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다. 그러면 핸드폰을 꺼내 셀카 모드라도 켜보자. 모두들 자신의 얼굴을 보고 있는가? 자, 이제 '활짝' 웃어보자. 활짝 웃는다는 표현이 구체적이지 않을 수 있는데, 조금 더 자세하게 표정 디렉팅을 주자면 광대 부분이 당길 때까지 웃어보자. 얼굴 표정 근육 중 웃을 때 사용되는 대표적인 근육인 'zygomaticus major muscle' 이 제대로 일하고 있다면 광대가 당기는 느낌이 들 것이다. 광대가 당겨서 미소가 풀리기 전에 얼른 거울 속 자신의 치아를 살펴보자. 급하다. 치아가 흰지 누런지, 치태가 얼마나 끼어있는지 그리고 어떤 치아 모서리 부분이 깨져있는지 눈에 속속히 들어오겠지만 그것들은 잠시 나중에 신경 쓰기로 하고, 위아래 앞니 정중선이 1자로 일치하는지 확인해보자. 일단 나는 아래 앞니 정중선이 위 앞니 정중선보다 왼쪽으로 1mm 정도 틀어져있다. 치의학에서는 이런 상황을 'midline deviation'이라고 표현한다. 한글로 번역하면 '정중선 편차' 정도로 될 것이다.
당신은 어떠한가? 위아래 앞니 정중선이 정확히 일치하는가? 사실 교정치료를 받거나, 앞니에 래미네이트 또는 크라운을 하지 않고서는 정중선이 일치하는 일은 드물다. 원내생 진료실에서 햇수로 2년 동안 진료 및 어시스트를 하며 교정치료, 래미네이트 또는 크라운 치료를 받지 않았는데 위아래 앞니 정중선이 정확히 일치하는 사람은 딱 한 명 봤다.
"그 환자분은 얼굴이 정확히 대칭이어서 정중선이 딱 맞는 거야?"
아니다. 치과치료를 받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마스크를 벗어야 하기에 그분의 얼굴을 몇십 번 봤지만 대칭적인 얼굴은 확실히 아니다. 그렇다면 어떤 이유로 정중선이 일치할 수 있었을까?
아이러니하게도 그분은 나의 틀니 환자였다.
잠시 과거로 돌아가 보자. 살면서 가장 먼저 뽑았던 치아가 어떤 것인지 기억나는가? 대부분은 초등학교 1학년 때쯤 아래턱 정중앙 앞니를 시작으로 이갈이를 했을 것이다. 첫 번째 치아들을 뽑은 후에, 턱뼈 안에는 두 번째 치아 씨앗이 들어 있어서 때가 되면 식물이 발아하듯 잇몸에서 자라 나온다. 이렇듯 치아가 계속 싹처럼 피어오르면 좋으련만, 성인이 된 이상 두 번째 이가 빠지면 세 번째 이는 발아가 아닌 묘목심기에 가까워진다. 농부가 삽으로 땅을 파고 묘목을 심듯, 치과의사 선생님이 무서운 드릴로 턱에 구멍을 뚫어 임플란트를 심어주시면 아마도 그것이 내 인생 세 번째 치아가 될 것이다.
여기에서 퀴즈! 만약 영구치가 빠지면 어떤 후폭풍이 일어날까? 밥을 잘 먹고 못 먹고의 문제를 떠나, 생각보다 일이 복잡해진다. 치과대학에 들어와서 공부하기 전까지는 나도 치아와 치아를 붙잡고 있는 잇몸뼈가 독립적인 존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둘은 서로가 없으면 살 수 없는 관계다. 밑의 그림을 보면 치아가 빠진 2단계부터 뒤로 갈수록 가로 폭이 먼저 좁아지고 높이가 낮아지며, 그렇게 잇몸뼈는 사라진다.
치아가 빠지면 2에서 6 순서로 잇몸뼈가 사라진다. (출처 : Atwood, Cawood & Howell 논문)
입술과 볼을 지지하던 치아와 잇몸뼈가 사라지게 되면, 그 부분은 움푹 주저앉게 되고 만다. 역시 밑의 그림에서 살펴볼 수 있듯 치아가 있는 상태 (a)에서는 앞 입술이 도톰하게 유지되지만 치아가 빠지고 잇몸뼈가 사라진 (b)에서는 입술이 혀 쪽으로 움푹 들어가게 된다. 한껏 부풀어 있다가 시간이 지나 바람이 빠져버린 풍선을 본 적 있는가? 딱 그 모습처럼 팽팽했던 입술에 바람이 빠진 듯 입가 주름이 깊어지고 많아져서 본래 나이보다 더 늙어 보이는 인상을 준다.
(a) 앞니가 입술을 지지하고 있는 상태 (b) 앞니가 빠져 입술이 주저앉은 상태 / 입가에 주름이 깊어지고 많아진다. (출처 : John I. Cawood 논문)
내가 속해 있는 치과 대학에서는 특정 기한 내에 최종 틀니를 만들어 환자에게 끼워 드려야 졸업할 수 있다. (참고로 틀니는 임시틀니와 최종 틀니로 나뉜다.) 틀니 치료는 환자를 구하기도, 치료하기도 모두 어렵다. 그래서 학교에서는 학생의 편의를 위해 틀니 환자가 매칭 시켜주며, 틀니를 전문으로 만드는 교수님과 함께 치료를 진행할 수도록 배려해준다. 나는 정말 운 좋게도 일찍이 여성 환자의 틀니 치료를 진행하게 되었다.
주위 동기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틀니를 만들러 온 환자들의 요구는 가지각색이다. 음식을 잘 씹고 싶다는 요청은 기본이고, 팔자주름을 펴고 싶다, 해골처럼 쏙 들어간 볼이 통통하게 하고 싶다 등 성형외과에서나 들을 법한 요청 사항이 넘친다. 나의 틀니 환자분은 입가주름이 너무 깊어 틀니로 이걸 좀 펼 수 있느냐고 조심스럽게 물으셨다. 원내생 진료실 틀니 치료는 농사처럼 치료 기간을 길게 잡기 때문에 치료 도중 환자들의 이탈률이 높다. 그렇기에 환자분에게 틀니 치료에 대한 동기부여는 필수다.
"환자분! 입가주름, 틀니로 제가 꼭 펴드릴게요!"
갓 만든 틀니를 착용한 환자는 거울을 볼 때 자신의 피부에 난 뾰루지, 눈썹 문신 밖으로 삐져나온 털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오직 틀니에 모든 포커스가 맞춰진다. 대표적인 체크 사항은 네 가지다. 1) 틀니 치아 색이 환자의 피부 톤과 맞는지 2) 위아래 앞니의 정중선은 일치하는지 3) 틀니가 높지 않은지 4) 어금니끼리 잘 맞물리는지를 살펴야 하고, 입가 주름이 펴지며 꺼진 볼이 통통 해져서 미모가 업그레이드 되는건 덤이다.
만약 1)과 2)만 만족하고 3)과 4)를 만족시키지 못하는 틀니는 예쁜 장식품으로 전락하고 만다. 마치 광나는 빨간 유선형 스포츠카에 네모난 타이어를 달아놓는 격이랄까? 이유를 간단히 설명해 보자면, 틀니 환자는 하안모 길이가 애매하다. '하안모'라 함은 코끝부터 턱끝을 이야기하는데, 어금니가 없는 틀니 환자들은 아래턱을 닫았을 때 물리지 않기 때문에 하안모 길이가 일정치 못하다. 따라서 치과의사가 환자에게 맞는 하안모 길이를 찾아줘야 한다. 만약 틀니가 높아서 하안모 길이가 너무 길면 어떻게 될까? 환자는 침을 삼키기 어려워하고, 시옷 발음도 못할 것이다. 앞니로 손가락 하나를 물고 침을 한 번 삼켜보시라. 더불어 '새색시'라는 발음까지 해보자.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지금까지 틀니가 왜 높으면 안 되는지 설명했는데, 이것에 비해서 위아래 틀니가 서로 잘 물려야 하는 건 지극히 당연한 소리다.
환자에게 틀니가 잘 맞는지는 최종 완성되기 전에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말랑한 쿠키 반죽을 구우면 단단한 쿠키가 되듯, 틀니도 수정 가능한 반죽 같은 상태에서 높은 열이 가해져 단단해진다. 아래 사진처럼 핑크색 왁스에 틀니 치아를 심어 환자에게 껴보는 과정을 거치며 틀니로서 갖춰야 할 덕목들을 체크한다. (노란색은 잇몸과 딱 붙어 핑크색 왁스를 지탱해주는 플라스틱이다.) 만약 기능적으로 문제가 있거나, 환자의 요구사항이 있다면 왁스를 뜨겁게 달궈 틀니 치아를 이동시킨다.
쿠키 반죽에 내가 원하는 위치에 초코칩을 심어 두고 구우면 그 이후로는 초코칩 위치를 수정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핑크색 왁스에 심긴 치아는 옮길 수 있어도, 높은 열에 구우진 틀니는 치아의 위치를 수정할 수 없다.
핑크색 왁스 안에 틀니 치아가 심겨 있다. 왁스에 열을 가하면 틀니 치아를 자유롭게 이동시킬 수 있다. (출처: Si-Eun Lee 논문)
입가 주름을 펴고 싶다는 환자에게 핑크색 왁스 틀니를 껴드리고 정중선과 높이 그리고 어금니가 잘 맞물리는지 확인한다. 물론 입가주름이 싹 사라져 10년은 젊어 보인다는 립서비스도 잊지 않는다. 이렇게 그 틀니는 구워졌고 일주일 후 대망의 틀니 전달식이 찾아왔다. 영롱하게 구워져 온 틀니를 환자분께 껴드린 후 자신 있게 외친다.
"한번 어금니로 물어보세요!"
어젯밤 모기 때문에 잠을 설쳐서인지 몰라도 눈에 초점이 안 맞는 것 같다.
"다시 한번 어금니로 물어보실게요!"'
방금 전에 언급했듯이 이미 구워져 나온 틀니에서 치아의 위치는 변경할 수 없다. 그런데 지금 말도 안 되는 일이 내 눈앞에서 벌어졌다. 아래 틀니 정중선이 윗 틀니 정중선보다 왼쪽으로 5mm 이상 틀어진 것이다. 치과 업계에 종사하지 않는 사람은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지 않다. 보통 일반인 정중앙 아래 앞니 가로 폭이 5-6mm 된다. 지금 치아 하나 크기만큼 틀니가 좌측으로 돌아간 것이다. 이건 비단 정중선이 맞지 않아 비심미적이라는 문제만 벌어진 게 아니다. 틀니가 물렁한 상태에서 어금니를 알맞게 맞물려놓고 앞니 정중선을 맞춰놨는데, 아래 틀니 정중선이 왼쪽으로 5mm 돌아갔다는 것은 뒤에 있는 어금니 역시 제대로 물리고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때부터 나의 손은 사시나무 떨듯 떨기 시작한다.
틀니에 대해 배우는 수업시간에 지금 나와 같은 사례를 본 적이 있다. 내 기억이 맞다면 이 상황에서 모범 답안은 틀니를 새롭게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이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원내생 진료실에서 틀니를 만드는 데는 최소 두 달이 걸린다.
"환자분, 틀니를 다시 만들어야 하니 두 달 동안 6번 정도 다시 내원하셔야 합니다."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환자와 쌓아온 라포가 깨지는 것을 물론이고, 멱살 잡힐 각오도 해야 한다. 사실 지금 심정으로는 졸업만 할 수 있다면 환자분께 멱살 정도는 시원하게 잡혀드릴 수 있다. 우리 학교는 2021.11.30까지 환자에게 틀니를 반드시 껴드려야 졸업할 수 있다. 오늘 날짜는 2021.09.11.이다. 현재 졸업까지 남은 시간은 두 달 반인데, 이 시간 동안 틀니를 완성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러다가 졸업 못하고 내년에도 치과의사가 아닌 학생으로 사는 건 아냐..?'
손은 계속 떨리고 머릿속은 한없이 복작해진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직 환자분께 틀니를 낀 모습을 거울로 보여드리지 않았다. 얼른 환자분께 이실직고하고 사과드리는 게 먼저일까? 지도해주시는 교수님을 호출해서 상황 보고를 해야 할까? 긴장한 나머지 두 손이 덜덜 떨리지만 정말 어떻게든 이 난관을 헤쳐나가야 한다. 마지막으로 틀니 상태를 확인하고 교수님께 이 상황에 대해 의논하러 가는 계획을 세운다.
"환자분, 교수님께 한 번 다녀오겠습니다. 그전에 다시 한번 어금니로 물어보세요!"
어랏? 아래 틀니 정중선이 아까보다 왼쪽으로 덜 돌아갔다. 내가 잘못 본건가 싶어 다시 한번 환자분에게 어금니로 물어보시라고 요청한다. 세 번째 확인할 때에는 기가 막히게 위아래 정중선이 일치한다. 꿈인 것 같다. 가끔 상황이 이리 변했다가 저리 변하는 그런 꿈 있지 않은가? 치과의자에서 누워계시던 환자분을 잠깐 앉혀드리고 생각에 잠긴다. 볼을 꼬집으면 꿈에서 깨어나 자취방 침대 위에 누워있을 것만 같지만, 치료용 장갑에 환자분 침이 잔뜩 묻어서 손으로 얼굴을 만질 염두는 못 낸다. 허공을 바라보고 곰곰이 생각해본다. 왜, 도대체 왜 이런 상황이 벌어졌을까?
아래턱을 오른쪽으로 틀어서 물어보자. 오른쪽 이들만 닿고 왼쪽 이들은 하나도 안 닿는 느낌이 들 것이다. 즉 내가 아래턱 위치를 잘못 설정했다는 감이 온다. 그런데 맞물리는 어금니가 빠져버린 틀니 환자는 어금니라는 랜드마크가 없으니 현재 자신의 턱 위치가 맞는지 도통 알 방도가 없다. 그래서 최종 틀니 전에 임시 틀니를 사용하며 아래턱 위치를 교육해 두지 않으면 턱이 앞으로 물렸다가 옆으로 물렸다가 때로는 뒤로도 물리는 불상사가 생긴다. 내 환자분은 최종 틀니를 끼워드리기 전에 몇 개월 임시로 사용하시라고 비교적 대강 만든 임시 틀니를 끼고 계셨다. 임시 틀니는 최종 틀니보다 불편하고 답답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임시 틀니를 끼고 있어야 아래턱이 일정하게 물려 최종 틀니에 쉽게 적응할 수 있다.
내 환자는 세 번 어금니로 물었을 때 전부 다르게 물렸다. 임시틀니를 최근에 빼고 지냈을 확률이 매우 높다.
"환자분 혹시 임시 틀니 최근에 잘 안 끼셨나요?"
"위 틀니를 끼면 입천장이 너무 답답해서 한 2~3주 빼고 지냈어요."
감격의 눈물이 쏟아질 것 같다. 양손으로 환자의 아래턱을 잡고 입을 열었다 닫았다 여러 번 반복하며 어떻게 물어야 하는지 5분 간 교육을 한다. 드디어 혼자 한번 물어보시라고 요청한다. 그 순간 아래턱이 닫히는 모습이 슬로우 비디오처럼 천천히 지나간다. 침을 꿀꺽 삼킨다.
맞다! 위아래 앞니 정중선이 딱 맞다. 어금니도 모두 잘 물리고, 입가 주름도 다리미로 핀 것처럼 싹 사라졌다. 이제는 자신 있게 손거울을 환자분께 드린다. 환자분은 손거울을 들고 이리저리 한참을 보시더니, 나를 바라보시고 활짝 웃으신다.
"너무 편하고 예쁜데요 선생님? 입가 주름도 싹 없어졌네요!"
그렇게 틀니 전달식을 마치고 손을 씻으러 화장실을 간다. 뒤돌아보면 9개월 동안 환자를 42번 불러서 임시 틀니와 최종 틀니를 끼워드렸다. 손을 비누로 깨끗이 씻으며 스스로 대견하다는 마음이 들어 얼굴에 잔잔한 미소가 번진다. 건조기로 손을 말리던 중 거울을 잠깐 보는데, 웬걸? 틀니 환자를 처음 받았을 때보다 얼굴에 주름이 늘어났다. 마치 환자의 주름들이 나에게 달라붙은 것 같다. 다음부터 틀니로 주름을 펴달라는 환자들에게 이렇게 말해야겠다.
"각종 주름, 제가 펴드릴게요! 어떻게 펴냐고요? 음... 제 얼굴 주름을 늘려서라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