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매한 재능들의 도주로
왜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공부를 '적당히' 잘했다.
천재는 아니었다.
진짜 천재였다면 지금 이 모양 이 꼴로 살고 있지는 않을 테니까.
누군가 말했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저주는 '애매한 재능'을 타고나는 것이라고. 죽어라 노력하지 않아도 전교 20등 언저리에 머무는 성적. 세상은 그것을 축복이라 불렀지만, 나에게는 족쇄였다. 나는 사실 공부하는 법을 몰랐다. 그저 활자를 찍어내는 기계처럼 요령 좋게 점수를 받아냈을 뿐이다.
그 애매한 성적표는 나의 진짜 욕망을 짓뭉개버렸다. 밴드부에서 마이크를 쥐고 핏대를 세우던 나, 조명을 받으며 런웨이를 걷고 싶었던 나, 타인의 삶을 연기하고 싶었던 나... 그 모든 '나'들은 성적표라는 얇은 종이에 눌려 질식했다.
"이 성적으로 그런 걸 한다고? 미쳤어?"
세상의 비난보다 무서웠던 건 내 안의 겁쟁이였다. 나는 우겨서라도 그 길을 갔어야 했다. 하지만 확신이 없었다. 1등도 아니면서 꼴찌도 아닌, 그 어정쩡한 위치가 주는 안락함에 취해 나는 꿈을 포기하는 쪽으로 도망쳤다.
좋은 대학을 나왔고, 직장에 들어갔고, 독립을 했다. 겉보기에 나는 평범한 사회인이지만, 내면은 여전히 그때 그 시절에 멈춰 있는 평범한 도망자다. 내가 뜬금없이 이 글을 쓰게 된 건, 우연히 가수 한로로의 <자몽살구클럽>을 읽고 나서다. 그 책 속에 담긴 위태로운 정서가 내 안의 도망자를 다시 깨웠다.
사실 나의 참호, 그러니까 내 취향의 지반이 처음부터 단단했던 건 아니다.
애매한 성적 탓인지, 아니면 "내가 과연 잘할 수 있을까" 하는 용기 부족 탓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늘 첫 삽을 뜨는 데 실패했으니까. 그렇게 숱한 실패와 도망 끝에 내가 겨우 파낸 참호는 '사진'과 '책 읽기'였다. 그리고 지금은 '러닝'과 '글쓰기'라는 새로운 참호에도 조심스레 삽을 꽂아 넣고 있다. 이것들이 과연 나에게 진정한 안식처가 될 수 있을지는 아직 모른다. 그냥, 모르면서도 해보는 것이다.
앞선 글에서 나는 "참호는 잠시 머무는 텐트여야지, 안주하는 집이 되어선 안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에게 도망은 멈춰서 숨는 게 아니라 계속해서 파고 나가는 행위였다.
나는 지금 나를 아프게 하는 것들로부터 나를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참호를 파고 있다. 하지만 제자리에 깊게 파고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나는 흙을 퍼내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 좁고 긴 참호를 파면서 앞으로, 또 앞으로 계속 파고들다 보면... 언젠가 내가 지나온 이 참호의 양쪽 벽면이 나의 사진과 글들로 채워지지 않을까? 그렇게 나아간 길의 끝에서, 이 투박한 참호는 세상 사람들을 초대하는 근사한 '갤러리'가 되어있지 않을까?
그때가 되면, 비로소 이곳은 내가 숨어야 할 텐트가 아니라, 내가 영원히 머물러도 좋은 진정한 안식처가 될 것이다.
물론 이것은 나의 방향이다.
나와 다른 꿈을 꾸는 당신들에겐 각자의 방향이 있을 것이다.
누군가의 참호는 화려한 조명이 켜진 무대가 되는 방향으로, 누군가의 참호는 세상의 지혜가 담긴 도서관이 되는 방향으로, 또 누군가의 참호는 따뜻한 빵 냄새가 나는 작은 가게가 되는 방향으로 뻗어 나갈 것이다.
이 글들을 쓰며 내가 찍은 사진들을 하나하나 함께 올렸다. 투박한 참호 속에서 찍은 사진들이지만, 나의 감정만큼은 선명히 담겨 있다.
너도 그랬듯이 나도 그랬다고. 그러니 우리 지치지 말고 계속 파고 나가자고.
우리는 '애매한 재능' 하나쯤은 품고 사는, 각자의 안식처를 향해 터널을 뚫으며 세상에서 가장 치열하고 부지런하게 도망치는 중인 공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