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의 마지막에

그냥 일기

by 수호


8월의 마지막 날을 보내고 있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무더위도 조금씩은 수그러들 것만 같은 기분이고.


귀멸의 칼날을 보고 왔다. 작화에 놀랐고 애니메이션은 역시 일본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케데헌과 비교했을 때 작화는 정말 비교가 안 되는 수준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귀칼을 볼 생각은 없었다. 촬영이 일찍 끝나기도 했고 급하게 당근에서 5000원에 산 표였기 때문이다.


귀멸의 칼날을 보면서 자꾸만 마음을 건드는 건 가난이었다. 영화 속 빌런은 세상이 만든 존재였다. 조커처럼 세상이 그를 그렇게 만든 거였고 가난한 그에겐 자꾸만 시련이 닥쳐왔다.


가난에 대해서 생각하게 됐다. 이근화 교수님의 수필을 보면 청년 가난에 대해 쉽게 표기한 부분이 나온다. 음식점에 들어가서 가장 싼 메뉴를 시키는 것.


물론 글의 앞뒤 부분을 자르고 이렇게 얘기하는 건 오해가 생길 수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그 부분만 본다면 난 가난한 거였다. 음식점에서 가장 싼 메뉴를 먼저 보고 시키는 것, 그건 나에게 습관과 같은 거였다. 그렇다면 가난은 습관 같은 거였다. 습관적인 가난은 자꾸만 가난해지게 만드는 거였고


습관은 쉽게 고칠 수 없는 거였다. 난 아마 앞으로도 무언가 추가된 돈까스가 아닌 그냥 돈까스를 시킬 것 같았다. 그런데 그게 어떻게 가난이지?


가정이 가난한 아이들에겐 자꾸만 주변에서 나쁜 손길이 다가온다고 한다. 나쁜 유혹도 유혹인지라 쉽게 거절하기 어렵다고 한다. 그렇게 가난한 아이는 자꾸만 나쁜 길에 쉽게 빠지고 습관이 되어간다고


서울에 자가가 있고 대기업에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라는 네이버 웹툰을 봤다. 그곳엔 이런 대사가 나온다. 가난하게 태어난 건 죄가 아니지만 가난을 물려주는 건 죄가 되는 세상이라고. 어디 수필에서도 이런 걸 본 것 같다. 분명 교수님 시절에만 해도 가난했던 집에서 성공하면 대단하다고 평가했던 시대 같은데 지금은 가난하면 그냥 가난한 거라고.


개천에서 용 난다라는 말을 우리 학원의 중학생들은 모른다. 개천이 뭔지도 모르고 그곳에서 왜 용이 나오는지도 모르기도 한다. 예시를 들어도 쉽게 이해가 되질 않고 공감하질 못하는 표정을 짓는다. 일례로 이명박 전 대통령은 야간 대학에 다니며 낮에는 주유소 알바를 했다고 들었다(사실 다른 사람이랑 착각하는 걸 수도 있다). 그렇게 가난하게 자라서 공부해서 대통령이 되는 것, 그때 신문의 헤드라인은 개천에서 용 난다였던 것 같다.


귀멸의 칼날에선 주인공 탄지로가 굳건하게 외치는 게 있다. 그 말을 내 방식대로 조립하면, 인간은 나약하지만 숭고할 수 있다는 것. 혈귀가 되지 않고 인간에 머무른다는 건 강함을 포기하는 게 아닌 인간이기에 숭고함을 선택한다는 것, 유한한 인생에서 상처를 입으면 회복도 더디고 언제든 죽음에 처할 수 있지만 그렇기에 인간이라는 것. 인간은 갓난아기 시절이 있었고 누구보다 약했던 시절이 있었고 누군가의 보살핌을 필요로 했고 그것을 알기에 자기보다 약한 사람을 돕고 보살필 수 있다는 것, 그 모든 것은 혈귀와 다르게 인간은 약하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귀멸의 칼날- 무한성을 보면서 하염없이 운 것 같았다. 내 옆에는 아빠와 아들로 보이는 부자 관계 관객이었는데 아들은 팝콘과 콜라에만 관심 있어 보였다. 나는 눈물을 들키지 않고 싶었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그 아들은 팝콘을 우적우적 먹었다.


인간은 약한 존재, 그렇기에 서로서로가 힘을 합쳐서 살아가야 하는 사회를 만든 것.


네이버 웹툰의 김부장 이야기를 정주행했다. 제목만 보면 별 생각 안 드는 이야기였는데 상당히 잘 뽑은 만화였다. 인생에 대해서 다양한 캐릭터들을 보여주며 알려준다. 어떤 캐릭터의 삶이 옳냐가 아니다. 그들은 각자의 선택으로 각자의 인생을 살지만, 우리에게 좋은 본보기임은 확실하다. 모두가 원하는 대기업에 다니는 네 명의 회사원을 통해 우리의 인생이 항상 선택의 연속임을 알려준다.


그리고 그 선택은 결국 혼자서 할 수 없음을 시사하고


귀멸의 칼날에서도 충주는 혼자서 상현과 싸우다 죽는다. 압도적인 힘의 차이에 굴복한 것이다. 그리고 충주의 의지를 잇는 것처럼 또 한 명의 제자가 나타나 싸움을 이어간다.

반면 탄지로가 상현을 쓰러뜨릴 수 있던 건 수주와 함께 싸웠기 때문이다. 직접적인 싸움은 수주와 함께했지만 간접적인 싸움엔 아빠가 있었다. 내비치는 세계, 무아의 경지,


12시간 동안 춤을 춘다는 건 이성으로 할 수 없는 것이다. 그야말로 무아의 경지이자 자신도 모르는 어떠한 세계다. 나는 최고의 경지가 무아라고 생각한다. 어떤 배우에게 기자가 물은 적 있다. 어떻게 그렇게 연기 가능하냐고 했다. 실핏줄 터지고 막.


그러자 배우는 아무렇지 않게 대답한다. 그냥 그렇게 돼요.

난 이게 무아의 경지라고 생각한다. 어떤 잡념도 없는 오롯이 한 곳에만 집중하게 되는 순간, 그 순간은 그 어떤 호흡도 의미가 없다. 코로 호흡하는 게 아닌 세계와 호흡하는 듯한 느낌이니까.


다들 유료화되기 전에 이 만화를 꼭 봤으면 좋겠다.


https://m.comic.naver.com/webtoon/list?titleId=819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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