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정리글-(2)
어릴 적부터 호기심은 나의 큰 자원이 되어주었다. 이 자원은 나에게 수많은 경험을 선물해 줬고, 나는 그 경험들을 기반으로 꾸준히 성장해 나갔다. 나에게 있어서 배움과 공부는 언제나 즐거운 것이었고, 그러기에 대학 입시 또한 스트레스를 받을지언정 다른 수험생들에 비해선 힘들지 않을 것이란 자신감이 있었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고, 그 생각이 얼마나 근거 없는 자신감이었는지를 뼈 저리게 느꼈다.
분명 궁금한 학문들이 많았던 나였고, 그만큼 다양한 책을 빌려 독학하는 것을 즐겼다. 그러나 같은 공간에 하루 종일 앉아 모의고사를 푸는 일상은 내게 작은 즐거움조차 주지 않았다. 슬슬 지쳐가는 나를 보며 실망감과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 나는 진짜로 공부를 좋아했던가, 아니면 공부로 이룬 성과에 대한 칭찬을 좋아했던가. 공부를 진심으로 좋아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점차 확신으로 굳어질 즈음, 몸과 마음은 이미 망가져 있었다. 그리고 결국 그 해에 입원만 세 번을 하게 되었다. 병실 침대에 앉아 수능 특강을 푸는 나를 보고 어른들은 안타까워하셨다. 그때는 그 이유를 깊게 고민할 만큼의 여유조차 없었다. 재수를 시작하며 뒤늦게 그 이유를 깨닫게 되었을 때, 절망감만 배가 되었다.
대학에 진학한 친구들은 행복하기보단 회의감을 느끼고 있다. 열심히 달려왔지만, 그 길이 한 방향으로만 나 있단 걸 알게 된 것이었다. 뒤로 돌아가기도 어려운 현실 앞에서, 그들은 더욱 지쳐 보였다. 한 명도 아니고 대부분의 친구들이 이러한 모습을 보이자, 나 역시 대학을 가고 싶은 마음이 점점 식어갔다.
내가 대학에 가고 싶었던 이유를 조용히 곱씹어봤다. 목표가 분명했지만 이상하게 간절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암기한 내용을 구두로 발표하듯, 그저 되뇌는 느낌이었다. 내 가장 큰 자원인 호기심은 끝내 빛을 잃었고, 그 순간 병동에서 어른들이 내게 보인 안쓰러운 눈빛이 떠올랐다.
어린 시절부터 열심히, 꾸준하게 공부를 했다.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아이러니한 건 과거의 내가 평생 궁금해 한 그 질문에 현재의 내가 해줄 수 있는 대답이 딱히 없다는 것이다. 나조차도 모르겠으니까. 무엇을 위해 그 어린 나이부터 행복을 느낄 새도 없이 지금껏 달려왔는지.
대학만 가면 행복해진다는 말은 잔혹한 거짓말 같다. 그렇다면 내가 재수를 해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 난 이제 어디로 가야 하는 걸까. 그저 과거의 나에게 한없이 미안해진다.
너의 미래가 이렇게 방황만으로 가득할 줄 몰랐어, 미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