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정리글-(1)
우리는 수많은 것들에 공포심을 느끼곤 한다. 폐쇄된 공간을 두려워하거나 혈흔을 두려워하는 등, 다양한 공포증들이 우리 곁에 존재한다. 나는 그중에서도 유난히 심해를 두려워한다.
학교에서 바다 관련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넓은 에메랄드 빛 바다의 풍경에 감탄을 하던 나는 어두컴컴한 심해의 모습이 화면에 비치는 순간, 숨 쉬는 방법을 잊었다. 죽을 것 같은 공포심과 함께, 비명을 지르고 싶은 욕구가 목 끝까지 차올랐다. 그날 나는 나의 내면에 심해 공포증이 자리 잡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심해의 모습도, 심해 속에 있는 물고기의 모습도 볼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모순적이게도 나는 고래를 매우 사랑했다. 심해 속 고래의 사진을 볼 수는 없지만, 내 무의식은 항상 고래와 함께 있는 나를 떠올렸다.
어느 날, 친한 언니와 함께 나의 이 모순적인 생각에 대해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소름이 끼치도록 놀라운 사실을 알아냈다.
나는 모르는 것에 대한 공포가 심한 사람이다. 정확히는 모르는 것이 나에게 끼칠 안 좋은 영향을 무서워하는 사람이다. 그러기에 타인을 대하는 것도, 미래를 그려보는 것도 나에게는 그저 두려웠다. 나는 모든 것을 미리 예측하고 대비할 수 있도록 평생을 노력해 온 사람이다.
언니와 대화를 하다가 심해가 미지의 세계라는 사실이 불현듯이 떠올랐다. 내가 심해를 몰라서 그것이 두려웠던 것이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연구와 분석 자료도 턱없이 부족한 심해는 사진으로 보기만 해도 나를 한순간에 덮칠 것만 같았다.
— 언니, 저는 그럼 왜 고래를 좋아할까요?
언니가 나에게 준 답변이 가장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 안정감이 있잖아. 덩치도 크고, 분위기가 평온하니까 의존할 수 있는 존재로 느낀 거 아닐까? 마치 엄마처럼 말이야.
맞다. 모르는 것 투성이인 심해 속의 고래는 내게 안정감을 주었다. 내가 심해의 두려움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 고래는 고요하고 차분하게 내 곁을 지켜주는 존재였다.
기댈 사람이 필요하다고 느낀 때가 많았다. 미지의 세계에 놓인 불안정한 나를 잡아줄 이를 애타게 찾았다. 하지만, 그 누구도 나의 기대를 충족해 줄 순 없었다. 나는 시간이 지날수록 나 스스로에게 기대는 방법을 배워나갔다.
고래는 결국 나 자신이었다. 아무도 완전히 믿고 의지할 수 없는, 그 무엇도 확실하게 예측할 수 없는 이 세상에서 나는 나를 매우 사랑한 것이었다. 평온한 분위기를 풍기는 안정감 있는 존재, 고래이자 나는, 나를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버팀목인 것이다.
언니와의 대화 끝에 난 많은 것들을 배웠다. 고래를 사랑하는 것은 나를 사랑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자기혐오에 빠졌다고 확신하며 살아온 나는, 사실 그 누구보다도 나를 사랑한다.
다양한 요소들이 내게 끼친 영향 덕분에 이 글이 탄생하게 되었다. <모든 삶은 흐른다>라는 책이 그 요소 중 하나이다. 이 책을 추천해 준 나의 소중한 친구 또한 그 요소에 포함되며, 나와 심오한 대화를 함께 해준 친한 언니도 마찬가지다. 나는 이 많은 요소들을 한데 모아, 나의 자아를 강화하는 동시에 그 모든 과정을 글로 표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