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의 일기
이 이야기는 사실을 바탕으로 각색된 허구의 글로, 실제 인물 및 사실과는 무관한 내용임을 밝힙니다.
<N의 일기>
나는 9월의 비가 내리던 어느 날에 그를 처음 만났다. 장소는 단 둘이 들어갈 수 있는 회사 근처 한 이자카야의 룸으로 내가 직접 예약했다. 처음 만나는 날부터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무언가 재미있고 통할 수 있을 거라는 느낌이 있었다.
그가 들어왔을 때 그와 나는 서로 그저 그 어색한 상황이 웃기기만 했다. 그래서인지 엄청나게 수다를 떨면서 많이 웃었다. 서로가 좋아하는 술에 대해서, 그의 현재 삶과 나의 환경에 대해서 약간의 정보와 농담을 주고받았다.
그가 A라고 하면, ‘그래! 바로 A 지!’라고 나는 말하고, 내가 B라고 하면, 그도 ‘정말이야? 나도 B야!’라고 말하며 웃었다. 그렇게 합이 맞는 핑퐁을 주고받는 사이, 룸 바로 옆의 창문에서는 쉴 새 없이 폭우가 쏟아졌고, 동시에 너무나 낭만적인 영화 음악과 팝송이 연달아 흘러나왔다. 처음 보는 이와의 찰떡같이 맞는 마음, 술 취향까지도 같다는 우연에 대한 놀라움, 우연을 인연으로 포장하고 싶다는 욕망,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 속에 감출 수 없는 호감, 그런 감정은 이십 대 이후 처음 느껴보는 두근거림이었다. 그와 눈이 마주치면 부끄러워 웃고, 그럼에도 눈을 뗄 수 없는 사춘기의 소용돌이 같은 감정이었다.
그를 처음 만난 바로 그날, 그가 옆으로 다가와 조심스레 키스를 할 때에도 나는 그를 밀어내지 않았다. 마음은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처음부터 그렇게 될 것이라고 자연스럽게 생각했던 것 같다. 물론 아예 주저함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물론 그에게는 내게 보이려 한 것은 아니지만 철저하게 사생활을 지키고 싶어 하는 조심성이 느껴졌다. 계속적으로 자신의 상황을 이야기하고 시작부터 선을 긋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런 것들은 내게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주말에 각자 집에서 쉬는 데 그가 ‘뭐 해?’ 하고 물어봤을 때, 나는 읽고 있는 책을 찍어 보냈다. 그도 역시 우와! 웃으며 비슷한 종류의 책을 동시에 읽고 있는 사진을 보냈다
.
지식에 대한 목마름, 조금은 지친 얼굴, 좋아하는 술의 취향과 부드러운 피부 결까지 나와 닮아 있었다.
...
오늘 아침에는 비가 내렸다.
커피를 내리며 짧지만 깊게 사랑했던 그와의 시간을 떠올려 본다.
오직 4번의 만남 중 3번은 비가 왔던 것 같다.
마음이 저릿하기도 하지만 일상생활을 지탱하지 못할 정도로 어리지 않다.
울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만 시도 때도 없이 왈칵 눈물을 쏟지 않는다.
엄청나게 술을 마실 때를 빼고는 감정을 추스를 수 있다.
시간이 지나면 감정이 무뎌지는 것을 여러 번 경험했기에,
짧았던 만남의 시간만큼 힘든 시간도 줄어들 것이라 믿고 있다.
다만 내가 그에게 그 정도 존재밖에 안 되었던 것인가에 대한 원망과 아쉬움이 있다.
관계에 끝은 정해져 있고 적절한 경계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관계의 선이라는 것이 어디까지 인지 규정하는 것은 어려웠다.
단지 내게는 엄청 큰 사람이었기에 온 마음을 다 주고 싶었다.
가을 언저리에 걸쳐져 있던 지난 늦여름은 행복하고 아름답게 설렜다.
누가 그랬던가. 아름답고 행복했던 나날들은 조금 슬프게 지나간다고…
나의 지나친 욕심으로 쓸쓸한 오늘을 가져왔다. 내가 선택해서 밀어낸 마음이었다.
분명 후회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항상 감정이 더 깊어지는 쪽이 더욱 미련을 떠는 법이다.
때로는 그와 함께 하지 못한 미래를 상상한다.
하지만 다행이다. 그는 나로 인해 행복할 수 없었겠지.
나의 두려움, 나의 불안함, 사랑을 믿지 못한 나를 품어주었던 그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그 젊고 아름다운 사랑의 나날이 지나가고 끝나가는 시절에는 많이 아팠지만.
결국 지금은 추억이라고 부르는 이름이 되었지. 그때 내게 와줘서 고마워.
지금은 함께 할 수 없지만, 너는 나로 인해 힘들었을 거야.
이제야 너를 이해할 수 있어. 나는 너로 인해 다쳤다고 생각했지만,
그땐 그랬지만. 아니야 오로지 고마워.’
사랑이란 감정은 때론 지겹고 쓸쓸하다.
사랑을 시작할 때는 머리부터 발바닥 끝자락까지 나의 온몸이 그의 생각으로 가득 찬다.
상대방의 허락을 구하지도 못한 채 내가 먼저 사랑을 시작할 때는 아픈 마음으로 가득가득 저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계속 사랑을 하고 싶다.
그저 지나가는 감정에 불과할지라도, 다른 사람이 온통 내 안에서 채워지는 슬픈 행복을
내 삶에 담아두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