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씩

그냥 일기

by 수호


9월이 시작되고 개강했다. 개강했다고 크게 삶이 변한 건 없다. 다만 학교는 활기가 돌았고 캠퍼스 안에는 많은 학생들이 보였다. 남자 학생들의 바지는 대부분 버뮤다, 유행을 실감하는 건 대학교 안인 것 같았다.


전보다 확실히 덜 더운 듯했고 저녁에는 선선한 날시가 느껴지기까지 한다.


일요일인 오늘은 학원에서 보강 수업을 진행했다. 오전에 학원으로 가서 문을 연 다음 수업을 하는 평범한 하루였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 자전거 바퀴에 바람을 넣었다. 바람을 넣고 돌아오는 길에 어떤 청년이 내게 말을 걸었다.


어, 기범아!

?


자전거를 멈춰세우고 나를 부른 사람을 쳐다봤다. 어?

성훈이?


사실 친한 사이냐고 묻는다면 글쎄, 같은 고등학교를 나왔고 기숙사 생활도 했었지만 당시의 나는 친구가 많지 않았다. 기숙사에서 1년 정도 생활했지만 기숙사 친구들과는 거의 친하질 않았다. 그럼에도 다시 만난 친구는 반가웠다. 졸업 후 한 번도 못 본 듯한데 거의 7년도 더 넘은 것 같았다.


그는 육사 쪽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고 그래서 나와 마주쳤다. 시시콜콜한 얘기를 잠깐 나누고 번호를 교환한 뒤 헤어졌다. 뭐랄까, 고등학생 때와는 달리 확실히 어른스러웠다.


반면 나는 어떨까. 어떻게 보였을까. 고등학생 때랑 생긴 것도 비슷한 지금의 나는 여전히 애처럼 보이진 않을까 했다. 그 친구는 내게


아직 연기하냐고 물었다.


그 순간엔 웃으면서 잘 대답했지만 집에 돌아오자 생각이 많아졌다. 여전히 난 연기하냐는 질문을 부담스러워하는 것 같았다. 여전히, 아직,


나는 여전히 그리고 아직 하고 있는 걸까. 사실 이젠 잘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다른 일을 하면 할수록 멀어지는 느낌도 강하다. 이제는 사회생활을 할 나이인지라, 나도 모르게 어디 가서는 학원 강사라고 얘기한다. 틀린 말은 아닌데 근데 난 여전히 알바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그래도 학원 강사라고 하면 사람들이 나쁘게 보질 않는다. 의외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그래도 나름 번번한 직업인지라 내세우기도 좋다. 거짓말도 아니고.


아는 형이 카톡이 왔다. 삶의 의지가 없다고 한다. 영화를 찍으려고 투잡까지 하며 일하는 형인데 안타까울 뿐이다. 삶에서 목표를 잃어버리면 정말 헤매게 되는 것 같다. 사실 나도 비슷한 입장 같아서 크게 할 말은 없었다. 목표를 성취했을 때 우리는 성취감을 얻는데


요즘은 휴대폰으로 쉽게 가짜 성취감을 얻을 수 있다. 도파민이 분비되는 많은 콘텐츠들은 가짜 성취감을 안겨준다. 생각하는 힘을 자꾸만 뺏어가고.


생각하는 힘에서 삶의 의지까지 이어지는 걸까. 사실 잘 모르겠다. 모르겠는 게 여전히 투성이지만 맛있는 걸 먹어야 한다는 생각은 변함 없다. 토요일엔 육개장 집을 갔다. 육개장이길래 사실 안 갔던 가게였는데 사람들 사이에서 은근 입소문이 탄 곳 같았다.


토요일 저녁, 가게 안엔 아는 얼굴이 있었다. 도서관 사서 쌤. 짧은 인사를 나눴다. 나도 이제 동네 주민이 된 기분이었다.


육개장은 진했다. 자꾸 생각나는 맛은 아니었고 굉장히 걸쭉하고 진해서 놀랐던 기억만 난다. 가격은 착했고 조리 시간은 좀 걸렸다. 나밖에 손님이 없어서 마감 시간에 내가 찾아온 건 아닐까 싶었다. 그게 의식되었는지 가게 주인은 천천히 먹으라고 했다. 주인은 경상도 사람으로 보였다.


먹고 가게를 나오자 재료 마감이라는 문구가 문에 걸려 있었다. 내가 막타쳤구나.


토요일엔 사실 전시회도 보러 갔다. 아도이의 앨범 커버에 그려진 그 그림을 그린 작가였다. 전시 주제는 생각보다 재밌었고 이해가 됐다. 복제에 대한 경각심이었다. 그런데 롯데월드몰에 있는 롯데뮤지엄이어서 그런지 사람들이 많았다. 무엇보다 사진 찍기 급급한 사람들 사이에서 난 자꾸만 카메라를 피해 다녔다.


전시회를 보고 롯데월드몰이나 구경할까 했는데 사람이 정말 많았다. 역시 토요일. 나는 흐앤므를 즐겨 가는데 닫겨 있었다. 흐앤므, 무인양품, 유니클로는 매장 안에서도 약간 떨이 같은 게 있는데 그걸 난 주로 즐겨 보는 것 같았다. 물론 그런 떨이는 상품이 다소 아쉬운 것 투성이긴 하다.


무인양품도 굉장히 매장이 넓었고 말로만 듣던 무지 라보가 있었다. 무탠다드도 입점했고.


별거 아닌 글이라도 이렇게 끄적이면 기분이 좀 나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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