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형의 중요성
인간에게는 사고와 감정의 균형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최근에 깨달았다.
살면서 그 어느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고 사고와 감정의 균형이 있다는 존재 자체를 모르고 살아왔다.
나는 사고 체계에 익숙한 가정환경에서 자랐다.
그러다 보니 책임과 의무가 먼저였고 감정의 존재 자체를 부정했거나 인지조차 하지 않으려고 했다.
감정을 드러내면 예민하다. 까칠하다. 그렇게 굴면 네 주위에 사람이 없을 거야.라는 소리를 매번 듣고 자란 나로서는 감정을 표현하기보다는 상황과 사람을 사고하여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쪽으로 발전해 왔다.
나는 내가 왜 우울증이 재발했는지 이유를 찾지 못해서 괴로워했다.
“지호야 결국 네 주위에는 사려 깊은 사람만 남을 거야.”
나는 처음에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알지 못했다.
‘응 그래 맞아. 내 주위에는 주로 사려 깊은 사람들이 많아.’
하지만 저 말의 뜻을 가슴깊이 이해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어느 순간 나는 내 주위에 남아 있는 사람들이 변경되기 시작했다고 느꼈다.
오랜 인연을 가진 사람들이 갑자기 달리 보이기 시작했고 나에게 무례하다고 느꼈다. 반면 예전 같으면 같이 있으면 불편하던 자신만의 호불호가 강한 사람들이 갑자기 불편하지 않고 ‘저 사람은 왜 저렇게 생각할까?, 저 사람은 왜 저렇게 말할까?’ 하는 궁금증이 생기기 시작했다.
사고 체계에 익숙한 나로서는 내가 먹고사는 일이 제일 중요했다. 그러다 보면 그 이외의 것들은 좋은 게 좋은 거지 큰일 아니고 중요한 일 아니니까 그냥 넘어가자는 식으로 처리할 때가 많았다.
그렇게 나에게 당면한 상황들을 일처럼 처리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나라는 사람은 사람들에게 잘 맞춰주는 사람. 항상 잘 웃는 사람. 불평불만이 없는 사람. 예민하지 않고 성격 좋은 사람. 이런 이미지의 내가 되어 있었다.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걸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데도 말이다.
그 순간 깨달았다.
‘아 내가 나를 잃었구나. 나라는 사람의 길을 잃었구나.’
진짜 배려심이 몸에 베이고 주위를 사려 깊게 보는 사람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말하지 않아도 나라는 사람을 관찰하고 지켜봐 준다는 사실을 알았다.
내 주위에 남아있는 사람들이 진짜로 사려 깊은 사람들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받아들이는 데까지 꽤 시간이 걸렸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면 우리의 오랜 인연을 부정하는 거 같았다. 내가 그들을 나쁜 사람들이라고 결론짓는 일 같이 느껴졌다.
하지만 내가 이 병에서 벗어나려면, 나아지려면, 정상이라는 원점으로 바로 서려면 현실을 마주해야만 했다.
내 주위에 모든 것들과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고요했다.
조용했고 편안했다.
그때 알았다.
나는 많은 것들을 짊어지고 있었구나. 이 짐 저 짐을 이고 지고 걸어가느라 많이 힘들었구나. 그런데 주위에서는 지금 너 도대체 왜 그러고 있냐고 말하고 있는구나. 아무도 나의 상태를 제대로 볼 생각을 하지 않는구나. 나를 위하는 일이라고 말하지만 그 어느 것 하나 진심으로 나를 위하는 일은 없구나. 결국 나 자신을 지키는 건 나 자신이구나.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미래의 내가 후회를 하든 미련을 가지든,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감정을 처리하는 일을 모른 척하지 말자. 소홀하지 말자. 순간순간 느껴지는 감정을 똑바로 마주하자.
그리고 이 모든 속도는 나만의 속도로 나아가자.
이 모든 사실을 나는 나와는 전혀 다른 가정환경에서 자란 어느 한 사람 덕분에 발견했고 나의 우울증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찾아가고 있는 중이다.
근데 참 인생사 아이러니 하게도 감정 체계에 익숙한 환경에서 자란 사람인 그 사람은 현재 나와 비슷한 상태라는 것이다.
감정 처리에 능숙한 그 사람을 보면서 잠깐 부러웠던 적도 있었다.
내가 가지지 못한 부분을 가진 거 같아서. 나랑은 다른 상태이고 상황인 거 같아서. 적어도 나보다는 건강해 보여서.
하지만 그 사람도 나와 같은 상태임을 알게 된 순간 아 결국 세상의 모든 일에는 균형이 중요한가 보다. 하고 결론을 짓게 되었다.
중요하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지만 너무 한쪽으로 치우치게 되는 건 건강한 상태가 아니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