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파가 싫은 남자

그냥 일기

by 수호


나는 전자파를 맹신한다. 왜냐하면 지금 머리가 아프기 때문이다. 과사에서 근로한지 3일 되는 날이다.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있으니 머리가 아프다. 컴퓨터를 그렇다고 만지는 게 아닌데...


그냥 앞에 켜두기만 하고 나는 내 노트북을 만진다. 책을 읽기도 하고. 그런데 문제는 머리가 아프다. 나는 사무직은 못 될 운명인 것 같고


시간이 갑자기 많아진 느낌이다. 어쨌든 강제로 과사에 8시간은 앉아 있어야 하니 8시간이 생긴 기분이랄까?


갑자기 생겨난 시간에 여유가 많다고 착각이 든다. 생각보다 책 읽기 좋은 환경은 아니다. 아니, 사실 고요하고 한적하고 너무 좋은데 머리가 아프다는 단점이 있다. 편집실에서도 난 머리가 자주 아픈 편이다. 컴퓨터가 가득한 편집실에선 몇 시간 지나고 나면 머리가 띵할 정도다.


잠들기 전엔 최대한 전자기기를 멀리하는 습관이 있었다. 이젠 아니지만


그리고 강제로 부지런한 삶을 살고 있다. 9시까지 출근하려면 8시엔 일어나야 하니. 학원에서 일하던 예전을 생각하면 삶의 질이 많이 달라졌다. 학원은 오후 출근이라 오전에 여유가 너무 많았다.


이젠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9투6의 삶을 체험 중이다. 나는 정해진 것을 규율로 생각하는 탓인지 좋아하질 않는 것 같다. 이런 말을 하면 반항도 하고 막 나가야할 것 같은데 또 규칙은 잘 지킨다.


태생과 이상의 싸움이랄까. 나는 어긋남을 잘하지 못한다. 어긋난다는 건 눈에 들어오는 일이었으니까. 어쩌면 범생이 기질일지 모른다. 규율을 지켜야 하는 건 범생이의 규칙이니까.


신기한 건 학교에 생각보다 익숙한 얼굴들이 있다는 것이다. 18학번인 걸 생각하면 사실 벌써 8년이 지난 건데.


그리고 구면인 사람을 만나면 괜스레 묻지도 않은 말을 꺼낸다. ㅏㅇ, 대학원이야 난.

그 사람도 괜히 의식되는 탓인지 난 재입학이야..


뭔가 서로서로가 이미 사람들의 눈을 통해 느낀 게 있었을 거다. 어, 뭐야 네가 왜 아직 학교에 있어?라는 그 눈빛. 그러면 변명하듯 우리는 자신을 변호해야 하고.


교직원을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게 근로의 장점(?)이다. 대학생일 땐 사실 교직원의 존재는 NPC였으니까. 뭐하는진 모르지만 어쨌든 학교에 있는 사람들.


교직원들에게 대학생들은 그럼 몬스터일까..? 어딜 가든 필드에 존재하는 잡몹들. 보스몹은 총학생회장 쯤?


여러 학생들을 접하게 되는 과사에선 뭔가 학생들이 더 신기하게 느껴진다. 우리 과에 학생들이 참 많구나?


이름에서도 놀라게 되는 경우가 있다. 도라지, 김이기쁨... 내 이름 너무 평범한가?

이런 성함을 보면 혼자 그냥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김, 이, 기쁨? 김과 이라는 성을 물려받은 것이겠지. 이기쁨은 아닐 테니까.

도라지... 라지.... 이미 숱한 별명을 뚫으며 대학을 입학하셨겠지.


군대에 있을 때, 상황실에서 할 게 없으면 이름들을 보곤 했다. 박격포 상사. 돌진 하사. 대장 상사.

각각 이름이 박격포, 돌진, 대장, 이었다. 배달의민족 씨도 있었다. 배달의민족 씨는 도대체 어디까지 성이고 이름일지 가늠도 되질 않았다. 성이 배고 이름이 달의민족일까. 그런데 저분은 배달의민족 회사가 있기 전에 만들어진 이름일까 후의 이름일까. 물론 그전에 만들어졌을 이름인 게 정론일 확률이 높은데 그의 부모는 어떤 선경지명을 가지고 이런 이름을 지었을까.


우리 소대장의 이름은 제갈진홍이었다. 성이 제갈, 이름이 진홍. 그의 후임들은 제갈상사, 제갈상사님이라고 불렀다. 반대로 그의 선임들은 제갈이라고 불렀다. 후임이든 선임이든 모두 제갈이라는 성만 불렀다.


과사에선 대부분 학생들이 찾아오기보다는 전화를 많이 건다. 전화를 거는 건 상관 없는데 보통 자신을 밝히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다. 그래서 군필 남자 애들은 자신을 먼저 밝히는 것 같긴 한데


일기를 쓰다 보니 머리가 조금 진정이 된 것 같다. 다시 다른 일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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