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타고난 도망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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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는 구원이 아니다.

by 익명

사람들은, 그리고 수많은 종교는 나에게 '용서'를 강요한다. 용서만이 너를 구원할 것이라고. 미움을 내려놓고 편안해지라고. 하지만 나는 감히 말하건대, 그 말은 틀렸다. 용서라는 행위는 피해자를 위한 처방전이 아니다. 그것은 가해자를 위한 면죄부일 뿐이다.


용서의 불공정 거래


용서를 하는 순간, 기이한 불균형이 발생한다. 가해자는 피해자로부터 용서받았다는 '확인 도장'을 받는 순간 해방감을 느낀다. 그는 죄책감이라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삶으로 복귀한다.


"그래, 다 해결됐어."


하지만 남겨진 피해자는 어떤가. 용서를 했다고 해서 내 몸에 새겨진 흉터가 사라지는가? 내 기억 속의 폭력이 없던 일이 되는가? 아니다. 오히려 피해자는 '미움'이라는, 그동안 나를 지탱해주던 고통의 방향성마저 잃어버리고 망망대해에 표류하게 된다.


가해자의 고통은 용서와 함께 끝나지만, 피해자의 고통은 용서 이후에도 영원히 지속된다. 이것은 명백한 불공정 거래다.


그래서 나는 신이 말하는 사랑과 용서를 믿지 않는다. 상대를 인간으로 대우하고 이해하려 들면, "도대체 왜 나한테 그랬을까?"라는 풀리지 않는 의문에 갇혀 나만 병들 뿐이다.


내 경험상, 피해자에게 진짜 도움이 되는 건 용서가 아니라 '경멸''비하'다. 상대를 나와 같은 인격체로 보지 말고, 그냥 말이 통하지 않는 하나의 벌레로 치부해 버리는 것. 길을 가다 모기에게 물렸다고 해서 모기를 이해하거나 용서하려 드는 사람은 없다. 그저 "재수 없게 물렸네" 하고 침을 바를 뿐이다. H를, 그리고 나를 아프게 한 그들을 그렇게 바라보는 편이 정신 건강에 훨씬 이롭다.


내가 펜을 들어 H를 겨눌 때, 나는 내심 그가 강하게 저항하길 바랐다. "나는 잘못 없다! 네가 예민한 거다!"라고 소리치며 끝까지 뻔뻔하게 버티기를, 내가 찌르는 칼날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처절하게 무너지기를 바랐다. 그래야 내가 휘두르는 이 칼날에 정당성이 부여될 테니까.


하지만 현실은 맥 빠지게 달랐다. 그는 찌르기도 전에 이미 주저앉아 있었고, 나는 칼을 쥔 손이 부끄러워질 만큼 초라한 노인을 마주해야 했다. 무기력하게 항복한 적을 베는 것만큼 허무한 승리는 없다.


결국 피해자는 영원히 피해자일 수밖에 없는 것일까. 복수가 성공한다 해도, 그 끝에 기다리는 건 통쾌한 카타르시스가 아니다. "내가 저 늙고 병든 사람을 공격했다"는 현실, 즉 내가 또 다른 가해자가 되었다는 자기혐오가 새로운 고통의 시작점이 된다.


복수는 성공과 실패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그냥, 고통의 주인이 바뀔 뿐인 제로섬 게임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찌르지 못하고, 용서하지도 못한 채, 그 어정쩡한 틈새에서 쓴 커피나 마시는 것이다.


2025년 9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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