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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호 Jun 08. 2024

어디까지가

그냥일기


이번 낭독극으로 <종점 너머>라는 작품을 썼다. 별 내용은 아니고 종점을 지나친 남녀가 열차 안에 갇혀서 첫 차가 뜰 때까지 서로 시간을 보내는 내용이다.


작품의 착안이 됐던 건 작년에 만난 한 친구였다. 그는 종점 너머로 향하는 열차를 보며 말했다.


어디로 가는 걸까.


종점 다음으로 향하는 열차를 보며 그는 사색에 잠긴 듯했다. 나름 낭만 있는 말을 했다는 느낌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 분위기를 깨듯


다음 행으로 가겠지.


라고 했다. 낭만이라곤 1도 없는 T같은 대답이었다. 그는 자신의 분위기에 맞춰주지 않은 게 흠이라는 듯 말을 이었다.


아니- 그건 나도 아는데 마지막 다음에 뭔가가 없어도 열차는 가잖아!


듣고 보니 그런 것도 같았다. 그땐 차고지나 차량기지에 대해서 몰랐었지만 그럼에도 나는 이성만이 앞섰다. 


사람이 만든 건데 어디든 갈 곳이 있지 않을까.


나와 그는 INFP였다. 그렇지만 서로 좀 달랐다. 난 더 이성에 가까웠다. 그는 감성에 가까웠고. 뭐 어쨌든 종점 너머에 뭔가가 있을까 하며 쓴 작품이 그렇게 탄생했다. 사실 종점 다음엔 차량기지가 있다는 재미없는 사실만이 존재했다.


낭독극을 어제 첫 연습했다. 내 부족한 발성과 딕션에 마주하자 부끄럽고 무섭고 쪽팔렸다. 조연출은 나지막이 발성과 딕션 연습해오라고 했다. 할 말이 없었다. 뭐랄까, 단점과 직접 마주한다는 건 두려운 일이었다. 이걸 극복해야 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임이 분명한데도


종점을 향해 나아간다는 건 자신과 계속 마주하는 일 같았다. 입학이든 졸업이든 취업이든. 계속해서 나와 마주하고 그럴 때마다 주저하고 싶고 포기하고도 싶어질 때가 오겠지. 어디까지가 진짜 목표인지 종점인지도 모른 채 그냥 앞만 보고 달리면 종점이라 생각했던 적도 있었고


호주로 가고 싶어졌다. 탈선이 꿈인 열차마냥. 호주에 가서 쿼카랑 캥커루, 코알라를 보고 싶다. 세상의 중심이라고 불리는 언덕에 가서 울고도 싶다. 카메라도 없는 곳에서 영화 찍듯 혼자 감정을 분출하다가 주저앉고


그런 상상은 세상을 최대화시킨다. 내가 사는 세상이, 노원이, 서울이, 한국이 끝이 아니라는 걸 보여준다. 세상은 넓고 나는 작으니까. 사유는 쓸수록 넓어지는 건데 난 점점 닫혀만 가고 있었다. 이게 나이 먹는다는 증거는 아닐 텐데


어쩌면 종점은 죽음일지 모르고 혹은 행복하게 살기 이런 것일지 모른다. 이게 무슨 말이냐고 한다면, 나도 잘 모른다. 그냥 글이든 말이든 내뱉으면 뱉은 사람의 것이 아니게 된다. 이렇게 낙관적인 아니, 이기적인 사람이 글을 쓴다고 하니 문창과의 미래는 어두울 거다. 


밴드를 하는 형에게 전화가 왔다.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고 했다. 일주일도 만나지 않은 상태였던 거다. 그래서 나는 이것저것을 물어봤다. 만나는 사람이 문창과라고 했다. 어디선가 사이렌이 울리듯 경고음이 들리는 듯했다.


형, 혹시 시를 쓰진 않죠?

시 쓰는데..


음.. 뭐 둘이 좋다면 된 거지. 내 코가 석자인데 누가 누굴 신경 쓰겠는가. 난 두 달 만난 사람한테 사실상 이별 통보를 받았는데. 그래서 오늘은 집에 있는 인생네컷 사진들을 쓰레기통에 버렸다. 가야할 블로그 체험단 음식점 두 곳에겐 뭐라 말할까 고민했다. 누구랑 가지. 누가 연인을 기간제 베프라고 했는데, 친구가 없는 나에겐 그게 더 큰 의미로 다가오는 듯했다.


오랜 시간이 지나고 싶다. 어쩌면 시간을 돌이키고 싶은 걸지도. 뭐가 됐든 2024년도 반 년이 남은 상태다. 시간은 원숭이 나무 타듯 지나가서 가끔은 나무에서 떨어지는 실수를 바라는데


시간은 능숙한 탓인지 실수 한번 없이 빠르게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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