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일기
확실히 어제보단 포근해진 날씨 같다. 아닌가, 한파에 내 몸이 적응한 걸까.
당근에서 외장하드를 샀다. 5테라를 사고 싶었는데 마땅한 가격이 보이질 않았다.
10만원에 올린 사람을 발견했지만 연락을 받진 않았다.
급한 대로 2테라를 7만원에 샀다. 쓰고 나서 6만 5천원에 올려서 팔아야지 하는 생각으로.
간과한 게 많았다. 단편영화가 뚝딱, 하고 만들어지는 줄. 생각하니 그 많은 용량을 감당할 장비가 필요했다. 나의 경우, 부족했다. 내 노트북은 레노버에서 만든 사무용 노트북으로 용량이 256기가다. 지금 문서만으로도 이미 벅찬 내 노트북은, 사용 가능한 용량이 1기가도 남지 않은 상태다.
내 휴대폰이 256기가인 걸 생각하면 정말 낮은 용량이었다. 그래도 내 노트북의 가성비는 끝내줬다. 15.6인치라는 넓은 화면과 안정적인 가성비값. 내 대학 생활의 무게를 한결 낮춰준 무게까지.
그렇지만 내 소망과는 다르게 빠르게 늙어갔다. 부모가 자식을 기다려주지 않듯 레노버 노트북은 오른쪽 마우스 클릭이 고장 났다. 이 부분이 고장 날 수 있냐고 공대 친구가 놀라기도 했다. 고장 난 걸 뭘 어떡해 할 수는 없으니까 쓰고 있지만.. 영상을 감내하기엔 내 노트북은 준비가 되질 않았다.
4케이 영상을 틀자, 노트북에서 재생이 되질 않았다. 편집 감독 왈, 노트북 사양도 받춰줘야지 영상을 볼 수 있다고 했다. 몰랐다. 맥북 에어에 그 영상을 틀자, 잘 보였다. 아, 내 노트북은 정말 사무용이었구나.
그런 사무용 노트북에게 미안한 얘기지만 난 롤을 깔았다. 롤을 한 판 돌리자 발열된 노트북이 느껴졌다. 삭제했다. 두 판 돌렸다간 노트북이 끓는점을 돌파할 것 같았다.
다빈치 리졸브를 깔았다. 간단한 컷 편집을 하는데 발열됨이 느껴졌다. 이내 렉이 걸렸다. 다빈치 리졸브는 삭제하진 않았지만 그 후론 열어보지도 않았다. 그래서 휴대폰의 캡컷을 깔았다. 휴대폰 편집은 문제가 없었으니까.
단편영화를 촬영하는 동안 조연출의 맥북 에어를 빌렸다. 맥북은 나에게 새로운 것 투성이였다. 모르는 것 투성이였고 익숙하지 않음이 불편하게 다가오기도 했다. 그럼에도 느꼈던 건 좋은 거라는 막연한 느낌. 내 노트북과 비슷한 무게이지만 사양은 비교가 안 되었으니까.
충전은 오래 갔고. 어쩐지 자꾸만 좋게 보였다. 맥북..
편집 감독 댁에 갔을 때도 맥북이 보였다. 색보정 해주는 친구의 노트북도 맥북처럼 보였고.
어딜 가든 사과 로고가 박혀 있었다. 흠, 카페를 가도 사과가 그려진 하얀 노트북이 먼저 눈에 들어왔고.
나는 아직 한글 문서가 익숙하고 워드는 싫었다. 한글로 만들고 피디에프로 만들어주고 말지 워드로 만들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나의 이 쇄국 정책은 오만했다. 생성형 인공지능 시대가 도래하자 영어는 기본, 구글과 디스코드 아이디가 필요했다. 네이버는 필요가 없어져 갔다.
한국형 생성형 인공지능 '뤼튼'을 사용했을 땐 놀라웠다. 드디어, 한국판 챗지피티구나. 한국에서 만들어서 그런지 한국어가 잘 호환되는 듯했다. 그렇지만 자꾸만 정보의 신빙성이 없었다. 그건 모든 인공지능의 문제이긴 하지만, 인터넷에서 정보를 찾는 툴이기에 하릴없는 한계점이었다.
어제 만난 한예종 사람의 노트북에도 사과 로고가 있었던 것 같다. 작업실도 있고. 좋아 보였다. 영상하는 사람들은 대게 풍족함이 많아 보였다. 고가의 장비를 다루는 직업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색보정 하는 친구가 내게 그랬다. 외장하드 그거 얼마 안 한다고.
얼마 안 한다는 외장하드였지만 난 그 돈에도 벌벌 떨어야 했다. 새 거는 엄두가 안 나서 당근을 찾고. 그래도 다나와도 한 번 보고. 5테라를 18만원에 올리는 외장하드 글과 10만원에 올리는 글 사이엔 망설임 없이 후자에 연락을 먼저 했다.
며칠 전 군대 후임에게 연락 왔다. 전역하고 처음이었다. 그러니까 약 5년 만이랄까.
사실 그 후임의 일화를 선임에게 들었다. 최근 그 친구에게 연락 왔다는 선임의 말을 빌리자면, 자신이 종합건설회사에서 일 하는데 부동산 정보도 얻고 선물도 받아 가라는 거였다. 즉, 다단계처럼 보였다.
후임의 디엠은 명료했다. 형, 잘 지내시죠?
무슨 일 하고 계신가요?
그러자 내가 백수라고 답장했다.
그러자 그 친구는, 일 안 하세요? 라고 했다. 그 말이 찔려서 답장을 보내질 않았다. 다단계도 백수는 가리는구나. 묘하게 기분이 나빠졌다.
인스타가 공개 계정이라 고민했다. 이래서 비공개를 하는 걸까. 그런데 난 비공개로 돌릴 수가 없었다. 흠, 만인에게 공개된 삶은 이런 걸까. 그런데 내 계정을 어떻게 알았을까 싶었다.
2-3년 전에는 후임의 친구에게 연락 왔었다. 후임의 친구에게선 어떻게 연락이 닿게 되었는지 나도 신기할 뿐이다. 요지는 후임의 군생활에 대해서 알려달라는 거였다. 답장할 필요가 없는 것 같아 차단했다.
군생활, 군대가 뭐라고. 최근에 중앙대 졸업작품인 '용서받지 못한 자'를 봤다. 하정우 배우의 출연으로도 유명한 작품이기도 한데. 그 작품은 군대 이야기였다. 거의 2시간에 임박하는 장편이었는데 앉은 자리에서 결말까지 보고 말 만큼 흡입력이 대단했다. 대부분의 테이크가 롱테이크였고 샷은 간단했다. 그렇지만 몰입감이 엄청났다. 하정우 배우가 맡은 역도 공감 갔고 특히 주인공에 너무 매료되었다. 내 군 시절 모습이 자꾸만 투영되어서 그랬던 것 같다.
최근 네이버 웹툰에서도 재밌게 보고 있는 작품은 <동반 입대>다. 몰입감이 장난 아니었다.
왜 남자들이 자꾸만 군대 얘기를 꺼내는지 알 것만 같았다. 특수성과 보편성을 동시에 지닌 사기적인 소재니까. 그때의 이야기를 들으면 자꾸만 과거가 떠오른다. 내 군 시절과 비교하게 되고.
남자들이 많은 집단에 가면 만만한 게 군대 얘기기도 하다. 누군 어딜 나왔고 무슨 보직이었고. 나는 그 사이에 가면 별 얘기를 하질 않는다. 공군이라고 하면 보는 시각이 있기 때문이다. 솔직히 힘들다, 편했다 이것도 잘 모르겠다. 다른 군대를 내가 가보질 않았기에 비교 대상이 없다.
그렇기에 어린 친구들을 만날 때면 당혹스럽다. 공군 편해요?
어..음.. 뭐.. 글쎄?
이렇게 대답할 순 없기에 한 가지 정의를 내렸다. 자격증 있으면 편할 거다.
뭐, 안 편할 수도 있는데 근데 거기까진 나도 모르는 영역이니까. 결국 어쨌든 사회와의 단절은 20대 초반에 크게 다가오는 현실이니까.
뭐, 군대 얘기를 하려던 건 아니고. 그냥 그렇다고. 도서관에선 역시 시간 떼우기가 최고다. 이렇게 낭비한 시간만 해도 3열 종대로 연병장을 가득 채울 수 있을 것 같단 생각이 드는데
이쯤에서 끝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