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일기
2025년 12월 29일 아침을 맞이했다. 씻고 숙소를 나오니 해가 정말 쨍쨍했다. 벨보이는 아침부터 마당 곳곳에 물을 뿌리고 있었다. 뭔가 평화로웠다.
뭐랄까, 나는 시골을 좋아한다기보다는 조용한 걸 좋아한다. 그래서 29일에 맞은 아침은 신기했다. 어쨌든 그 동안 겪은 인도의 아침은 항상 사람이 있었다. 호텔에서 머물러서 당연한 얘기이겠지만 근처엔 도로가 있었고 조금만 나가면 사람들이 가득했다.
여긴 정말 시골이었다. 영화제에 참석하기 전에 엘로라 석굴을 오전에 가려고 했다. 다소 거리가 멀었기에 왕복으로 운전해줄 기사가 필요했다. 숙소 관리인이 한 아저씨를 불러줬고 릭샤 운전사가 왔다. 그런데 관리인과 무슨 얘기를 했는지 릭샤 운전사는 돌아갔다. 관리인은 택시를 잡아주겠다고 했다. 릭샤로는 힘들 거라고 했다. 사정을 잘 모르니 나는 알겠다고 했다.
그러고 시간이 좀 지나니 SUV 차량이 숙소에 도착했다. 어제 만난 호객꾼 아저씨와 셔츠 차림의 택시 운전사가 차에서 내렸다. 릭샤보다는 조금 더 비싼 가격을 불렀다. 큰 택시라서 돈을 더 받겠다고 했다. 내가 혼자인데 큰 택시든 작은 택시든 그게 의미있나 싶긴 했다.
숙소에선 아침을 간단하지만 많이 줬다. 과자도 무슨 크래커 같은 거였다면 10개 넘게 준다.
하루 더 연장을 하기로 관리인과 얘기하고 엘로라로 떠났다. 숙소에서 약 1시간이 걸리는 거리였던 것 같다. 가는 길엔 어젯밤에 보지 못한 풍경이 보였다. 소가 보이고 동네 사람들이 보이는 한적한 시골. 도심을 관통하자 아까 그 모습은 보기 어려웠다. 빌라 정도 크기의 건물들도 즐비했고 무엇보다 차가 꽤 많았다. 사람도 많았다. 도심을 관통하고 무슨 포트가 보였다. 관광지였던 곳 같은데 차도 사람도 엄청 많았다. 거기서 계속 올라가자 엘로라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산을 향해 계속 올라갔다.
아젠타, 엘로라 석굴은 아우랑가바드에서 유명한 관광지였다. 정말 많은 사람과 차가 있었다. 엘로라에 도착하고 생각하니 가이드(?)와 같이 가야하는 걸까 싶었다. 그런데 아저씨는 내게 어떤 사람과도 말을 섞지 말고 구경 후 이곳에 오라고 했다. 구경 다 하면 전화하라고 하며 전화번호를 줬다. 나만 갔다 오는 거구나. 이 사람의 입장료도 내가 줘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다. 시간을 정해두고 할 줄 알았는데 뭔가 신기했다. 그냥 진짜 내가 올 때까지 주구장창 기다리는 걸까. 물론 그는 내게 주차비를 요구했다. 200루피를 요구했던 것 같은데 아마 그 돈 안에 식사 비용도 포함되었을 것 같다.
많은 인파들 사이에서도 신기했던 건 슬슬 나도 인도에 녹아들고 있었다는 거였다. 호객꾼들 사이를 돌파하며 티켓 구매소에 도착했고 문제 없이 구매도 했다. 줄을 서는 동안 한 아저씨에게 도움을 청했다. 입장하는 곳까지 같이 가달라고 했는데 아저씨는 흔쾌히 나를 동행해줬다. 그러곤 입장하는 곳에 도착하자 아저씨의 일행이 보였다. 나는 자연스럽게 아저씨와 함께 새치기를 하며 입장했다. 항상 새치기만 당하던 인도였는데 처음으로 어쩌다 새치기도 하게 됐다.
아저씨에게 고맙다고 인사했는데 아저씨는 약 10명이 넘는 대가족을 이끌고 관광하러 온 거였다. 그들 10명이 낸 티켓 값이 나의 티켓 값과 같다는 걸 생각하자 뭔가 신기했다. 외국인에겐 10-12배 정도 티켓 값을 더 받는 문화(?)가 있었다.
엘로라는 석굴마다 번호가 있었다. 47번까지였나. 가이드 아저씨는 내게 특정 번호의 석굴을 꼭 보라고 했는데 그 석굴이 입구에 있었다. 전체를 다 둘러보기엔 규모가 큰 탓에 오른쪽만 돌기로 했다. 석굴의 절반만 보는 코스를 택한 거였는데
우리로 비교하자면 석굴암이 47개 있는 그런 느낌이랄까. 사실 석굴을 보면서 우와, 이런 걸 난 느끼는 사람은 아니지만 바위를 직접 파서 만들었다는 것에서 놀라움은 있었다. 어떻게 이걸 하나하나 판 거지. 이걸 보니 피라미드도 가능하지 않을까 싶었다. 물론 피라미드를 직접 본 적은 없지만.
문제는 메인 석굴이 너무 사람이 많았다는 거였다. 빠르게 다른 석굴로 이동했다. 점점 사람이 적어졌고 날씨는 더워졌다. 밖에 택시 기사랑 가이드가 기다린다고 생각하니 생각만큼 여유롭게 즐기진 못했지만 그래도 알뜰하게 관광한 것 같다. 신기했던 건 관광지 안에서 노상방뇨를 하는 사람이 있었다는 거였다. 우리로 치면 석굴암 안에 있는 부처 상 뒤에서 볼일을 본 건데, 그건 좀 충격이었다. 심지어 아줌마였다. 부처 상 뒤에서 한 아줌마가 나오길래, 뒤에도 뭐가 있나 하고 갔더니 따끈한 오줌이 있을 뿐이었다.
그걸 뒤로 하고 다른 석굴로 이동할 때도 한 아주머니가 노상방뇨 중이었다. 수풀 안이어서 다행이긴 했는데, 나도 보고 싶어서 본 건 아니다. 보이는 곳에서 왜 자꾸 볼일을 보는 걸까 싶었다. 화장실이 없는 게 아니다. 입구에 화장실이 있는데... 심지어 컨디션도 괜찮던데... 여자 화장실은 다른가.
곳곳엔 돗자리도 피지 않은 채 굿즈를 파는 아저씨들이 있었다. 지도를 팔기도 하고 돌로 만든 코끼리를 팔기도 하고. 그 중 내 눈에 들어온 건 돌로 만든 코끼리였다. 2000을 부르길래 아, 이게 그 정도인가. 내가 고민하자 1500을 불렀다. 흠, 그래도 고민이었다. 뭔가 저 코끼리를 내 자취방 화분에 두면 좋을 것 같았다. 그 코끼리는 물에 닿으면 색깔이 생기는 돌이었는데
뭐, 솔직히 색이라고 표현하기도 애매하긴 했다. 그래도 세 가지 색이긴 했다. 아저씨는 호구 하나 잘 물었다는 듯 나에게 1300을 불렀다. 나는 밖에서 기다릴 가이드와 택시 기사를 생각해 구매하고 어서 나가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가벼운 발걸음으로 걷는데 돌로 만든 코끼리를 파는 다른 아저씨가 보였다. 가격을 물어보니 700을 불렀다. 아 시바
호구 제대로 잡혔네. 심지어 나중에 알게 된 거지만 면세점에 가니 그 코끼리가 700이었다. 이걸 집에 돌아와 아빠에게 얘기하니 그 코끼리는 세 가지 색이 아닐 수 있다고 했다. 그것도 맞는 말이었다.
그런데 기분이 안 좋아졌다. 일단 시간이 없으니 밖으로 퇴장하는데 진짜 호객꾼이 20명이 출구에서 환영하고 있었다. 그 중 한 명은 자꾸만 나를 따라오며 부처 굿즈를 내밀었다. 어디에 쓰라고 나한테 그걸 보여주는 거지. 나는 그 부처가 무슨 부처인지도 모를 만큼 무지한 사람인데. 500에서 시작한 부처 굿즈는 내가 출구 끝에 닿을 때까지 따라와 100까지 떨이했다. 무슨 3D 프린팅으로 뽑은 것처럼 생긴 것에다 만져보질 않아도 플라스틱 같아 보이는 재질의 부처는 정말 필요가 없어 보였다. 그는 100루피를 부르며 내 앞을 가로막았다.
하, 나도 무슨 구걸하는 거지에게 돈을 주듯 주머니에서 돈을 꺼냈다. 솔직히 2-3분을 따라온 그가 대단했다. 이 정도면 인정해야지. 부처를 받아들곤 나간 출구는 길거리 음식이 즐비했다. 배가 고팠는데 어딜 봐도 가격표가 붙어 있는 곳이 없었다. 아까 전 코끼리가 생각 난 탓에 괜히 아무것도 사 먹질 못했다.
아까 헤어진 곳에 가는 길에 가이드를 만났다. 그는 택시 운전사에게 전화했는데 운전사는 전화를 받지 않는 듯했다. 그렇게 시간이 좀 지나자 택시 기사가 도착했고 우리는 차를 타고 떠났다.
엘로라에선 체험 학습을 온 학생들이 있었다. 그들은 내가 신기한지 자꾸만 말을 걸고 사진을 찍자고 했다. 한번은 10명이 넘는 학생들과 함께 사진을 찍을 준비를 했는데 사진이 아닌 비디오를 찍고 있던 거였다. 나에게 자꾸 나마쓰떼를 한국어로 뭐라고 하냐고 물었다. 뭘 이런 걸 영상을 찍는 거지.
내가 차를 타고 나가는 길, 아까 같이 사진 찍었던 학생들이 보였다. 그 학생들은 나를 보자 차를 향해 뛰었다. 왠지 모르겠지만 손을 흔들며 쫓아왔다. 얘내는 관광지가 아니라 나를 관광하는 것 같았다.
택시를 타고 내려가는 길, 정말 많이 막혔다.
엘로라 석굴 안을 돌아다닐 땐, 나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하는 부부도 있었다. 고프로를 들고 있던 내게 그 부부는 사진 찍어달라고 한 거였는데, 내가 사진을 줄 수 없다고 해도 그냥 찍어달라고 했다. 그렇게 그 둘은 쿨하게 떠났다.
내려가는 길 가이드는 내게 소개해줄 곳이 있다며 히무룩을 파는 가게에 갔다. 히무룩은 망토처럼 보였다. 여기에선 얼마나 뽀찌를 먹을까. 안에 들어가니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다. 그리고 직원도 많았다. 1대1 대응이었다. 인도의 청년이었는데 땀냄새 빼고는 괜찮았다. 정말 전형적인 인도식 영어 사용자였는데
히무룩은 사실 가격이 착하질 않았다. 1500부터 10000이 넘는 것까지 있었다. 그리고 오피셜 가격이 보이질 않았다. 아까 전 코끼리 때문에 자꾸만 가격에 예민하게 굴었다. 그래도 엄마 선물로 사면 좋지 않을까 싶어 하나 샀다.
이제 영화제로 갔다. 영화제엔 사실 오전에 먼저 들렸었는데 늦게 참석할 것을 얘기하고 엘로라를 먼저 갔던 거였다. 영화제에 늦게 참석했는데 뭐랄까. 동네 축제 같았다. 춤도 추고 노래도 부르고. 미니 게임도 하고. 이게 영화제가 맞나 싶기도 했다.
그리고 그날 난 순수하게 100명이 넘는 사람들과 사진을 찍었다. 시간만 따져도 1-2시간 쓴 것 같다. 몇 시간 연예인 체험을 했는데 사람이 할 짓은 아닌 것 같았다. 갑자기 내 볼을 만지는 아줌마도 있었는데 난 무슨 연예인 체험에 맛들렸는지 그 순간에도 미소를 잃지 않았다. 나에게 이런 재능이
그리고 셀카를 뭐라고 하지, 스노우 같은 거로 자꾸 찍었다. 기본 카메라가 아닌 무슨 필터가 자꾸 있었던 것 같았다. 이 날을 제외하고도 사실 하루에 5명씩 정도는 자꾸 사진을 찍자고 하는 사람들이 있긴 했었다. 그래서 원래 이런 나라구나 하는데 이 날은 유독 심했다. 심지어 5살도 안 될 것 같은 여자 아이가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런데 싸인이라고 말했다. 그는 내게 펜을 내밀었다. 설마, 진짜 싸인을? 머릿 속에선 싸인에 대한 뜻을 생각했지만 맥락상 진짜 싸인인 것 같았다. 그런데 난 싸인이 없는데
당연하지, 일반인인데...
리얼리? 되물었지만 아이는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인도는 고개 끄덕임을 옆으로 한다)
그래서 영수증 싸인할 때 남기는 싸인을 아이의 손에 해버렸다. 미안해...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한국어로 내 이름 적어줄 걸. 걔내 눈엔 예뻐 보일 수도 있는데.
여자 중고등학생 정도 되어 보이는 애들은 영어를 유창하게 잘했다. 내가 여기 사람들은 왜 나랑 사진을 찍으려고 하냐고 하자 한 아이가 말했다. 한국에서 온 게 신기해서.
그렇구나. 뭔가 괜히 듣고 나니 민망하기도 하고 섭섭하기도 하고. 인스타 팔로우도 많이 한 것 같고 정말 활발한 사람들이 많았다. 대뜸 자신의 영화를 보여주는 청년도 있었다. 춤을 추고 영상이라 사실 뮤직비디오처럼 느껴졌는데 제작비가 500루피였단다. 우리 돈으로 만 원도 안 든 영화라니. 심지어 출연자는 30명은 족히 넘어 보이는데. 영상 속 비가 오는데 춤을 추는 떼 씬이 있었다. 설마 했는데 진짜 비 올 때 찍었다고 한다. 여긴 정말 대단하다. 비 맞으면서 저 많은 군중이 춤을 춘다고? 돈도 안 받고(아마)? 영상 퀄리티가 좋았다.
그는 내게 자기 영화를 보라면서 정보를 주고 갔는데 내가 아무리 검색해도 그 영화는 나오질 않았다.
가이드는 영화제 속 내가 여러 사람과 사진을 찍고 있는 걸 보자 생각이 바뀌었던 것 같다. 나를 뭐로 봤을진 모르겠지만 어쨌든 달라진 태도를 느꼈다. 자꾸 나를 사진 찍었다.
사진 찍자고도 했고. 갑자기 영상통화로 자신의 가족을 한 명씩 소개해줬다. 심지어 택시 기사와는 택시 앞에서 악수를 하며 영상을 찍었다. 택시 회사 로고가 잘 보이게 찍은 것 봐서는 홍보용인가.
저녁엔 패밀리 레스토랑에 갔다. 가이드와 택시 기사의 밥도 내가 사야 하는 걸까 생각했다. 일단 내 관념에선 이게 맞는 것 같아서 내가 샀다. 셋이서 디저트까지 먹고 1000루피가 안 나왔다. 한국 돈으로 치환하면 인도의 물가가 정말 싸긴 했다.
저녁을 먹곤 또 히무룩 가게에 가이드가 데려다줬다. 뽀찌 받는 곳이 몇 개인 거야.
숙소에 도착하자 밤 9시, 10시가 되었던 것 같다. 숙소엔 대가족이 있었다. 관리인 아저씨가 자신의 가족을 다 불렀다고 한다. 10명이 넘는 인원이 있었고 난 그들과 사진을 찍었다(?)
이날은 정말 많은 사진을 찍고 찍혔다. 내 폰에 저장된 사진은 사실 몇 장 없다. 대부분 나에게 주질 않았으니까. 심지어 가이드 또한 나의 와츠앱 메세지를 일기를 쓰는 지금까지도 안 읽고 있다. 사진 좀 달라니까.
사진을 이 만큼 찍고 찍히다 보니 뭐랄까, 연예인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팬미팅 이런 거 하면 몇 백 명이랑 사진 찍을 텐데... 어떻게 하는 걸까.
연기학원을 다닐 때가 생각난다. 그때 원생들과 대화 중엔, 누가 이런 말을 했다. 솔직히 다들 연예인 한 번은 꿈꾸지 않냐고. 다른 원생들이 고개를 끄덕였던 것 같다. 그런데 난 여전히 잘 모르겠다. 그때도 지금도. 뭐랄까 나는,,, 식당을 차려도 단골들이 찾아오는 식당을 차리고 싶지 인스타 맛집이 되고 싶진 않다. 연기를 연예인이 하고 싶어서 배웠던 게 아니었다. 뭐, 어쨌든
이렇게 사생활 없는 삶은 바라고 싶진 않을 것 같다.
아우랑가바드에서의 마지막 밤도 그렇게 깊어갔다. 밤하늘에 별은 많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