디 당신께서는 나보다 훨씬 일찍 이를 깨닫고 계셨던 거였으면 좋겠다.
그래서 그 어린 시절 저녁 식사를 같이 하지 못함을 미안해하지 않고,
고된 업무때문에 일요일엔 늘 집에서 잠만 주무시던 것을 미안해하지 않고,
은근슬쩍 잘 사는 친구와 비교하며 신세한탄을 하던 나의 말에 미안해하지 않고,
머리카락도 눈썹도 다 빠졌던 나의 초라한 모습을 보며 미안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부모라는 이유만으로 책임이 없는 일에도 책임감을 느끼시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동시에 당신에게 내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와는 무관하게, 언제나 당신의 삶의 가장 우선 순위는 당신이었으면 좋겠다.
다시 돌아와서 그 날 전화 너머로 참고 계셨던 울음이,
이미 많은 것들을 해주셨으면서도 더 해주지 못함을 미안해하던 울음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미안함이 사랑을 뒤쫓지 않을 때 진짜 사랑이 보인다는 걸, 진작에 알고 계셨던 거였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