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프

그냥 일기

by 수호


지금 내 상태를 한 마디로 표현하면 죽여줘! 영어로 표현하면 헬프. 두 마디로 늘리면 자고 싶어. 세 마디로 늘리면 집에 가고 싶어.


어젠 갑자기 잡힌 촬영에 무던히 고생한 날이다. 새벽 5시 15분에 청담에서 만나기 위해 새벽 4:15분에 일어나 준비를 시작했다. 그렇게 서울에서 천안으로. 천안에서 다시 서울로 출발할 때는 밤 11시 정도 되었던 것 같다. 그렇게 약 19시간 정도를 밖에 돌아다녔던 하루였다.


다음 날인 오늘, 근로를 위해 8시에 일어났다. 알람이 울리기 전에 눈이 떠졌고 순간적으로 불안했다. 07:58분, 알람 울리기 2분 전이었다. 하루를 시작하기 싫었다. 9시부터 지금까지 사실 일한 건 없다. 그냥 과사에 가만히 앉아 노트북을 두들겼다. 그러다 보니 벌써 15시가 넘어가고 비가 그쳤다.


감기에 옮은 것 같다. 어젠 계속 야외에서 촬영한다고 몸이 혹사한 느낌이랄까. 껄껄. 문제가 하나 생겼다. 연출자의 태블릿을 빌려 스크립트를 작성하던 중, 애플펜슬을 떨어뜨렸다. 그대로 호수에 빠진 애플펜슬. 가격을 찾아보니 10이 넘었다. 하,, 돈이 더 나가게 생겼네.


호수에 하얀 무언가가 떨어졌을 때, 순간적으로 나는 내가 가진 물건 중 가장 싼 것이길 바랐고 두 번째는 내 물건이길 바랐다. 어떻게 애플펜슬이 쏙, 하고 떨어져서는...


촬영은 고단하다. 그래서 촬영이 끝나면 전우애가 생기는 기분이다. 이 힘듦을 이겨냈다는 동지애랄까. 그리고 가끔, 아주 가끔은 낯선 사람을 만나는 일이 나쁘지 않다. 모르는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는 것도 나름 재미가 있으니까.


꼭 일이 있는 날엔 다른 일들이 밀려든다. 자꾸 내가 노트북이 없을 때만 교수님이 내게 톡을 보낸다. 문서가 첨부되어 있고. 노트북을 끼고 살아야 하나.


어제 촬영장에선 어떤 대학생 한 명과 반가운 일이 있었다. 키위크루 소속이었던 그녀는 내가 나온 영화를 3번이나 봤다고 했다. 근데 나를 기억하지 못한다.


나름의 뿌듯함이랄까. 나도 나름 많이 찍긴 했지.


당근에서 애플펜슬을 알아보는 중인데 답장이 너무 오질 않는다. 대충 5만원 선에서 쓸만한 것들을 살 수 있을 것 같긴 한데...


눈이 자꾸 감긴다. 커피 한 잔으론 어림도 없는 피로일까. 어제 촬영은 뭔가뭔가다. 뭔가 찝찝함도 들고 미안함도 들고 여러 감정이 오간다고 할까. 이런 작업을 어떻게 매번할까.


잠에 들고 싶다. 긴 잠을. 꿈 없는 그런 잠을 자고 싶다. 그런 잠을 보고 뭐라고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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