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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일 박 Sep 20. 2023

이쁘다는 말을 들으면 여자는 거울을 본다

사람이 사람에게 주고 받는 영향은 본인의 생각보다 훨씬 크다  


사람이 사람에게 주고 받는 영향은 본인의 생각보다 훨씬 크다  


평범함 속에서 향기 나는 꽃을 피우고 싶다면, 우린 도전해야 한다. 늘 좋은 도전만 있는 건 아니다. 내 최초의 도전은 하찮은 ‘담배’다. 담배라는 녀석에게 별명을 붙이자면 ‘하찮은’이 딱이다. 내가 ‘하찮은’을 처음 만난 건 고등학교 미술 선생님 때문이다. 선생님들은 모두 교무실에서 함깨 근무를 하시는데, 미술 선생님만 독립된 지하 화실이 따로 있었다. 그무렵 난 미혼이었던 샘의 새하얀 와이셔츠 칼라 안쪽으로 드러나는 목선과 쇄골에 빠져 있었다. 용기 내어 화실에 놀러 간 어느 날 커피를 마시고 계시던 샘의 가느다란 손가락 끝에는 지금 막 불을 붙인 듯해 보이는, 보통 남자들이 피우던 것보다 약간 슬림한 담배가 타고 있었다. 담뱃재가 테이블 위에 떨어졌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당시에는 선생님들의 실내 흡연이 자연스러운 시절이었지만, 여자 선생님이 담배를 피시던 모습이 적잖이 충격이었고, 왠지 일탈(?)을 한 여선생님이 멋져 보였다. 그녀의 미소는 언제나 옅은 색감의 먼 풍경을 닮았다. 그날 저녁 아버지의 담배 한 개비를 훔쳐 필통 속에 숨겨 두었던 녀석은 전혀 생각지도 못하게 나와 재회 했다.  다른 반 아이와 시비가 붙어 학교 옥상에 올라갔는데  상대 녀석이 싸울 생각은 않고 담배를 물었고, 나도 꿀리기 싫어 필통 속에 넣어 두었던 녀석을 꺼내 마치 예전부터 피워왔던 것처럼 기침을 참아가며 태웠다. 안개 낀 도로를 달리다가 안개가 스르륵 사라지는 느낌처럼 긴장감이 완화됨을 느꼈다. 그 후 그 못된 ‘하찮은’과 이별하는데 15년이 걸렸다. 마음이 상하거나 불안할 때, 담배가 의지가 되었으나 나중엔 담배를 태우지 않으면 불안해졌다. 담배를 끊기 위한 노력보다 담배를 끊을 수 없는 이유로 자신을 합리화하는데 에너지를 낭비했다. 담배를 끊는다는 건 원래 담배를 즐기지 않았던 본연의 자신으로 돌아가는 일이다. 또 다른 자신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힘들다. 필립 모리스는 자신들을 담배 파는 회사라 부르지 않고 니코틴 배달 회사로 부른다. 담배는 니코틴을 배달하기 위한 수단일뿐이었다. 니코틴은 중독성이 강한 화학 물인데 중독성 물질을 배달하면서 중독 고지 의무를 이행하지 않아 소송에서 일차적으로 패소했다. 미국에서는 심장 질환 사망률이 폐암 사망률 보다 높은데 맥도널드에서 파는 감자튀김에도 심혈관 질환에 위험할 수 있는 콜레스테롤에 대한 경고 문구를 고지해야 하는가라는 논리로 역공을 해 재심에서 일부 승소했다. 


그해 여름에 나는 담배를 배웠고, 사색을 배웠고, 영향을 받았다.


미술 선생님은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자신을 짝사랑하던 내가 자신 때문에 한때(?) 니코틴 중독이 되었다는 걸! 모든 일상의 사건들이 우리를 위해서만 일어나는 걸까? 사람이 사람에게 주는 영향은 본인이 상상하는 것, 그 이상이다. 최소한 여성분들은 알 거다. ‘예쁘다’는 소리를 들으면 거울을 보게 된다는 걸. 또 여성분들은 본질적으로 거짓말쟁이다 화장을 하지 않는가. 그 영향이 선한 영향이든 담배의 악취든, 어쨌든 우리 삶은 그런 영향들을 주고받으면서 이어진다. 나도 모르게 누군가의 감정이나 행복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해 여름에 나는 담배를 배웠고, 사색을 배웠고, 영향을 받았다. 그때 선생님이 피우시던 담배가 버지니아 슬림이라는 걸 나중에 알았다. 여자들은 대부분 그 담배를 피웠다. 사소한 것이라 할지라도 처음 대할 때의 낯섦은 아주 특별해 보인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우린 금방 그 낯섦에 익숙해진다. 치과 의사가 된 후 담배는 끊었으나 대신 인생의 ‘도전’을 끊지 못한다. 세상이 주는 선한 영향력의 맛에 중독되었다. 서성대면 어떤가 이방인 방관인 주변인이라 해도 우리는 여전히 도전함에 서성대야 한다. 그 해 여름에 난 영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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