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열차 안에서 글을 쓴다

그냥 일기

by 수호


열차 안에서 글을 쓰는 건 하나의 루틴이 되었다. 그런데 이번엔 바닥에서 하고 있다. 입석인 터라 한쪽 구석을 찾아서 앉은 채 노트북을 두들기는 중이다. 맞은 편엔 한 여성이 있었는데 내가 앉는 걸 보더니 같이 앉기 시작했다. 앉고 싶은데 눈치를 보고 있던 터일까.


바닥이 차가운 거 빼곤 괜찮다. 아, 지나가는 아이들이 뚫어져라 쳐다본다는 것 정도? 어른들은 신경 안 쓰는데 아이들은 되게 신기한가 보다.


요즘엔 이것저것 할 일이 많다. 글을 써야 하고 마감해야 할 글이 두 개나 있고 작업하는 것도 있다. 써야하는 글 때문에 미팅도 여러 번 했다. 덕분에 학교, 학원, 집 일상에서 제작사 사무실이 하나 추가 되었다.


학교에선 편집실을 계속 출석하는 중인데 밤 11시가 넘어가면 경비 아저씨가 오는 터라 그 전에 나가야 한다. 밤샘 작업은 막아줘서 너무 감사하지만 자꾸 중요할 때마다 일이 끊긴다. 하하 ㅜ


ktx를 타면서 승차권 확인은 오랜만에 하게 되었다. 입석이라 그런가.


무릎으로 노트북을 받치고 앉은 채 노트북을 두들기는데 손목이 아프다. 흠, 이거 별론가. 하긴 건강한 자세는 아닌 것 같긴 하다. 최근에 AI로 계속 영상을 만드는 작업을 진행 중이었는데 10일까지인 영화제를 놓쳤다. 실컷 만들어놓곤 이런 실수를 하다니, 정신이 어디로 간 걸까.


설 연휴를 앞둔 오늘은 미세먼지가 심하다. 300 정도 되는 수치였다. 내가 인도의 뉴델리에서 본 게 450이니 우리도 많이 따라온 걸까. 이런 건 좀 별론데.


여러 일을 하다 보면 뭐랄까, 진짜 신경을 놓을 때가 있다. 그런 걸 보통 까 먹는다고 표현하긴 하는 것 같은데, 내가 인지하고 있다는 사실도 잊고 있을 때가 있다. 그리고 스트레스가 확실히 많이 쌓이는 것 같다. 오늘만 해도 새벽 2시 반에 잠들어서 7시 30분에 일어났다. 모르겠다. 잠들 때 머리가 지끈지끈했던 것 같다. 너무 많은 것에 신경 쓰면 잠도 제대로 못 자는 것 같다.


원래 청량리역에 조금 일찍 도착해 베트남식당을 가려고 했다. 그런데 뭔가 시간도 애매하고 짐도 있어서 그냥 역사에 있는 홍대개미를 갔다. 홍대개미는 일식 메뉴를 파는 곳이었는데 양이 적은 것 빼곤 괜찮았다. 스테이크동을 시켰고 가격은 13000원 정도 했던 것 같다.


주말이라 그런가 롯데 백화점에도 역사에도 사람이 정말 많았다. 사실 버스를 타고 오는 길에도 사람이 너무 많긴 했다. 그렇군, 설이 맞긴 하군.


설이라고 솔직히 뭐 다를 거나 특별할 건 없긴 하다. 더욱이 작업할 글이 있다는 건 머리가 아픈 일이다. 하나는 숏폼이고 하나는 장편 시나리오다. 숏폼도 50부작이라 사실 그냥 장편 두 개를 하는 중이다.


제작사와 어제 급하게 미팅을 했다. 영진위에서 이번에 AI부문 지원사업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제작사와 또 다른 제작사가 테이블에 앉아서 미팅 중이었다. 나는 중간에 앉아, 난 왜 불렀지 생각하고 있었다. 나에게 보내준 기획안은 솔직히 말해 형편 없었다. 전문 제작사가 이런 기획안을 쓰나 싶을 정도로. 대학생들이 해도 이것보단 잘 하지 않을까 싶기도 했는데


AI를 다룰 줄 아는 연출을 원한다는 서로의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정확하게는 서로의 제작사와 밀접한 연출을 원했다. 아무래도 연출이 가장 중요해서 저러는 걸까. 그런데 얘기 도중 나로 화살이 넘어왔다. AI로 두 편 했고 실사로도 단편 연출했으니, 나를 추천하는 거였다. 어, 좀 갑작스러웠는데


그 의견을 듣는 다른 제작사의 반응이 누가 봐도 좋지 않았다. 나를 보는 눈빛에선 저런 대학생한테? 라는 느낌을 받았다. 동안인 게 이럴 땐 힘들다.


갑작스레 2억 짜리 작품의 연출이라니, 물론 지원사업이기 때문에 당첨되어야 유의미한 이야기를 오갈 수 있긴 하다. 근데 뭐, 모르겠다.


이게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걸까. 아닌가 어부지리인가. 아닌가, 처음부터 제작사는 이걸 위해서 날 불렀나.


끝나곤 중국집에 저녁을 먹으러 갔다. 제작사 대표가 사주었는데 그 식당은 오징어게임2를 찍었던 곳이었다. 진짜 손님이 하나도 없어서 당황스러웠던 곳이었다. 금요일 저녁에 아무도 없다니, 그래도 배달은 계속 나가고 있었다. 가격도 착하고 맛은 얼큰했다.


잡채밥을 그날 처음으로 한입 얻어 먹었는데 신기한 맛이었다. 내가 생각한 잡채랑 맛이 은근 달랐다. 이래서 사 먹는구나.


평화롭다. 한낮의 열차 안은 무척이나 평화롭다. 사람들은 조용하게 각자 휴대폰을 보는 것 같았다. 진짜 기차의 소음 말고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사실 어제 저녁 7시 열차를 타려고 예약도 마친 상황이었다. 그런데 급한 미팅과 끝나지 않은 일처리 때문에 취소했다. 21,000원 짜리 기차표인데 수수료가 4600원이라니. 하, 그래도 다음 날 14시에 열차가 떠서 다행이었다. 아니었으면 진짜...


미팅이 끝나고 학교로 돌아가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생성형 인공지능을 통한 영상 만들기엔 분명 나 포함 4명이 한 팀인데, 왜 나 혼자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지. 그리고 무엇보다 영상에 대한 의구심이 자꾸 남았다. 이게 어딘가에서 유의미한 결과물이 될 수 있을까. 유의미한 결과물이 된다는 게 꼭 수상만을 의미하는 건 아니지만 그런 쪽에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음이 스스로도 안타까웠다.


그렇게 11:20-30분 정도가 되었을 때 나는 경비 아저씨가 올 것을 예감해 급하게 컴퓨터를 껐다. 불을 끄고 나가는 중 경비 아저씨와 눈이 마주쳤다.


그러고 오늘 오전에 다시 편집실로 가서 마무리를 했다. 아쉬움이 남았다. 영상 자체의 문제도 있겠지만 근본적으로 작품 자체의 내용을 수정해야 할 필요를 느꼈다.


영화는 혼자 작업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런데 생성형 인공지능의 도입으로 영화를 혼자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같다. 물론 가능이야 하겠지만... 우리가 피라미드를 사람이 지을 수 있을 수 있다고 매번 피라미드를 짓지는 않지 않는가.


제작사와의 미팅에서도 그걸 느꼈다. 물론 지원사업이긴 한데, 만약 이게 정말로 된다면 만들어야 하잖아. 근데 80분 짜리 AI영화를? 벌써 피로하다. 그리고 그걸 진행한다는 것도 아득하다.


학교 연구팀에서 그래도 계속 정보를 줏어 들은 보람이 있었다. 생각보다 우리 연구팀의 정보가 최신이구나. 여기 제작사들의 대화는 뭐랄까, 이미 우리 연구팀에서 다룬 이야기들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실천은 역시 제작사에서 먼저 옮기는구나.


곧 제천에 도착하는 열차, 그때부턴 나도 앉아서 갈 수 있다. 사실 바닥도 생각만큼 나쁘진 않다. 겨울이어옫 실내는 따뜻하다 못해 더울 때가 있는데 열차 안이 좀 그런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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