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시작을 알리는 자연의 축제가 지나고, 한차례 소나기가 초여름을 밀어내면서 본격적인 더위를 예고한다. 뉴욕 동 북부 세인트로렌스 강을 가로지르는 천섬 다리는 미국 뉴욕주와 캐나다 온타리오 주를 연결하는 국경의 다리다. 다리를 건너자 바로 나오는 캐나다 령의 커피 라운지에서 글을 읽고 날이 좋아 맘이 동하면 한 시간을 더 달려 퀘백 주 몬트리올로 향했다. 프랑스어로 몽레알이라 부르는 몬트리올은 캐나다 제2의 도시로 세인트로렌스 강과 오타와 강이 합류하는 지점에 위치해 있고 세인트로렌스 강은 몬트리올과 유럽을 연결한다. 근무하는 곳이 황량한 뉴욕의 오지라 주말에 스타벅스에서 커피파도 마시려면 국경을 넘어야 했다. 어둠처럼 검은 커피가 하얀 크림을 담아 모카처럼 번지는 오묘한 색의 향연을 내려다보면 맛을 보기 전부터 사람을 설레게 하는 무언가가 있고 라테 거품은 마치 혼탁한 세상의 향수 짙은 구름 같다. 맞은편 자리의 네모난 유리 프레임 속에 비추어진 풍경은 나를 비추기도 하고 지나가는 멋진 프랑스풍의 여성들을 듬성 듬성 담아 내가 유리속 세계를 음미할 때마다 오히려 나를 축복했다. 실체로서가 아니라 차폐물을 통해 보이는 것들이 더 아름다워 보인다. 인생이란 어쩌면 하나의 창을 통해서 내다보는 편이 훨씬 아름다운 것인지도...
불어를 사용하는 캐나다 몬트리올은 도시 조차 프랑스를 닮았다. 압류 딱지를 규칙 없이 이곳저곳에 붙여 놓은 것 마냥 곳곳에 붙어 있는 캐나다 국기들은 비를 머금은 빨간 낙엽 처럼, 나름의 질서를 유지하며 캐나다를 애국한다. 단풍은 가을의 표정이자 몬트리올의 표정이다. 도시 전체가 프랑스 계몽주의 사상에 젖어 있다. 계몽주의자들은 이성에 의한 합리성보다 감각과 감성을 좋아하는 낭만주의라고 불린다. 프랑스를 닮았다는 것은 이성과 감각의 미묘한 조화와 개방적인 영혼의 자유로움에서 나오는 섹시함이다. 방송인 김제동씨는 자유의 의미를 ‘남의 시선이 아니라 자신만의 이유로 사는 것’이라 했다. 우리는 자유를 누림으로 발생하는 책임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면 방종할 수 있다. 그러나 사실 자유를 누림으로써 책임이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책임, 그 자체가 우리에게 자유를 선물한다. 다시 말해서 미래를 설계할 때, 책임질 수 있는 만큼 가능한 한 많은 일을 한다면, 그만큼 많은 자유가 다시 보상으로 돌아온다.
커피를 사고 계산을 하려는데 직원이 돈을 받지 않는다. 내 행색이 별로 인가? 그날 난 풀 정장을 했다. 왜 돈을 받지 않는가 물으니 그이 실룩이는 어깨가 말을 한다 “그럴 수도 있지. 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는 거야” 그 에피소드에 관한 친구의 해석은
“누구나 살면서 횡재를 꿈꾸잖아? 그분 능력에 한해서 작은 횡재의 기쁨을 너에게 주고 싶었던 건 아닐까? 너의 반응을 보면서 자신도 대리 만족하고 싶었던 거지. 정작 외롭고 따듯함이 필요했던 건 그 사람인 거야. 누구나 횡재를 하고 싶으면 먼저 횡재를 선물하면 돼. 그럼 머릿속 ‘거울 뉴런’이 일곱 명의 난쟁이들처럼 스스로를 행복하게 만드는 메커니즘으로 움직이거든. 옆에 아이가 울면 다른 아이들도 따라 울듯, 웃으면 이유 없이 따라 웃듯말이야, 이런 공감 능력은 남자들에게 많이 결핍이 되어 있지. 그게 백설 공주에게 한 명이 아닌 7명의 남자 난쟁이가 필요했던 이유야.”
관계라는 건 공감에서 시작된다. 내가 누군가를 터치할 때 누군가를 느끼지만, 그 누군가로 인해서 상대적으로 나의 존재를 인식하는 것, 그것이 관계와 공감의 시작이다. 우리가 존재한다는 것을 보아주는 사람이 나타날 때까지 사실상 우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구스타프 클림트는 그림을 그릴 때 모델에게 손을 얹었다고 한다. 붓으로 영혼까지 담을 수는 없지만, 분명한 건 손의 터치를 붓의 터치 이상으로 소중히 담았을 거라고 여겨진다. Touch는 ‘만지다’와 ‘감동하다’의 중의적 의미가 있다. 지금의 행복한 의사로서의 삶이 고난, 연단과 시련을 겪고 이루어졌듯, 모든 치유자는 상처 입은 사람이라 하지 않던가! 난 나 자신을 치유하고자 과거의 상처들과 싸웠고, 지금은 상처 입은 사람들을 치유하는데 나의 경험들을 항체로 사용중이다. Clayton M, Christensen은 ‘신이 내 인생을 평가하는 나와 관계를 맺은 한 사람, 한 사람이다’라고 말한다. 미국에선 공항에 마중 나온 사람의 직업에 따라 새 이민자의 직업이 결정된다고 한다. 유학할 때 심리적으로 지지하고 지원해주는 멘토를 만나는 것도 공짜 커피이상의 횡재다. 누구나 살면서 한 번씩 횡재를 꿈꾼다. 이 책이 누군가에게 작은 횡재이길 희망한다. 그 횡재를 선물한 나 또한 행복을 꿈꾸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