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세계_6화.

행복을 주는 사람.

by 배운


이 이야기는 사실을 바탕으로 각색된 허구의 글로, 실제 인물 및 사실과는 무관한 내용임을 밝힙니다.




다르지만 마음에 꼭 드는 사람, 행복을 주는 사람.

N이 이런 사람을 왜 진작 만나지 못했을까. 내가 그를 만날 때마다 여러 번 드는 생각이었다.


그가 무라카미 하루키를 모른다고 했을 때 순간 나는 깜짝 놀랐다. 또한 N은 술을 엄청나게 좋아하는데 그는 술이라고는 카 x 테 x 맥주 이름밖에 모르는 사람이었다.

N은 보통 새벽에 일어나고 책을 읽으며 11시 전에 잠들지만, 그는 아침 늦게 일어나 넷플을 정주행 하고 느지막이 잠이 든다고 했다.

N은 달리기를 좋아하지만 그는 2만 보 걷기를 더 좋아했다. N이 클래식이나 요즘 핫한 전시회 나 책 얘기를 할 때 그는 쇼미 더 xx와 같은 예능을 즐겨보고 최신 넷플 작은 다 보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렇게 다른 그가 N이랑 너무 잘 맞는 게 참 신기했다.


N이 불안의 숲에서 오들 대고 있으면 그는 ‘아무것도 아니야! 뭐 어때? 내가 다 지켜줄게.’ 하고 웃으며 N을 불안의 세상에서 번쩍 들어서 행복의 세상으로 데려다주었다.

N은 아무것도 할 일이 없었다. 그냥 그 자리에 가만히 있기만 하면 그가 다 했다. N을 데리러 오기부터 데이트 코스 짜기 집에 가는 일까지 다 그의 몫이었다. ‘오늘은 이걸 하자! 나는 당신이랑 이것도 같이 해보고 싶어! 오늘은 이걸 먹어 보자! 오늘 어디 간다고? 내가 데려다줄게! 데리러 갈게!’

N이 처음 접하는 낯선 다정함이었다.

N이 그와의 불안한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면, 그는 ‘난 두렵지 않아 우린 20년도 거뜬할 거 같아! 이렇게 같이 늙어가자. 믿어도 좋아. 내 입으로 이런 말하기 뭐 하지만 정말 난 좋은 사람이야!’라고 말했다.

N 또한 그에게 ‘왜 이제야 나타났어.’라는 말을 자주 묻곤 했다.


어느 날, N과 내가 한 와인바서 좁은 탁자를 사이에 두고 무릎을 맞댄 채로 감성에 젖어들 때쯤 그가 술 취한 N을 데리러 왔다.

그는 내게 여느 때처럼 자신이 얼마나 설레 이는지, 얼마나 N을 사랑하는지를 말하고 그 어떤 두려움도 없다고 하였다.

하지만 N에게는 갑자기 알 수 없는 쓸쓸한 공기가 가슴을 파고들었다. 울컥 쏟아질 것 같은 막막함... N은 감정이 무언지 생각해 보았다.


불안하다고 했다. N은 늘 불안을 안고 사는 사람이지만.


N과 비슷한 나이의 그는 사회에서 인생의 절정의 시기를 향해 나아가고 있고, N은 점점 하향곡선을 준비하는 중인 것 같다고 했다.

헤어진 후 많은 추억들로 인해 버티지 못할 거라는 두려움,

의지할 곳이 또 사라지는 것에 대한 상실감,

경조사나 각종 의미 있는 나날들을 같이 하지 못한다는 것에 대한 쓸쓸함,


그리고 죄책감.


N은 남편에게는 일말의 죄책감도 없었다. 하지만 N은 자신의 자녀들을 떠올리면 서 괴로워했다. 아이들이 알고 받을 상처를 생각하면 끔찍하다고 했다. 그녀에 대한 실망으로 앞으로 다가올 사춘기에 상처받고 방황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 그것은 차라리 지옥일 것이다.


N은 불안 때문에 온갖 일들을 다 벌려 놓고는 했다. 다 할 수 있다 믿었던 걸 까. 정작 완성되는 일은 하나도 없고 지쳐 있었다.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여러 번 걱정 어린 이야기를 했지만 좀처럼 그 상태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그녀의 인생에서 탈출구라고, 유일한 도피라고 생각했던 그와의 연애에서 의외의 발목을 잡히는 것 같았다. 그녀 인생의 발란스는 무너지고 있었다. 무료하고 루틴 한 일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재미 삼아 시작 한 오락이 그녀의 인생을 송두리째 잠식하고 집어삼키려 하고 있었다.

N이 이 상황을 감당할 수 있을까? 자기 자신을 지킬 수 있을까? 나는 여러 번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 손을 놓았느냐고? 그렇지 않았다.

결국 N은 그 사람으로 인해 자신을 더 사랑하게 된 것만 같았고 나 또한 그 어느 때보다 그녀가 단단해지고 있음을 느꼈다. 바쁘지만 N의 일상에 필요한, 그리고 그녀가 필요로 하는 그 모든 것을 소화해 나가고 있고, 그와의 관계를 지키기 위해 그녀의 의무를 다한다. N은 비록 흔들리는 삶 속에 있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바르고 굳건히 서서 그녀 자신을 지탱하고 있음을 느꼈다.


끝을 향해 가지만 끝이 어디인지 모르는 채로 N은 현실과 꿈의 경계 그 어디쯤 인가의 사이에서 그의 손을 잡은 채 걸어가고 있을 뿐이다.


N은 이 행복이 꿈같은 우연이라고 했지만 사실은 참인 결과물이다. N은 최선을 다해 이 행복을 향해 달려왔다. 나는 그녀를 보며 그것이 대견하다고 느낀다.


세상이 뭐라 하든, 감사하고 사랑스러운 삶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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