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겨진 사람들을 위한 행사

할머니의 장례식

by 아피탄트

지난 추석연휴, 할머니께서 세상을 떠나셨다. 향년 100세.

막내 손자였던 나는 장례 기간 어쩌다보니 장손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

조의함을 지키고, 문상객들을 맞고, 운구 땐 영정사진을 들고.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할아버지께서는 내가 태어나기도 전 혹은 내가 너무 어릴 때 돌아가셨기에, 이번 장례식이 사실상 내가 처음 겪어본 장례식이었다.


성인이 되고난 후로 이따금씩 조문을 갈 일이 생겼는데,

그 때마다 얼핏 장례식은 떠난 사람보단 남겨진 사람들을 위한 행사인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이번에도 역시 그랬다.

속속들이 도착하는 화환들.

어떤 건 아빠의 앞으로, 또 어떤 건 큰아빠의 앞으로, 또 어떤 건 고모의 앞으로.

그러나 할머니는 화환을 보실 수 없다.

이어서 도착하는 근조기들 역시 마찬가지, 할머니는 보실 수 없다.

화환을 보내주신 많은 분들 중에서, 실제로 할머니를 뵌 적이 있는 분은 과연 몇 분이나 되었을까.


귀한 시간과 마음을 내어 조문을 와주신 감사한 분들.

당연히 할머니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함도 있겠으나, 남겨진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함이 더 커보였다.

그렇게 할머니는 마지막 순간에도 주연이 아닌 조연이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들을 하며 빈소를 지키다 하루가 다 지나가고, 다음 날엔 입관식이 있었다.

마지막으로 뵙는 할머니의 모습.

할머니도 많이 두려우셨겠지.

언젠가 어느 배우가 시상식에서 죽음을 앞둔 당신의 아버지에게 죽음은 그저 존재 양식의 변화일 뿐이라고, 그러니 너무 두려워하지 말라고 담담하게 말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평소 비슷한 생각을 했던 나에겐 그 말이 울림이 있었다.

물론 다시 뵐 수도 만질 수도 없지만, 할머니께선 또 다른 무언가가 되어 내 곁에 함께할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떠나보내니, 슬프지만 눈물이 나진 않았다.


마지막 날엔 화장을 하고 장지를 했다.

자연장으로, 할머니의 유골을 흙과 함께 섞어 자연으로 돌려 보내드렸다.

할머니는 떠나갔지만, 할머니를 이루고 있던 입자들은 다시 자연의 일부가 되었다.

그러니 할머니는 지구에, 행여 지구를 떠나더라도 우주에 남아계실테지.

그렇게 더 먼 곳에서, 그리고 더 넓은 곳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계실 것이다.


모든 절차가 마무리되고 집으로 돌아가면서, 장례식에 대해 생각해봤다.

언젠가 내가 세상을 떠날 때, 내 장례식은 어떤 모습이면 좋을까.

나 역시 내 장례식의 주연이 내가 아니었으면 좋겠다.

나와 가깝게 지내던 사람들이 서로를 위로하고, 그 중 나를 특별히 더 소중히 여기던 사람들에겐 더 큰 위로의 마음을 보내주고, 이미 떠나간 나에겐 가벼운 인사만 해도 충분할 것이다.

그래서 장례식이 남겨진 사람들을 위한 행사인 것 같다고, 내가 생각했나보다.


아마 할머니께서도 같은 마음으로 우리를 지켜보셨겠지.

삼가 故人의 명복을 빕니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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